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
(24)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
  • 김영조 기자
  • 승인 2019.08.17 11:2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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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내부에 존재한다.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평온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국가는 개인이 행복을 실현하기에 적합한 기본 환경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며칠 전 북한이탈주민인 40대 엄마와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함께 굶어죽은 채 발견됐다.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따뜻한 남쪽 나라가 최소한 아사(餓死)는 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서, 그리고 아이가 자라 꿈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기를 희망하면서 힘겨운 여정을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고춧가루만 남아있는 텅 빈 냉장고와 마지막 인출금 3,858원으로 제로 상태가 된 빈 은행 통장, 그리고 아이가 무언가를 나타내고 싶었던 한줄기 낙서뿐이었다.

그들이 가졌던 소박한 기대와 꿈은 한 조각 환상이었고, 그들의 이웃이자 보호막이라 생각했던 이 사회는 냉혹한 허상의 존재였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는 행복의 세 가지 조건으로서, ①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행복하다고 했다.

임마누엘 칸트  위키백과
임마누엘 칸트 위키백과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들 가족에게는 그 어느 한 가지도 없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일자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을 것이고, 게다가 아이를 키워야 하는 부담은 더욱 컸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은 물론 따뜻이 보살펴 줄 사회와 국가도 없었다. 이미 사회는 이기주의 집단으로 변질되었고, 국가는 당리당략에 매몰되어 민생을 돌 볼 겨를이 없는 패권집단으로 변해버렸다.

희망이라고는 그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희망은 실망으로, 실망은 절망으로, 절망은 절대 한계상황으로 변해버린 상태에서 그들은 스스로의 운명을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행복의 개념과 그 실천방법에 대해서는 학자나 성현마다 견해를 달리한다. 그러나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데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UN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복지와 경제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매년 320일을 세계 행복의 날로 지정했다.

이날을 맞이하여 공개된 2019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19)’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10점 만점에 7.769점을 기록한 핀란드가 차지했다.

2위 덴마크(7.6), 3위 노르웨이(7.554), 4위 아이슬란드(7.494), 5위 네덜란드(7.488) 등 상위 그룹 대부분이 복지가 잘되어 있는 북유럽 국가들이다.

최선진국인 미국은 19, 일본은 58, 중국은 93, 남수단은 최하위인 156위이고, 우리나라는 54(5.895)이다.

전직 핀란드 대사를 지낸 가까운 지인의 얘기이다. 작은 국가인 핀란드가 선진적이고 모범적인 복지국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정부와 국민들의 정직과 신뢰의 정신이 그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복지와 조세(세금)는 상호 연계되어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복지와 세금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이유는 금액의 과다 문제가 아니다. 내가 납부한 조세가 과연 올바른 곳에, 올바르게 쓰이는지에 대한 불신의 영향이 크다.

세계행복보고서는 모두 6개 항목으로 나누어 설문을 조사한다.

항목(설문)

우리

나라

순위

기대수명

9

소득수준(GDP)

27

관용(자선, 기부)(“지난 달 기부한 적이 있는가?”)

40

사회적 지원(“어려움에 처했을 때 언제든지 도와 줄 누군가가 있는가?”)

91

부정부패(“정부와 기업이 얼마나 부패해 있다고 보는가?”)

100

선택의 자유(“당신의 삶을 어떻게 살지에 대한 결정의 자유에 만족하는가?”)

144

우리나라는 비슷한 순위권 국가들과 비교할 때 기대수명(9), 소득수준(27), 관용(40) 항목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이다. 반면 사회적 지원(91), 부정부패(100), 선택의 자유(144) 등의 항목은 낮은 편이다.

동시에 국민들의 긍정적 정서(Positive Affect)와 부정적 정서(Negative Affect)의 등수가 발표되었다. 하루하루 웃고, 행복하다고 느끼고, 즐겁다는 경험을 한 횟수인 Positive Affect는 고작 101위이다. 웃을 일이 적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나타낸다. Negative Affect를 얼마나 덜 경험하는지는 45위이다.

2002년 영국의 심리학자 로스웰(Rothwell)과 인생 상담사 코언(Cohen)행복지수를 만들어 발표하였다. 2006년 이를 바탕으로 영국 싱크탱크재단이 전 세계 178개국을 대상으로 국가별 행복지수를 조사하였다. 1위는 의외로 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인 바누아투가 차지하였다.

국내 총생산량이 전 세계 233개 국가 중 207위에 불과한 빈국이다. 비록 산업발전은 없지만 청정의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여유로움이 행복의 원천이 된 것으로 보인다. 삶의 질이 소득이나 소비 수준과 관계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또한 1998년 런던정경대학에서는 세계 54개국을 대상으로 국가별 행복지수를 조사하였다. 마찬가지로 세계 최빈국인 방글라데시가 1위를 하였다. 경제적으로는 빈국이지만, 자신의 종교에 의지하면서 자그마한 것에 만족을 하고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국민의 90%가 무슬림 신자들이다. 무슬림 신자들이 자주 말하는 어구에는 인샬라 알라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모두 신의 덕이고 신의 탓이다라는 뜻이다.

매년 겪는 극심한 홍수도, 가난도 쉽게 받아들이고 주어진 처지에 만족하려는 습성이 행복지수에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홍병선, “행복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 시민인문학, 2011. 참조)

행복을 얻으려면 중용의 덕을 가져라.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탐나는 것이 있어도 마음을 잘 다스려서 지나치지 않게 하는 것이 습관이 되게 하라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말과도 상통한 삶이다.

며칠 전 김천 직지사를 들렀다. 사찰 내 약수터 앞 표석에 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오로지 만족할 줄을 안다는 뜻이다. 입 구()자가 공통으로 들어가도록 네 글자를 합체한 것도 신기하지만 자신의 분수를 알고 적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해진다는 의미 해석이 더욱 신비롭다.

오유지족  김영조기자
오유지족 김영조기자

 

행복은 물질로 평가하거나 살 수 없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찾아야 한다. 행복은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내부에 존재한다.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평온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말이다.

우리나라 헌법(10)은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모자 아사 사건을 보면서 행복은 국민 개개인이 추구할 권리 사항 이전에 국가가 행복을 보장해주어야 할 의무 사항으로 규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결정짓는 것은 국가이다. 국가는 개인이 행복을 실현하기에 적합한 기본 환경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칸트의 주장을 새겨 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