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와 아마추어는 상대가 있기에 존재하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다. 서로가 힘을 겨루지만, 상대 없이는 자신의 존재도 허무할 수밖에 없는 공생관계다.
‘프로’라는 낱말이 포함된 교보문고의 단행본 목록을 검색해 보면, 하나같이 긍정적 의미가 알게 모르게 내포되어 있다. 진정한 프로는 변화가 즐겁다, 프로는 말이 없다, 다만 일로써 승부할 뿐이다, 프로는 일에 대한 개념부터 다르다, 한 번뿐인 인생 프로만이 살아남는다,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 등등 숨이 막힐 정도로 프로가 되어야만 인생의 최후 승리자가 될 것처럼 제목을 뽑고 있다.
그런데 ‘아마추어'가 들어간 책 제목은 어떤가? 프로 인생, 아마추어 인생, 아마추어 정부의 몰락, 프로 직장인, 아마추어 직장인에게 말한다, 아마추어가 싱글로 가는 길, 아마추어 괴도처럼, 모두 프로에 비해서 수준이 떨어지는 부정적 뉘앙스가 강하게 묻어난다.
한때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란 말이 시중에 유행할 정도로 일상생활에서도 아마추어는 서자 취급을 받고 있다. 그래서 아마추어는 좀 얼뜬 애송이로서 늘 측은하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아마추어amateur’란 말은 라틴어 ‘amare’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사전적 의미로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애정으로 일하는 사람’을 뜻한다. 요즘에는 ‘일이 아닌 취미로 하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그 의미가 처음보다 좀 더 축소 전이되었다. 즉 의무, 직무, 책무, 과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반면에 ‘프로pro’의 원어는 ‘프로페셔널’이란 낱말로, 그 의미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으로 정의되어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칙센트미하이(Csikszentmihalyi)는 ‘몰입의 즐거움’과 ‘아마추어의 즐거움’은 늘 같은 연장선상에 놓인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그는 성취보다는 즐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이 얼마나 많은 결과를 냈는지 보다는 그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희열을 얻게 됐었는지를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속에 숨겨진 명제는 의무적으로 일하는 전문가라기보다는, 그 일을 사랑하는 아마추어가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언뜻 함축하고 있다.
동일한 작업을 프로와 아마추어가 각각 따로 맡아서 일한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더 행복감에 빠져 일할까? 행복한 사람은 단연 아마추어다. 프로는 몰입의 행복을 느낄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아마추어는 매 작업마다 몰입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행복할 수밖에 없다.
사진촬영에도 프로와 아마추어가 있다. 아마추어는 이제껏 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각과 주제에 대해 열정이 넘치는 반면에, 프로(전업 사진작가)는 정형화된 틀에 갇혀 그 대가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니 틀 밖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모험정신이니 실험정신이니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별 가치 없는 일이다. 정형화된 메커니즘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갇혀 생존할 뿐이다. 오직 고객(의뢰인)이 ‘좋아요, OK’라고 말하는 순간 모든 작업이 끝난다. 이것이 프로의 한계요, 숙명이다.
아무리 사진을 잘 찍어도 고객이 원하는 콘셉트에 맞추지 못하면 프로가 아니다. 자신보다는 늘 고객이 가치의 중심에 놓여있다. 프로는 고객의 맘에 쏙 드는 사진을 찍을 때에만 존재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작품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둘째 문제요, 그 다음의 부차적인 문제다. 좋은 사진과 잘 찍은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또 프로와 아마추어의 극명한 차이점은 프로는 돈으로 일을 하고, 아마추어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만약에 당신이 ‘프로’라면 ‘아마추어’처럼 일을 즐겨라. 아마추어는 최선을 다하지만 프로는 사력(死力)을 다한다는 말에서, 사력은 왠지 힘들고 따분하고 고달프게 들릴 뿐이다.
요즈음 방송사마다 오디션을 통해서 가수를 선발하는 것이 유행이다. 오디션 장에는 예외 없이 프로급 심사위원들이 군림한다. 그들은 노래를 막 끝낸 새내기 가수지망생들을 상대로 난도질을 해댄다. 주로 음정과 박자를 문제 삼는다. 그들은 정형화된 프레임을 통해서 새내기들의 자질과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추어 관객들은 박자와 음정은 물론이고, 느낌과 감성에 심취한다. 관객들은 가사를 통해서도 멀고 아련한 과거의 한 지점으로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도 하지만, 가끔씩 그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기도 한다.
틀에 얽매이면, 그 노래의 오묘한 심연의 맛을 느낄 겨를도 없이 좁은 프레임 속에 갇혀, 프레임 밖의 감흥이나 필(feel)은 남의 일로 취급하게 된다.
프로 시인은 아마추어 시인의 비평거리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매 단락을 이루는 낱말들을 샅샅이 분석하고 뜯어보는데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려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근접할 수도 없는 미려한 표현도 일단 난도질을 해 놓아야 직성이 풀리고 권위를 가진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가까이서 샅샅이 뜯어보면, 이 세상에 미인도 아름다움도 있을 리 없다. 뭐든지 분석에 휘말리면 휘말릴수록 맛과 신비감이 사라지는 법이다. 오히려 조금 떨어져 전체를 관조하며 그 시 속에 풍덩 빠져 시와 하나가 될 때, 무아지경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아마추어 독자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 꽃이 가지는 상징성과 비유를 애써 찾아내고 분석하지는 않지만, 자꾸 읽을수록 감칠맛과 감성의 나래를 한껏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아마추어다. 아마추어는 거칠고 설익은 과일과도 같다. 잘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 그것에 가깝다. 그러니 때 묻은 인공 향이 아니라, 진한 자연의 향기가 풍겨 나온다.
「아마추어의 행복」을 쓴 안국훈의 시가 우리의 생각을 대변해 주고 있다. ‘프로는 성공하기까지/ 자신과의 피나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엄청난 고통 뒤에/ 갈채 받고 명예를 얻지만/ 성공 후에도/ 고통스러운 경쟁은 계속됩니다/ 아마추어는 아름답습니다/ 성공보다는 일상의 즐거움에 만족하면/ 여유로운 삶이 되어/잔잔한 행복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