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어릴 때는 꿈도 컸습니다. 맏이로 아우들이 형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했고 종손이라고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자만심이랄까? 솔직히 말해 주변사람들을 무시하며 까탈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대접만 받다보니 버릇도 없었고 철부지인 25살. 친척의 중매로 결혼을 했습니다.
대구로 나와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신접살림을 차렸습니다. 다른 직업보다 수입도 좋았고 제 일생 중 제일 재미있는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도벽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웃에 소문이 나고, 저절로 “그랬네. 안 그랬네.” 하며 이웃 간에 싸움도 잦았습니다. 수돗물 한 통에 얼마씩 받던 시절이었는데 시골우물터에 만나 사람들처럼 서로가 다 아는 사이였습니다. 화도 날뿐 아니라 창피스러워 아내를 꿇게 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습니다. 이웃으로부터 눈총 받을 아내를 생각해 멀리 이사도 했습니다.
그동안 아들이 태어났고 나도 지난날을 잊었습니다. 얼마가지 않아 또 도벽이 발동되었고 술도 마시면서 도박과 춤바람으로 생활이 문란해졌습니다. 아내에게 속았다는 생각에 불덩어리 같은 것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공원 한쪽에서 남자들과 화투에 정신없는 아내를 찾아 택시에 태우고 머리채를 한 주먹씩 잡고 도루코 긴 면도날로 잘랐습니다.
머리를 자르고 집밖에 못나가게 하려고 한 것이 실수로 정수리를 그었습니다. 차 바닥에 피가 낭자하고.....병원에 데려다주고 왔습니다. 얼마 안 있어 진단서를 끊어서 이혼 소송이 들어와 난 망설이지도 않고 이혼을 했습니다. 아내가 지긋지긋했습니다. 아들은 아내가 데리고 가고 단 한 번도 생활비도 준적은 없습니다.
생각하면 내 잘못도 많습니다. 아내에 대해 고함치며 욱박지르기만 했지 단 한 번도 낮은 목소리로 상의해 본적도 없습니다. 그 후론 누가 중매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막았습니다. 내 속에 또 다른 사람의 조종을 받은 듯 절제를 모르고 되는대로 살다보니 어느 사이 서산이 이마에 닿았고 후회만 남습니다. 연탄 때는 작은 집 한 채와 노령연금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나 눈 오는 날이면 불쑥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라는 불쑥 떠오르는 생각에 심란할 때도 있습니다. 그 후 몇 십 년을 살아오면서 잘못했다는 생각에 후회하고 뉘우쳐도 삶의 끝자락에 남은 것은 죄책감과 외로움만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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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드립니다:
인생에 무슨 정답이야 있겠습니까마는 인간만사 새옹지마 (人間萬事 塞翁之馬)란 말이 생각납니다. 특별한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든 비슷한 환경과 처지에서 살아갑니다.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혼자 긴 시간 살아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혹 부모님이나 형제들의 지나친 대접에 독불장군처럼 내가 제일이라는 의식이 자리하지는 않았을까요? 사람은 사랑하고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합니다. 사람의 보람은 일도, 멋진 성공도 아닌 가족의 행복이 아닙니까? 아무리 하는 일이 중하고 가치가 있다 한들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지요. 참고 노력하지 않고는 저절로 행복이 오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했다면 이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몇 사람 되겠습니까?
푹 삭은 된장처럼 우리의 삶도 배려하고 참고 기다리면 성숙되지 않을까요? 안타깝고 아쉬움이 남는 것은 조금만 참았더라면? 상항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후회인들 한두 번 했겠습니까? 우리는 속사정은 모르고 보이는 대로 보고 판단합니다. 또 한 면만 보는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전체를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도박이나 춤바람 같은 결과가 있을 땐 분명 원인이 있었을 것입니다. 조금 잘못하면 고함치고 욱박지르기만 하는 남편,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었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물론 실수지만 정수리를 그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요. 젊고 혈기가 넘칠 때라 순간적으로 저지른 일이겠지만 아낸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우리 속엔 무의식이란 게 있어 이것이 불쑥 예상하지 않는 일을 저지르곤 되레 깜작 놀라곤 할 때가 있긴 합니다.
무엇이든 잡고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릅니다. 내 손을 떠나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알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지요. 처음 경험하는 삶이니 시행착오를 겪습니다만 낭비하신 것 같은 젊은 날이 안타깝기만 하실 겁니다. 과거의 불신 또는 상처나 원망에 얽매여 현실을 바로보지 못하면 불행만 가중될 뿐입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작은 칭찬, 말하자면 “그래도 열심히 잘 살아왔잖아? 수고 많았어” 라는 말로 다독여 주시면 한층 가벼워지실 겁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잖아요? 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끝맺으시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요? 천륜을 어길 수는 없는 법, 아마도 아들은 때때로 아버지 생각에 눈물로 밤을 지새울 수도 있습니다. 외롭고 고달픈 삶, 긴 마라톤도 종착역이 멀지 않았습니다. 평강의 마음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유가형(시인·대구생명의전화 지도상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