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나폴레옹의 열렬한 숭배자였고, 나폴레옹은 괴테의 소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하 ‘젊은 베르테르’로 약칭함)의 각별한 애독자였다. 이런 두 사람이 직접 대면한 것은 1808년 10월 2일과 6일, 그리고 10일 사흘간이었다. 나폴레옹은 국민투표로 황제에 즉위한지 4년 만에 일이다. 독일 에어푸르트(Erfurt)에서 열린 나폴레옹이 주재하는 범유럽 제후회의(諸侯會議) 기간 중에 마련된 짧지만(약 30분가량) 역사적 만남이었다. 두 사람이 만난 지 16년 뒤인, 1824년 괴테가 공식 기록한 전체 ‘대화록’ 가운데 서두 부분을 보자.
‘10월 2일 오전 11시, 나는 황제의 부름을 받아 접견실에 들어갔다. 황제는 넓고 둥근 탁자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황제가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황제 앞에 섰다. 황제는 나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선생이 바로 그분이군요라고 말했고, 나는 몸을 숙여 인사했다. 이어 올해 춘추(春秋)가 몇이냐고 물었고 내가 60세라고 대답하니, 몸을 잘 관리한 것 같다, 비극 작품을 쓴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꼭 필요한 대답만 했다’
작가 괴테가 황제를 알현하는 의전(儀典)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그려지며, 엄숙한 분위기도 함께 느껴진다. 당시 나폴레옹은 불혹의 40세, 괴테는 이순의 60세로, 20살 차이가 났다.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의 짧은 만남에 대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황제 중 황제와 문호 중 문호의 만남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10월 2일 첫날, 이 자리에서 나폴레옹은 소설 ‘젊은 베르테르’ 가운데 한곳을 콕 집어 괴테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은 그것을 왜 그렇게 처리했나요?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은데요.”
괴테 자신도 그 자리에서 나폴레옹의 이 말에 맞장구를 치며 ‘무언가 사실에 부합되지 않은 점이 있음을 인정’했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으로 후세에 알려진 내용의 전부이다. 이날 이후 괴테의 동시대인들과 후대의 수많은 애독자들은 나폴레옹이 말한 “그것”이 ‘베르테르의 슬픔’의 어느 대목을 말하는지 밝혀내려 여러 각도로 애를 썼지만 갖가지 가설만 난무했을 뿐,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명쾌한 답을 내 놓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장본인인 괴테가 주변의 거듭된 성화에도 불구하고 끝내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든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누구인가?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라고 말한 천하의 황제 나폴레옹과 세계적 문호 괴테가 아니던가. 미국의 사회학자 필립스(philips)는 유명인의 자살이 있은 후에 유사한 방식으로 잇따라 자살이 일어나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Werthers Effect)’라고 명명하지 않았던가. 바로 그 ‘베르테르 효과’를 낳은 소설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으니 세인들의 관심 끄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것’의 수수께끼 풀기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계속되고 있으며, 헤아릴 수 없는 저서와 학술논문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개별 학자들의 주장에 물고 물리는 반박과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학자들의 주장을 큰 범주로 나누어 보면 4가지 해법으로 요약된다. 나폴레옹이 ‘그것’이라고 지적했음직한 가설들 말이다.
첫째는 불안한 롯데의 심경묘사 미숙을 나폴레옹이 지적했다는 가설이다. 나폴레옹이 ‘그것’을 이렇게 물었다. “롯데가 베르테르에게 권총을 보내는 장면입니다. 알베르토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자기가 느끼는 예감이나 두려움을 내색하지 않는 채 말입니다. 선생이 물론 그녀가 왜 그렇게 내색하지 않았는지 그 동기를 부여하려고 고심했겠지만, 친구의 생명이 걸린 절박한 상황인지라 그것을 분명히 써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선생은 왜 그렇게 흐리멍덩하게 처리했지요?”
둘째로, 나폴레옹은 ‘젊은 베르테르’를 일곱 번 읽었음을 강조하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작품에 대해 세세히 따지듯 질문했다. “몇몇 곳에서 모티브의 이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베르테르의 성격을 묘사할 때, 막연한 공명심과 열정적인 사랑의 모티브가 뒤섞어 있습니다. 이것은 베르테르에게 푹 빠진 독자들의 상상력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선생은 왜 그렇게 묘사했지요?”
셋째로, 나폴레옹은 베르테르의 수동적 성격을 지적했을 거란 가설이다. “선생, 롯데가 알베르트와 약혼을 했다고 하나, 정식으로 결혼한 것이 아니므로 그녀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베르테르가 더 적극적으로 노력을 기울어야했고,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자연스럽지 않게’ 여겨집니다. 실제로 억누를 수 없는 열띤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가운데 베르테르가 롯데에게 자기가 번역한 ‘오시안(Ossian)’을 읽어주고 고백조로 그녀를 포옹하자 롯데는 그로부터 몸을 돌려버리는데, 이로써 베르테르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되게 한 점입니다. 한 번의 충동적 행동을 사랑의 패배자로 만들어버린 것이지요. 선생은 왜 그렇게 처리했지요?”
넷째는 자살 장면에 관해 나폴레옹의 지적이다. “권총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입니다. 베르테르가 자기 오른쪽 눈 위에서 머리를 쏘아 관통시켰습니다. 만약 권총의 총구를 앞을 향해, 그러니까 통상 상상할 수 있듯이 검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식으로 총을 움켜잡는다면 선생이 묘사한 그런 자세는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런 자세로는 권총 총신을 90도 틀어 총구를 관자놀이에 댈 수는 있어도 총구를 이마에다, 그것도 ‘오른쪽 눈 위 이마에다 누르듯’ 갖다 대지는 못합니다. 손목 관절은 그렇게 유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실제로 그런 동작을 취하려면 손가락과 손목에 순간적으로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부분의 묘사가 부자연스럽게 여겨졌습니다. 선생은 왜 그렇게 처리했지요?”
여기서 설득력 있는 ‘그것’의 정체는 과연 몇 번째일까? 중견 학자들의 중론은 주인공 베르테르의 권총장면 묘사 오류를 나폴레옹이 지적했을 것으로 추단하고 있다. 이 주장 또한 하나의 가설에 불과할 수 있다. 괴테는 분명 권총 부분에 대해 나폴레옹의 통속적이지만 명쾌한 지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권총 자살을 해보지 않았으니 정밀한 묘사가 어려웠을 것이니 쉽게 동의했음직하다.
괴테는 상대가 범상한 일반인이 아닌 ‘황제’였음으로 대화내용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은 것이 예의로 생각했음직하다. 또한 만약 그가 자기 혼자 알고 있는 사실을 입 밖으로 낼 경우 독자들은 스토리 자체에 몰입하다가도 ‘황제 나폴레옹’이 지적한 것에 매몰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스토리의 극적 전개가 왜곡으로 받아들여질 위험을 우려했을 것이다. 그래서 괴테는 끝까지 ‘그것’을 함구했을 것으로 추론된다. 또한 문학 비평가를 비롯한 일반 독자대중의 이중적 허위의식도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다. 나폴레옹의 본령(本領)이 군인이었던 점을 애써 간과하거나 무시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황제 나폴레옹이었으니 사람들은 그에게서 군인이 아니라 문학 분야에서도 무언가 고차원적이고 영웅적인 인식의 소유자임을 발견하고 싶었던 심리가 언연 중 깔려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4번째 ‘권총 자세 가설’이 맞다면, 나폴레옹은 괴테에게 ‘소설비평’을 한 게 아니라, ‘권총 비평’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