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학교 식품공학과 교수들과의 교류가 벌써 서른 해를 넘기게 되었다. 매년 교대로 행사를 주관하는데 올해는 전남대의 차례가 되었다. 몇 번이나 지나친 영암 월출산에서의 일정을 보고 내심 기대가 되었다.
태풍 레끼마와 크로사 사이, 쾌청한 화요일 정오에 승용차 두대로 학교에서 출발해 논공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시원하게 뚫린 광주대구고속도로를 내달아 영암 도갑사(道岬寺)로 향했다. 발효의 고장, 순창의 강천산휴게소에서 발효커피를 음미하고 광주 무안을 거쳐 영암 도갑사에 이르니 오후 4시 가까이 되었다. 절 입구에서 전남대 교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도갑사 경내로 들어섰다. 월출산의 남서쪽인 도갑사는 신라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절로서 경내에 대웅전, 명부전, 미륵전, 산신각과 오층석탑, 석조여래좌상, 도선수미비 등의 문화재와 유적이 있다. 일주문을 지나서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해탈문(解脫門)을 지나니 5층 석탑과 대웅전이 보이고 녹음 짙은 월출산이 버티고 있다. 대웅전 뒷길로 들어서니 시원하게 용수폭포(龍水瀑布)가 물을 내뿜고 있다. 도선국사비를 보고 미륵전(彌勒殿)에 들어섰다. 미륵은 미래 용화세계에서 설법할 부처를 말하는데, 약 2m 높이에 몸체와 광배가 돌 하나로 조각되었다. 잠깐 동안 쉬면서 개울물에 발을 담그니 가슴까지 서늘해진다.
819번 지방도를 타고 영암읍으로 가는데 천황봉과 장군봉 구정봉 등 기라성 같은 봉우리와 기암괴석을 거느린 월출산이 오른쪽으로 나타났다. 월출산의 정기를 받아 예로부터 수많은 인재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삼국시대의 도선국사와 왕인(王仁) 박사, 고려와 조선의 개국 공신들과 명필 한석봉(韓石峯) 선생을 비롯하여 현재의 정계 관계 예술계 인사들 중에도 영암 출신이 많다. 영암읍을 지나 월출산의 동쪽에 있는 고인돌 펜션에서 간단히 여장을 풀고 바로 위쪽의 ‘김명성발효연구소(참발효)’로 향하였다. 커다란 옹기 대문을 거쳐 들어서니 김대표가 나와서 반겨 준다. 일행은 전통 발효 장류와 식초 제품과 설비를 견학하고, 기술의 확립을 위한 김대표의 투철한 장인 정신에 공감하였다. 이윽고 통나무 별채에서 전통차와 메밀국수를 즐기며,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월출산 일몰을 구경하고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양교의 학사와 연구 업무를 협의하였다. 돌아오는 밤하늘에는 삭월(朔月)이 바삐 가고 있었다.
잠시 눈을 부친 것 같은데, “꼬끼요~” 소리에 긴가민가하며 잠을 깨자 새벽 5시 다. 간단히 씻고 정원에 나오니, 거대한 바위산이 바로 앞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하얗게 거품을 내며 흰구름이 바위산을 씻으니, 기암괴석들이 휘황찬란하게 아우라를 두르기 시작한다. 영암읍에서 해장국을 먹고 13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나가니 산세가 조금씩 낮아지면서 숲들이 나타났다.
다부(茶父) 이한영(李漢永) 선생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 초의(草衣) 선사와 함께 조선 말기에 우리 차문화의 맥을 이어 온 전설적인 다인으로서, 최초의 녹차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를 출시하였다. 산의 남쪽 기슭인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소재 ‘이한영전통차문화원’에 전시장과 다실, 그리고 선생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 일행은 고손녀인 이현정 박사와 같이 우리 차를 음미하며 차 산업의 발전을 논하였다. 이후 다산 선생이 제자들과 즐겨 찾은 백운동(白雲洞)계곡을 돌아서 차밭을 견학하고, 강진으로 나와서 한정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삼합 안주에 곁들인 잎새주에 ‘다산초당’과 ‘영랑생가’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 버리고, 뙤약볕 속에 석별의 인사를 나누고 남해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호남평야 한 가운데, 호젓하게 우뚝 솟은 바위산을 돌면서, 기슭에서 선조의 얼을 구현하는 젊은 장인들을 만났다. 월출산은 찻잎처럼 여린 소년과 우락부락한 대장부, 천병을 거느린 장수와 중생을 구제하는 노승의 모습으로 우리를 반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