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며 취재한 2019조선일보춘천마라톤대회 풀코스 완주기
“가을의 전설”이 시작되다
지난 10월 27일 개최된 2019조선일보춘천마라톤대회에 참가 동반 주 하면서 취재를 했다.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에겐 춘천대회를 ‘가을의 전설’로 불린다. 우리나라 마라톤대회 규모상 가장 큰 대회로, 전체 참가자는 28,384명으로 풀코스 참가자가 15,798명, 올해 처음 신설된 하프코스 2,648명, 10km가 9,938명 참가 신청을 했다. 연령대를 보니, 50대가 전체 참가자의 3분의 1 정도인 9,052명이고, 그 외 40대 30대 순이었다. 60대 이상 참가자도 4,000명 가까이 되었다. 풀코스 최고령 참가자는 남자 91세, 여자 88세였다.
내가 마라톤에 입문하고 첫 풀코스를 완주한 대회가 바로 춘천대회였고, 마라톤 마니아라면, 꼭 참가하고 싶은 대회가 바로 조선일보춘천마라톤대회이다. 당일 날씨는 올가을 들어 가장 추운 4도 정도로 제법 쌀쌀했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 모두 방한에 신경 쓴다. 비닐 옷을 입고 있기도 하고 일부 주자는 마스크까지 쓰고 있다. 조금 지나니 대회장 주변은 많은 참가자로 분위기가 서서히 고조되었고, 대회 본부에서는 화장실, 물품보관소, 출발선 등 안내 멘트를 계속 내보낸다.
워낙 넓은 대회 장소라 다른 대회장에서는 복잡하던 화장실, 물품보관소 등도 여유가 있었다. 곳곳에 기념사진을 촬영할 장소도 제공되고 있었고, “달리는 나는 아름답다”라는 춘천마라톤의 캐치프레이즈도 곳곳에 나부낀다.
춘마 그 열정의 현장으로 들어가다
9시 정각, 마라톤 전문 사회자인 배동성 씨의 멘트에 따라 축포가 발사되고 엘리트 선수, 그리고 보유기록에 따라 A, B, C조 순으로 출발했다. 최근 풀코스 기록이 없었던 나는 맨 마지막 조에 편성됐다. 많은 인원이 빠져나가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우리 F조는 9:20분에야 출발했다. 배번호 뒤에 첨부된 칩이 있어 나중에 출발해도 기록 손해는 없다. 자 이제 시작이다!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마라톤을 즐기자!
1km 지점, 겉에 입고 있던 비닐 옷을 벗어버린다. 여러 사람이 함께 달리느라 쉽게 앞으로 나아가기는 어렵고 무리 따라 밀려서 나아간다. 앞쪽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분이 달리고 있다. 취재의 촉이 발동 얼른 그분 옆으로 간다. “어디서 오셨어요?” “연세가 얼마나 되세요?” “그 연세에 대단하십니다” 충청도에서 오신 70 중반의 어르신께 인사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날씨가 춥고 출발선에 오래서 있어서 그런지 소변이 보고 싶다. 마침 간이화장실이 있어서 서둘러 다녀왔다. 30초 정도의 시간을 소비했으나 볼일을 보고 나니 훨씬 마음이 놓인다. 주위의 아름다운 산과 의암호를 바라보며 본격적인 레이스에 접어든다.
5km 구간을 30분 41초에 통과했다. 오늘의 페이스는 km당 6분 내외로 달리고 1차 목표는 걷지 않고 4:30분 이내로 골인하는 것이다. 서서히 몸이 풀리고 여유를 찾을 즈음 7km 지점을 조금 더 가면 터널이 나온다. 그런데 이곳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함성이 들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군중심리가 발동해서 인지 약속이나 한 듯 고함을 지른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 신연교 다리 위를 달리는데 어떤 분이 볏단을 들고 달리고 있었다. 다시 그분에게 달려가서 물어본다. 왜 무거운 볏단을 들고 달리세요? 벼를 홍보하기 위해서 그럽니까? 대답이 걸작이다. 아니요 그냥 들고 달립니다. 큰 거 한단 들고 달리려다가 반 단 정도를 들고 달린다고 했다. 자세히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남다른 사연이 있으리라 짐작된다.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달리는 사람 등 이색복장을 하고 달리는 사람도 가끔 눈에 띈다.
