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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주년 3·15 의거 기념일을 맞아 정신과 자세 본받고 교훈삼아야
icon 정병기
icon 2021-03-13 10:18:23  |  icon 조회: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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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주년 3·15 의거 기념일을 맞아 정신과 자세 본받고 교훈삼아야

1960년 3·15 마산 의거(三一五馬山義擧)의미를 되새기고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날,
1960년 3·15 마산 의거(三一五馬山義擧)는 4·19 혁명의 어머니역할을 했다고 보아야,

제61주년을 맞는 3·15 마산의거(三一五馬山義擧)는 1960년 3월 15일 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시(현 창원시)에서 3·15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로 일어난 시위이며,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 행위에 대항해 의롭게 거사를 했다는 뜻에서 3·15 의거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3·15 마산의거는 4·19 혁명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고 부패한 정권이나 부정한 장기집권을 국민들이 궐기하여 막아낸 한국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게 된 전환점이 되었다고 본다.

마산의거 촉발은 1960년 3월 15일 마산시의 민주당 간부들은 경찰의 제지를 뚫고 투표소 안으로 들어가 40% 사전투표와 3인조 공개투표를 비롯한 자유당의 부정 선거 현장을 확인하면서 당시 자유당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해 부정선거를 하다 발생한 사건으로 부정선거를 외치며 항의하는 시민세력 시위대에 대하여 정권에 앞잡이 역할을 하던 경찰이 강제과잉진압과 시위대를 체포하고 총기를 발포하면서 시위대를 더욱 분노시켜 경찰에 돌을 던지며 맞서면서 사태가 확산되고 자유당정권에 분노한 시위대와 정권을 지키려는 경찰과 충돌하여 발생한 사건이다. 그리고 시위에 참가했던 학생의 시신이 4월 11일 아침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것이 발견되면서 시위는 더욱 격화되었고, 이후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되어 4·19 혁명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었다고 본다.

해방이후 군정을 거쳐서 정권을 잡은 이승만 자유당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 부정선거를 조작하고 획책하면서 3.15부정선거가 발생하고 사태가 확산되자 당시 국회조사단은 이날의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총격이 시위대의 해산이 아닌 살상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밝혀지면서 국민들은 더 분노하게 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정작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마산 시위가 공산당이 사주해서 벌어진 일인 양 주장하고 합리화 시키려는 의도로 사태를 덮으려했고 당시 자유당정권의 제2인자인 부통령 당선자 이기붕은 정치부 기자들과의 회견 자리에서 마산 시민들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을 따져 묻자 부통령 이기붕의 막말발언“시위대에 총기 발포는 당연지사로 표현”하며 국민의 부정선거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 바로 4.19혁명으로 자유당정권의 말로가 되었다고 본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1960년 3월 15일 경상남도 마산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 3·15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 정권이 자행한 부정선거와 정경유착에 대한 항의에서 시작하여 항의하는 시위대에 당시 경찰의 강경진압과 총기발포로 수많은 희생자를 발생하게 한 사건으로 이 시위의 영향으로 4·19 혁명이 이루어져 이승만의 하야 선언을 이끌어내었고, 장기 집권을 노렸던 자유당 정권은 종말을 맞게 되었고 또한 3·15 의거는 한국 현대사 최초의 민주 투쟁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당시 무능하고 부패한 자유당정권을 몰아내는 4.19혁명의 산실이 된 제61주년 3.15 마산의거 정신과 자세를 본받고 교훈삼아 앞으로도 한국의 자유민주주의횃불로 바로 세우고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아울러 바란다. 글/정병기<칼럼니스트>
2021-03-13 10: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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