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글마당 시니어매일은 독자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가는 신문입니다. 참여하신 독자께는 소정의 선물을 보내드립니다.
"줄" 하나 잇다
어제를 이어 오늘이 되고
오늘은 또 내일로 이어져 인생이 되고 역사가 됩니다.
봄에서 여름을 잇는 4월 마지막 날,
문득
'줄'과 '끈'을 생각합니다.
사실 이 말은 비슷한 것 같아도
그 성정(性情)이 사뭇 다릅니다.
'줄'이란 둥글고 너그러우며 사물과 사물,
인연과 인연을 하나로 이어 주는 매개체입니다.
뒷간 서까래와 싸릿문 옆 감나무 가지를 이으면 든든한 빨랫줄이 되고
전봇대와 전봇대를 잇는 전깃줄은 음극과 양극을 이어 세상을 밝힙니다.
바늘에 묶인 줄은 저고리의 길, 바지의 길이 되기도 합니다.
생사의 기로, 죽음에서 삶을 건져 올리는 생명줄은 어떻구요.
거미줄은 거미에게 삶의 전부이지요.
하지만,
'끈'이란 묶고,
풀고,
매듭짓고,
때로는 끊기도 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지요.
아울러,
비슷한 통속들을 제 멋대로 놀지 못하게
한 무더기로 꽁꽁 엮어주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줄도 참 많이 있습니다
사랑과 욕망의 줄,
핏줄,
학연과 지연(地緣)의 줄,
취미가 맺어 준 인연,
그 줄과 인연은 넉넉하고 편안한 쉼터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끊을 수 없는 질긴 끈이 되어 너와 나를 헤어 나올 수 없게
단단하게 매듭지어 어둠 속으로 함께
던져 질 때도 있습니다.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줄과 인연으로
무엇을 짓고 또 잇는지요?
==========
2018년 설날,
어머니 모신 암자에서 끄적였던 낙서 한 줄로 잘려나간 탯줄을 잇습니다.
엄니 // 이용근
내가
이 땅에 태어난 날
내게 이어진 줄 하나 싹둑 잘렸습니다
순간
날숨
들숨이 트였고
좌심실
우심방이
36.5도로 데워지고 있었습니다
몰랐습니다
잘려진 그 줄
끝이 아니었음을요
그 줄,
지구보다 무거운 내 삶을 지탱했고
찢어지고 헤어진 내 맘을 보다듬는
질기디 질긴 끈이었고
힐링줄이었다는 것을요
작은
항아리에 담긴
하얗게 부서진 낯선 엄마의 모습에
끊어졌던 그 탯줄
다시 잇고 이었던
설 명절 하루 해가 저뭅니다
당신이
내 최고의 "줄"이였음을
내게도
질기고 질긴 줄 하나 있었음을
어찌
당신이 가신 후에야
이리도 큰
아픔되어 줄 지어 오나요
당신과
나를 이었던
그 줄,
그 탯줄
종일토록
부질없이
또 잇고 잇습니다, 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