호반의 도시 가을에 빠지다
신연교를 넘어서니 환상의 코스가 시작된다. 춘천마라톤의 자랑, 강 건너 주자들을 서로 볼 수 있는 코스로 꼬불꼬불한 길의 앞선 주자들과 건너편 주자들을 바라보며 즐겁게 달릴 수 있는 구간이다. 페이스메이커가 외친다. 우측으로 강을 보세요. 왼쪽으로 아름다운 산을 보세요. 앞으로 멀리 단풍길을 보세요. 팔을 흔들어 보세요. 몸을 앞뒤로 움직여 보세요. 부지런히 주자에게 주문한다. 모두 따라 한다. 아마 선두권이나 기록을 다투는 사람이라면 이런 행동을 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소 후미 주자들은 여유가 있어 후반부를 생각하여 잘들 따라 한다. 아직은 모두가 여유 있는 표정이고 옆 사람과 대화까지 하면서 나아간다.
어느덧 2차 반환점이 있는 신매대교에 다다랐다. 왕복 주자를 상호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다리 입구에 급수대가 있고, 양옆 도로에는 시민들의 응원단, 각 동호회에서 응원 나온 사람, 축하공연 음악 소리까지 그야말로 시끌벅적한 축제의 현장이다. 관중들은 축제를 마음껏 즐길 수 있으나, 주자들은 아직 남은 거리를 생각하면 신중할 수밖에 없는 구간이다. 다리를 벗어나니 풀코스 중간인 하프지점(21.0975km)이 나타났다. 이제 남은 거리는 반이다. 다시 힘을 내본다.
길 위에 추억을 만나다
지금부터는 춘천댐까지 계속되는 오르막이다. 본격적인 마라톤 레이스가 시작된다. 페이스가 조금씩 떨어지고 주위에는 일부 걷는 사람도 보인다. 지난 여름 훈련 때를 떠올려 본다. 그 무더운 날씨에 시원한 그늘이 아쉬워 나무 그늘은 찾아서 달렸던 생각을 하면, 지금은 땀은 나지만 달리기에는 최적의 날씨가 아닌가. 전면 통제된 도로, 오른쪽의 시원한 강, 왼쪽은 붉게 물든 단풍, 주로에는 달림이 들로 수놓은, 이렇게 잘 갖춰진 마라톤 축제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래서 춘천마라톤을 ‘가을의 전설’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멀리 춘천댐이 보인다. 40년 전 군대 시절 가끔 넘어 다니던 곳이다. 오랜만에 건너보는 감회가 남다르다. 춘천 댐을 지나 한숨 돌리고 나니 30km 지점이 다가온다. 끝인가 싶었던 작은 오르막이 아직도 계속해서 나온다.
남은 거리 12km, 다시 춘천 시내로 접어들었다. 이제 정신력과 싸움이다. 본격적인 마라톤을 느껴볼 시간이다. 장딴지에서부터 묵직한 고통이 밀려오고, 물집이 걱정되어 신은 발가락 양말이 고통을 더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묵묵히 참고 또 참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34km 조금 더 가니 ‘자유발언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오늘 달린 느낌,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 등을 하는 장소로 7~8명이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었다. 춘천마라톤대회만의 특별 이벤트로 마련한 곳인데, 기록경기인 마라톤대회에서 완주 후라면 모를까 달리는 중에 저런 장소가 필요한지는 나로서는 의문이다. 37km 지점에서 자원봉사로 참여한 동호회원들이 건네주는 음료수는 정말 꿀맛이다. 다시 힘을 내어 본다.
"달리는 나는 아름답다!"
저 멀리 소양교가 보이고 40km 지점이 가까워져 온다. 체력이 거의 바닥이 났다. 주위에 걷는 사람, 다시 힘을 내는 사람, 동호회원들과 함께 달리며 구령을 붙이는 사람, 이 구간이 진정 마라톤 맛이고 또한 마라톤 정신이다. 춘천마라톤의 공식 캐치프레이즈 "달리는 나는 아름답다"가 가장 잘 어울리는 장면이다. 의암호의 아름다움과 길가의 단풍과 시민들의 응원, 오롯이 달리는 주자를 위한 축복이고 특권이다.
다시 힘이 난다. 이제 완주에 대한 두려움에서는 벗어났다. 넓은 도로를 꽉 채운 주자들이 저마다의 꿈을 안고 앞만 보고 결승선을 향해 구도자처럼 나아간다. 드디어 결승선이 저 앞에 보인다. 모자를 바로 쓰고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승리의 세레모니를 준비한다.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힘차게 결승선을 밟는다. 그래 해냈어! 아직도 내게 이런 열정이 남았음에 감사하는 순간 울컥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렇게 해서 60 중반 12년 만에 춘천마라톤대회 풀코스를 4:27:45에 무사히 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