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택이 그의 운명을 가르는 회귀할 수없는 분기점이 되었다.
2011년에 남성잡지 「DEN」은 ‘신화가 된 천재 지식인 전혜린’이란 제목으로 특집을 실었다. “몇 권의 번역서와 수필 50여 편만을 남긴 채 31세에 요절한 전혜린. 그녀의 짧은 인생이 ‘신화’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시대를 앞질러 간 천재 여성의 외로웠던 삶’이란 제목이다. 기획의도를 ‘전통적 한국의 여성상에서 벗어난 보헤미안적 기질과 광기 그리고 방황 등으로 점철된 전혜린 신화를 살펴보고, 시대를 앞질러간 천재 여성의 외로웠던 생을 더듬어 본다’라고 밝혔다. 이 글의 부제로 ‘전혜린은 왜 신화가 되었나’가 붙어있으며, 전혜린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지인이나 명사들의 짧은 회상의 글들이 아래와 같이 덧붙여져 있다.
친동생인 불문학자 전채린은 당대 여성상과 상반되는 독립적인 사고와 자유분방한 태도에 대해 “언니의 생은 자유로우려는 정신과 현실세계와 대결해 나가는 투쟁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총장이며 법대 재학시절 지도교수였던 신태환은 “한국에서 1세기에 한번쯤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술회했으며, 문학평론가 장석주는 “그녀는 특이하게도 자신의 생을 통해 이룬 업적이 아니라, 절대 인식에의 끝없는 갈구와 열띤 방황이라는 삶의 태도만으로 전혜린 신화를 창조했다”고 회고했다.
‘전혜린은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라는 의문에서 이 글을 시작해본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재난이나 중병(重病) 같은 위기를 제외하고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게다가 다행히도 일상의 분주함과 습관은 언제나 삶의 부정적 사고로부터 우리를 방어해주는 기제가 작용하고 있어 쉽게 생을 포기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를 미망(迷妄)에서 구출해주는 것도 대부분은 이와 같은 일상성의 질서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살자들의 대부분이 정상적인 생활을 박탈당하거나 좌절한 사람들에게 많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기도한다. 정상적인 생활리듬은 자살충동을 효율적으로 방어해주는 처방전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자살이란 자살자 본인이 그 결과를 알고 행하는 죽음이다.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자살은 그것이 생의 거부이건, 포기이건, 어쨌든 사는 것에 실패했음을 고백하는 행위이고, 그것은 또 ‘살아가는 쪽’에서 볼 때 배신이요 반역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더욱이 우리가 이런 정상적인 생활패턴을 버리고 늘 깨어있는 의식으로 이 세상의 허무(虛無)와 마주한다면, 자신과 세상의 단절 앞에서 공포에 떨며 전율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게다. 이러한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은 발광(發狂)하거나 백치가 되거나 또는 미칠 듯이 사랑에 빠지거나 도박에, 알코올 또는 마약에 취해 있지 않는다면 자살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어느 누가 자살로 현실을 도피했다고 해서 우리는 그를 과연 비난할 수 있을까하는 원초적 질문을 던져본다.
인간이 자신의 관념이나 이념 때문에 자살을 결행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관념에 의거해서 자살을 찬미했지만, 장장 72세까지 살다가 결국 폐렴에 걸려 마지막엔 '유언 집행인'을 불러 재산상속까지 처리하는 등 일반적인 모든 절차를 다 밟고 나서 죽었다. 관념과 실행은 다르다는 얘기다.
