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흘구곡의 백미인 용추폭포에 담긴 사연은?
그리움은 그 사람이 아니면 채울 수가 없다
길을 걸으면서 나를 내려놓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보자. 힘들수록 사랑은 묘약이다!
김천시 증산면에는 왕후가 거닐던 산길이 있다. 인현왕후길이다. 23살에 숙종의 계비에서 폐서인(廢庶人)이 되어 청암사에 3년간 머물면서 거닐던 길이다. 지난해 '8월에 추천하는 걷기 여행길'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 의해서 선정되었다. 시간을 내어서 8월에 인현왕후길을 걸어보자.
인현왕후는 15살에 인경왕후의 뒤를 이어 왕비가 되었다. 22살에 숙종이 사랑한 장희빈이 왕자를 생산하였으며, 왕자를 맏아들로 정하는 문제에 휘말려 23살에 폐서인이 되었다. 일련의 사건으로 우부승지 이시만은 파직되고 송시열은 사약을 받았다. 인현왕후를 도왔던 많은 사람이 삭탈관직(削奪官職) 유배길에 올랐다. 왕후는 상궁1명, 시비 2명과 함께 평민이 타는 흰 가마로 궁궐에서 나왔다. 부모도 없는 몸이라 의지할 곳이 없었다. 처음에는 사가인 안국동 감고당에서 머물다가 청암사로 거쳐를 옮겼다. 외할아버지(송준길)의 처가인 우복 정경세 가문이 상주에 살고 있어서 크고 작은 도움이 필요했다고 여겨진다. 청암사에서 복위 교지를 받았다. 우복선생은 승정원도승지 이조판서 대제학을 지냈으며 이름난 제자도 여럿 두었다.
인현왕후길이 있는 증산면은 한양에서 거리가 멀고 깊은 산속이다. 산세로는 1.300m를 넘나드는 가야수도 지맥이 놓여있으며 86%가 임야이다. 중심되는 마을 뒷산이 떡시루를 엎어놓은 모양처럼 생겼다고 증산(甑山)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물산마저 넉넉하지 않은 곳이라 사람의 시선을 피해서 은거하기에 좋은 곳이다. 참고로 증산면은 1914년에 성주군에서 김천시로 편입되었다. 물길이 다르면 생활환경이 다르다. 대가천은 옥류천의 물을 합하여 성주 고령을 지나서 낙동강으로 흐른다. 유일하게 김천의 읍면과 물길이 다르다. 마을 사람들은 성주장, 가천장을 보러가기도 한다. 면적은 울릉도 보다 크며 1천100명 남짓 살고 있다. 김천에서 오지이며 성주에서도 오지이다.
인현왕후길은 수도리 끝마을인 수도마을에서 출발해서 뭉툭한 가지 형태의 산길을 한바퀴 돌아오는 코스이다. 수도마을은 해발 800m에 있으며 장애물이 없어서 누구나 걷기에 무난하다. 전체 구간의 3/4 지점에는 무흘구곡 제9곡인 용추가 있다. 용추는 웅덩이가 깊어서 용이 살만한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용추폭포의 폭포수는 힘있고 물길이 끊어지지 않아서 남정네는 기우제을 지냈으며, 아낙네는 길도 없는 이곳까지 찾아와서 득남을 빌었다. 물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코스는 용추교에서 용추출렁다리까지 1km이다. 계곡 바로 옆으로 산길이 있다.
논어 안연편에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잘 되도록 도와준다"는 애지욕기생(愛之欲其生)의 구절이 있다. 비록 폐서인이 되었지만 숙종을 사랑하는 마음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천리 도망은 해도, 팔자 도망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도망가지 못할 바에는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묘약이 아닐까? 이심전심으로 세월과 함께 마음이 흘러서 폐위된지 5년만에 복위되었다.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아! 슬프도다"고 이야기한 숙종의 말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다. 숙종은 인현왕후의 따뜻한 마음을 가슴에 담고 있었다. 길을 걸으면서 나를 내려놓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보자. 힘들수록 사랑은 묘약이다!
몸으로는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에는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득 담고서 걸어보자. "외로움은 누군가가 /채워줄 수 있지만/그리움은/ 그 사람이 아니면/ 채울 수가 없다."(이해인의 '이런 사람 저런사람'의 끝부분)는 이해인 수녀의 시를 가만히 읊조려보자. 누군가가 더 보고 싶고, 가슴은 8월의 태양만큼 뜨거워질 것이다. 인현왕후길은 사랑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