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향교에서 봉행 된 추계석전대전
대구 향교에서 봉행 된 추계석전대전
  • 이원선 기자
  • 승인 2019.09.0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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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7일(음력 8월 9일 상정일)에 추계 석전대전을 봉행하다.
중요무형 문화제 제85호(1986년 지정)인 석전대제는 춘계와 추계, 즉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봉행된다.
석전대제의 다른 말로는 문묘대제(文廟大祭)또는 상정제(上丁祭)라고도 한다.
석전대제를 봉행하기 위해서 유림들이 명륜당을 나서고 있다. 이원선 기자
석전대제를 봉행하기 위해서 유림들이 명륜당을 나서고 있다. 이원선 기자

孔紀 2570年년八月 上丁日, 檀紀4,3252년, 서기 2019년 9월 7일(己亥年 음력 8월 9일 丁未日)을 기해 대구향교에서는 초헌관 권영진(대구광역시장), 아헌관 배병일(영남대학교 도서관장) 및 종헌관, 분헌관, 묘사, 집례 대축 양종구 유림을 선정 추계석전대제(秋季釋奠大祭)를 봉행하였다.

중요무형 문화제 제85호(1986년 지정)인 석전대제는 춘계와 추계, 즉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봉행된다. 상정일의 ‘상’이라 함은 한 달을 상순 중순 하순으로 나누었을 때 초순(1~10일)에 해당되며 ‘정일’은 천간(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의 4번째인 정(丁)이르는 말이다.

석전대제를 위해 유림들이 대성전에 들고 있다. 이원선 기자
석전대제를 위해 유림들이 대성전에 들고 있다. 이원선 기자

석전대제의 다른 말로는 문묘대제(文廟大祭)또는 상정제(上丁祭)라고도하며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최초로 태학이 설립된 것으로 미루어, 이때 석전도 함께 봉행되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세기풍속사전에서는 “문묘, 곧 성균관의 대성전에서 공자를 비롯한 선성(先聖)과 선현(先賢)들에게 제사 지내는 의식. 모든 유교적 제사 의식의 전범(典範)이며, 가장 규모가 큰 제사이다. 이 때문에 석전을 가장 큰 제사라는 의미로 석전대제(釋奠大祭)라고 부르기도 한다”라고 정의하며

초헌관 권영진(대구광역시장)이 분향을 하고 있다. 이원선 기자
초헌관 권영진(대구광역시장)님이 전폐례로 분향을 하고 있다. 이원선 기자

그 유래는 “석전의 석(釋)은 놓다[舍] 또는 두다[置]라는 뜻을 지닌 글자로서 베풀다 또는 차려놓다. 라는 뜻이다. 전(奠)은 상형문자로서 추(酋)는 술병에 술을 담아놓고 덮개를 덮어놓은 형상으로 빚은 지 오래된 술을 의미하며, 대(大)는 물건을 얹어두는 받침대의 모습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는 정성스레 빚어 잘 익은 술을 받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석전은 정제(丁祭), 또는 상정제(上丁祭)라는 별칭으로도 불렀는데, 이는 석전을 매년 봄과 가을에 걸쳐 두 차례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을 택하여 봉행해 온 데서 비롯된 것이다”고 한다.

초헌례에 이어 대축이 이어지고 있다. 이원선 기자
초헌례에 이어 대축이 이어지고 있다. 이원선 기자

이 날의 석전대제는 오전 10경부터 봉행되었으며 그 순서는 9시 40분경 유생입취위에 이어 전폐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분헌례, 음복례, 망요례 순으로 봉행되었다.

대구향교의 대성전에 배향된 신위는 대성지성문성왕, 영국복성공안자, 석국종성공증자, 기국술성공자사, 추국안선공맹자(이상 공자를 비롯한 중국 5현)와 홍유후 설총, 문창후 최치원을 비롯하여 총 25분의 성현에 대하여 제례를 올리는 의식이다.

전폐례는 초헌관이 오성위에 향을 피우고 弊帛(폐백)을 올리는 예에 이어 초헌관이 오성위에 첫 술잔을 올리고 나면 대축이 이어진다.

석전대제를 위해 관수례를 하고 있다. 이원선 기자
석전대제를 위해 관수례를 하고 있다. 이원선 기자

이어 아헌례(두 번째 잔을 올리는 의식)와 종헌례(세 번째이자 마지막 잔을 올리는 의식), 분헌례(제사를 지낼 때에, 여러 신위(神位) 앞에 따로따로 술을 부어 놓는 예(禮)), 음복례(제사를 끝낸 뒤 제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신명(神明)에게 올렸던 술이나 그 밖의 제물(祭物)을 먹는 의식을 말한다. 나아가 음복(飮福)이란 복(福)을 마신다는 뜻으로 음식을 골고루 나누어 먹음으로써 조상의 음덕을 받는다는 주술적 의식과 기복사상이 내포된 의례다) 망요례(종묘·문묘·사직단·산릉 등 왕이 친제하는 장소에서 행사가 끝난 뒤 축문을 비롯해 행사에 쓴 물건 가운데 음식물을 제외한 것을 태워 없애는 의식)를 끝으로 봉행 의식은 끝난다.

석전대전이 끝나고 음복례를 하고 있다. 이원선 기자
석전대전이 끝나고 음복례를 행하고 있다. 이원선 기자

한편 이날은 태풍 ‘링링’으로 인해 소나기가 내리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등 일기가 고르지 못해서 대성전에 들 수 있는 제관만 봉행의식에 참여하는 등 극히 제한된 유림들로서 봉행 행사를 치렀다. 그 외의 제관들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 밑 등등에서 조용히 봉행의식을 지켜보는 아쉬움을 남겼다.

제례를 끝낸 제관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원선 기자
제례를 끝낸 제관들이 명륜당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원선 기자

 

이날의 축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단군기원4352년 세차 기해년 8월 초9일에

대구광역시장 권영진은

대성지성문성왕께 감히 밝게 고하나이다.

업드려 생각하옵건데 오직 대성지성문성왕께서 도통을 이어서 후세를 밝히시니, 세속의 모든 임금보다 더욱 높고 밝으시어 만세의 스승이시라. 팔월 상정일을 맞이하여 정결하게 제사 올림이 옳고 마땅하나이다.

삼가 희생, 폐백과 예제, 곡식과 여러 제수를 공경스럽게 차리고 밝게 드리오니, 선사 연국 복성공(안자), 성국 종성공(증자) 기국 술성공(자사) 추국 아성공(맹자)을 배향하고 송조 2현 우리나라 18현과 함께 받들어 모시오니

흠향하시옵소서,“

대축을 맡은 제관(양종구)님이 지인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원선 기자
대축을 맡은 제관(양종구)유림이 지인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원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