그러면 전혜린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그는 삶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허무주의자요, 회의론자였다. 그의 내부에는 삶에 대한 집착과 죽음에의 동경이 늘 공존하고 있었으며, 매일매일 그것이 되풀이되었다. 그래서 그는 잠시나마 허무의식을 잠재워 주기 위해서나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수면제나 알코올을 손에 붙들고 살았다. 이와 같은 삶과 죽음이라는 의식의 부침(浮沈)은 평생을 통해 되풀이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죽기 전 마지막 순간에도 이 부침이 시험이라도 하듯 나타났는데, 특별히 한 사건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수면제(세코날) 40알을 입으로 털어 넣기 전, 그는 수취인이 '장 아제베도'라는 어떤 남자에게 손편지 글을 남겼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한 대목이기도하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줘! 나도 생명 있는 뜨거운 몸이고 싶어. 가능하면 생명을 지속하고 싶어. 그런데 가끔 그 줄이 끊어지려고 하는 때가 있어. 그럴 때면 나는 미치고 말아. 나를 살게 해줘. 내 속에 있는 악마를 쫓아줄 사람은 너야. 나를 살게 해줘”
이 글은 전혜린이 당시 열중하고 있던 대상(對象)에게, 죽기 며칠 전에 쓴 편지글의 일부다. 유품을 정리하던 여동생 채린은 이 편지 수신자의 실명을 발견했으나 누군 인지 밝혀지길 원치 않았다. 부치지 못한 편지의 주인공은 죽기 1년 전 이혼한 전 남편 법학자 김철수는 물론 아니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제자이자 연하의 남성인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전혜린은 프랑스의 소설가 ‘모리아크’의 소설 「테레즈 데케이루」에 나오는 주인공의 남자이름인 ‘장 아제베도’를 원용하여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쓴 이 편지는 일종의 연서(戀書)로써 플라토닉(platonic)한 사랑고백으로 봐야 할 것이다. ‘장 아제베도’는 모리아크의 소설에서는 주인공 여성이 이상형 남성과 로맨틱을 구가하고 있는데 반해, 전혜린이 짝사랑하던 이 남자는 자신에게 손길조차 내밀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이전에도 전혜린은 스무 두 살 때 자살을 결행한 적이 한번 있었다. 뮌헨에서 수학할 당시였는데, 그가 먹은 약은 평범한 것이었으나 그를 죽이기엔 충분한 양이었다. 사건 당일 오후 2시에 다량의 약을 먹고, 7시경에 돌아오리라 생각했던, 후에 남편이 된 김철수가 4시경에 조기 귀가하는 바람에 그의 자살은 미수에 그쳐버린 것이다. 그는 병원에 실려가 50대의 주사를 맞고 이틀 뒤에 소생했다. 그가 자살을 결행하기 직전의 심경을 동생 채린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나는 흰 새벽 속에 내 마음을 사랑과 고뇌로 부터 순환할, 영원한 기쁜 죽음을 향해 출발했다.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보다 나을 것이다. 영원히 나는 모든 정다운 것들과 무거운 짐들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마치 쇠줄을 버리듯 나는 ‘지나간 것들’을 내던져야 한다. 그리고 내 앞의 생(生), 죽음 앞에 열려 있는 오른 편 길만을 봐야 한다”
자살을 예고한 글이었다. 아무튼 그땐 자살이 미수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은 언뜻 비슷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그를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의식의 ‘부침’(浮沈)에서 ‘침’(沈)의 순간과 맞닿아 있다. 전혜린에게 ‘장 아제베도’는 허무의식을 잠재워줄 유일한 대안으로 간주했음직하다. 그러나 그 남자는 전혜린에게 차가웠다. 바로 그 대안이 그 순간 사라졌음을 확신하는 순간, 침대 옆에 놓인 수면제를 대안으로 생각하고 옮아갔으리라. 그는 찰나의 몽롱한 순간에 쉽게 한쪽 대안인 ‘죽음의 매혹’을 선택했고, 다른 한쪽 대안은 포기했을 것이다. 너무 빠른 선택을 했는지 모른다. ‘허무(虛無)’들이 너무 가까이 자신 옆에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급박한 찰나의 순간에도 그는 양자택일을 고민했을 것이고, 그 가운데 한쪽을 낚아채듯 선택했을 것이다. 이 선택이 그의 운명을 가르는 회귀할 수없는 분기점이 되었다.
‘살아남는 자’는 양자택일에 대한 강한 압박을 받을지라도, 태연스레 자연의 섭리에 기대어 받아드리는 것에 너무 익숙하다. 윤리나 도덕의 이름으로 말이다. 누구나 한번은 운명적으로 죽어야 한다면 자연의 섭리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전혜린적 실존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죽은 며칠 후 서울 홍제동 화장터에는 혜린의 어머니가 통곡했고, 지인들도 함께 목놓아 울었다. 추워도 지독한 추운 날이었다.
<다음 마지막 (3)부에서는 '전혜린의 삶과 문학'이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