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의 ‘소 1’
보릿짚 깔고
보릿짚 덮고
보리처럼 잠을 잔다.
눈 꼭 감고 귀 오그리고
코로 숨 쉬고
엄마 꿈 꾼다.
아버지 꿈 꾼다.
커다란 몸뚱이,
굵다란 네 다리.
―아버지, 내 어깨가 이만치 튼튼해요.
가슴 쫙 펴고 자랑하고 싶은데
그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소는 보릿짚 속에서 잠이 깨면
눈에 눈물이 쪼르르 흐른다.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지식산업사 2001. 06.01
‘소’를 읽는데 난데없이 새벽 종소리가 들린다. 청아한 종성이 뎅그렁뎅그렁, 영혼을 두드리다가 가뭇없이 사라진다. 생전의 시인이 시골 교회 종지기였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에 생기는 선입관일 게다. 시인은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 가신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제 더는 외롭지 않을까? 가난하지 않을까? 아프지도 않을까? 안동시 조탑마을 그의 생가에 가보면 검소란 낱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부끄럽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그런 궁핍한 생활이 순수함을 잃지 않고 동심을 그려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장판 밑에 현금이 수북했다는 이야기, 돈이 없어 그렇게 산 게 아니란 것을 지인들은 그의 사후에 알았다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시인이 대신 해준다고 느낄 때가 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므로 대리만족하며 시를 읽는다. 소=나, 동일시가 된다. 보릿짚 깔고 보릿짚 덮고 보리처럼 잠을 자는 건 나이고 엄마 꿈을 꾸고 아버지 꿈을 꾸며 어깨가 튼튼해진 것도 나다. 보릿짚 속에서 잠 깬 소의 눈에서 흐르는 것도 결국 내 눈물이다. 아버지의 부재가 참을 수 없는 슬픔의 무게로 짓누르는 것 같다. 자고로 목소리 크면 이기는 세상, 그래서 다들 다짜고짜 큰소리치는 판인데 소는 먼 허공에 대고 음매~ 길게 뱉는 신호음만이 표현의 전부다. 어찌해볼 도리 없을 때 고단함도 외로움도 그리움도 몸속 깊이 욱여넣고 사는 生, 소를 통하여 삶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