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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추억
icon 장명희 기자
icon 2019-03-02 08:06:46  |  icon 조회: 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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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 다가 오면 마음의 연상 작용이 일어나는 듯하다.

봄이면 파릇파릇 움트는 초록빛 사이 길로 어린 시절 더듬이 날을 세워본다. 서툰 걸음걸이는 어머니의 구부러진 등짝에 온기를 더한다. 그 따스함 어디에 보태어도 넘치지 않으리. 보리밭 사이 길에 풀잎을 요되기로, 울퉁불퉁한 흙덩어리를 베개 삼아 눕혀 놓은 어머니의 가냘픈 흙 묻은 손.

가끔씩 종달새 소리가 나의 어둠의 시야를 깨고 귀를 열어젖히고 있었다. 물들지 않는 흰 도화지에 무엇인가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열심히 야외스케치의 오묘함은 연한 색상으로 미래의 시나리오의 실타래를 풀어줄 예행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하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되풀이 되는 나만의 짧은 시간을 어머니와 잠시 이별을 가슴에 안고, 어떤 생각을 떠올렸을까. 지금 순간 알 수 없는 아름다운 흔적들이 나의 머리를 상쾌한 이슬방울을 맺히게 한다. 가끔씩 어머니께서는 바쁜 호미자루를 잠시 멈추고, 나와 마음이 든 아름다운 눈빛을 맞춘다. 어머니와의 교차점을 이루는 쌍곡선으로 모든 피곤함을 달랬을 것이다. 삶은 조금씩 거친 휘파람 속에서도 따뜻한 봄 햇살을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어머니의 딱딱한 마음은 나의 맑은 눈빛에서 무르익고 있었다. 아지랑이가 하늘 아래 천사처럼 내려오면, 뭔가 새로움으로 나의 가슴에 와 닿곤 한다. 보리밭 고랑을 혼자 지키면서, 내 삶의 기초 공사를 튼튼히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내어 주는 따스한 모유 한 모금은, 신이 만들어 준 감로수였다. 초승달처럼 여위어진 어머니 가슴속으로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었을 것이다. 미래 나의 모습이 어머니의 눈망울 속에서 자꾸 비치면서 커져가고 있었다. 어머니와 단 둘이서 새파란 하늘 펼쳐진 조각난 초승달의 작품성의 감상은, 어디에도 견줄 수 없을 삶의 댓가였다. 파도 소리가 밀려오는 작은 조각배들의 노젓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어머니의 푸른 고랑을 가르는 사랑의 손, 우리의 입맛 시중을 들게 했다. 지금 바다를 너무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유 어린 시절 무의식중에 보리밭에 누워 잊혀지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 나의 머리에 깊이 새겨져 있는 탓일까? 그 모습이 나도 몰래 잠시 침묵을 지키지 않고 피어오르고 있었다. 보리밭의 풍경은 지금도 성인이 되어서 하나 둘씩 솟아나고 있다. 너무나 견고하고 튼튼하여 모든 세상살이의 시련들도 받쳐줄 수 있는 바람막이였다. 지금 가끔씩 어머니께서 보리밭의 추억의 주머니를 풀어 헤친다. 그때는 그랬었지! 그래야만 했었지. 가정법과 도치법으로 인생을 노래하는 법을 배웠다. 때로는 시비가 엇갈림 속에서도 단맛을 보면서 살아가는 기회도 가져본다. 도시화의 물결로 그곳은 기계소리로 가난을 대신해 주고 있었다. 철거덕 거리는 요란한 소음 속에서도, 종달새 소리가 유난히 나의 마음 고랑을 파고든다. 사람들과 삶의 이야기를 지절되는 느낌이 든다. 아무리 듣고 들어도 물리지 않는 꾸밈없는 일상들. 푸른 보리 밭고랑은 삶의 노래가 담겨 있었다. 타인을 헤아릴 수 있는 둥근 마음, 다른 사람들의 단점도 잡티로 보지 않고, 개성으로 볼 수 있는 무한정 힘도 되풀이 되고 있었다. 움직이고 있는 것들, 정체되어 있던 것들을 모두 흡수할 수 있는 강력한 흡입제가 되어 버린, 내 인생의 어린 마음속의 기억들이 밀려 지나간다. 내리는 비는 풀잎이 돋아나도록 자꾸 보채게 한다. 어머니와의 지울 수 없는 생의 커다란 지침서들은 내 마음을 자꾸 보채게 한다. 자연의 순리와 인내심이 빚어낸 출생의 환희로 비유하고 싶다. 그 자리에서 배운 교훈들, 사랑은 조건이 맞지 않으면 마음을 내어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마음을 내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어진 일들에 나의 삶의 거울이 담겨져 있다고 믿는다. 어머니의 밭고랑 파는 젊은 시절, 흐릿하게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원점에 서서 자신을 한 번씩 훑어보는 여유, 아마도 어디에서 근원지였는지 정돈된 마음을 출발선에서 재촉해보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 가끔씩 모진 풍파를 만나도 어머니의 등짝은 굽어지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늘 깨워있는 마음의 자세가 누군가에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밑바닥이 되어주는 삶, 자신을 너무 사랑하게 되었다. 식물은 마디가 굵어지면서 내면의 탄력성을 가지도록 무한한 시간을 주듯이, 잠시 멈춤이라고 두려워하지 않으리. 어머니의 사랑이 묻어난 거칠은 마디마디 흙손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의 창문을 열 수 있었다. 언젠가 어머니 얼굴을 그리워하면서 가슴에 담겠지. 어머니 가슴 속에 삶의 시집을 몇 권이나 썼을까? 어머니의 시간은 지금쯤 어디까지 지나고 있을까? 삶의 끝자락 한 정거장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쉬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 본다. 나의 시간도 그 하나의 점을 만들어 추억 속 논두렁으로 걸어가고 있다. 어렸을 때 나에게 말없이 팔베개로 받쳐준 어머니의 사랑의 눈빛이, 지금 이 순간 마음 한 칸에 자꾸 떠오른다. 그것이 지난날들이 너무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어쩌면 핑계를 대는 여자가 되고 말았다.

2019-03-02 08: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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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희 2019-03-06 18:20:09
감사드립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주름살을 보면서 마음이 애틋합니다.
100세시대를 살면서 효도하면서 사는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교환 2019-03-05 08:43:17
우리 세대는 누구나 갖고있는 자기만의 '어머니 냄새'를 잘 표현 하셨네요.
심순덕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줄 알았습니다"를 연상케 하네요 -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