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보면 의미 있는 한 해였는데, 바로 국민소득 1천 달러와 수출 1백억 달러 달성이었다. 1977년생을 당시 세인들은 ‘칠칠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행운이 겹쳤다는 ‘더블 럭키세븐’이란 뜻이다. 이들은 한국의 마지막 대학 본고사와 고등학교 군사훈련을 받은 세대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1997년 말에 터진 IMF 구제 금융으로 인해서 20년 후 성인이 되자마자 경제적 고난의 길을 걸었던 세대들이 되었다. 이 해에 태어난 이들은 벌써 43세의 중년이 되었다.
연예계에서는 정윤희, 장미희가 드라마 ‘청실홍실’에서, 유지인이 드라마 ‘서울야곡’에서 인기를 끌어 2세대 여배우 신(新)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던 해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공상과학영화의 대표 격인 <스타워즈> 1편이 개봉되었으며, 무성(無聲)영화의 제왕인 ‘찰리 채플린’이 사망한 해가 바로 1977년이다. 모두 43년 전의 이야기다.
이렇게 추억의 대상이 된 1977년, 바로 이해에 지구에서 발사된 우주탐사선이 있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만든 보이저 1호와 2호다. 1호의 발사체 이상(異常)으로, 2호가 1977년 8월20일 지구를 먼저 떠났으며, 보름 뒤 발사된 보이저 1호와 함께 인류가 만든 최장수 우주탐사선이다. 벌써 43년이 되었단 말이다. 2020년 지금도 지구에서 185억㎞ 떨어진 거리를 비행하고 있다. 지구와 태양 간 거리의 무려 120배 이며, 빛의 속도로 달려도 17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다. 보이저호가 관측 결과를 담은 신호를 쏜 뒤 지구로 다시 수신하기까지 34시간이 필요하다니 가늠하기 힘이 들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보이저 1호와 2호는 둘 다 세 개의 방사성 동위원소 열전기 발전기(RTG)를 사용하고 있으며, 예상 수명을 훨씬 넘었으나 2030년까지는 지구와 통신할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란 말이 한 때 세계적으로 회자된 적이 있다.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을 부르는 말이다. 이 사진을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촬영했다. 이 사진에서 지구의 크기는 0.12화소에 불과하며, 작은 점으로 보인다. 촬영 당시 보이저 1호는 태양 공전 면에서 32도 위를 지나가고 있었으며, 지구와의 거리는 61억 킬로미터였다. 태양이 시야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좁은 앵글로 촬영했다. 사진에서 지구 위를 지나가는 광선은 실제 태양광이 아니라 보이저 1호의 카메라에 태양빛이 반사되어 생긴 것으로, 우연한 효과에 불과하다.
사진 이름에 붙은 '창백한 푸른 점'이란 저서 《코스모스》로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이 사진에 영감을 받아 쓴 책 ‘창백한 푸른 점’에서 따왔다. 세이건은 보이저 탐사호 계획의 화상(畫像) 팀장을 맡았고, 이 사진도 칼 세이건의 주도로 촬영된 것이다. 세이건은 자신의 저서에서, "지구는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라고 밝혔다. 그는 이런 의도로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릴 것을 담당자에게 지시했다. 많은 반대가 있었으나, 결국 지구를 포함한 6개 행성들을 찍을 수 있었고 이 사진들을 흔히 ‘우주의 가족사진'이라고 불린다. 다만 수성은 너무 밝은 태양빛에 묻혀 버렸고, 화성은 카메라에 반사된 태양광 때문에 촬영할 수 없었다. 지구 사진은 이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세이건은 그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다음과 같이 지구를 묘사하고 있다. 참 흥미롭고 진지하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누구에게도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저 빛나는 점을 다시 보라. 저 점이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지구이다. 저 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슬픔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겁쟁이들,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 서로 사랑하는 청춘 남녀들, 어머니와 아버지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들,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이어서 그는 또 지구를 이렇게 기술해 가고 있다.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하다. 인류역사 속의 무수한 장군과 황제들이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죽였던 사람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한 번 생각해보라.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생각해 보라. 위대한 척하는 인간의 몸짓들,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게 된다” 라고 썼다. 그는 천문학자이었지만 철학적 사고와 문학적 감성, 모두가 두드러지게 뛰어났다. 1978년에는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1980년 방영된 텔레비전 연속물 <코스모스>의 공동제작자이자 해설자로도 활동했다.
그의 철학이 담긴 아래 글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이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는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를 할 수 있는 행성은 없다. 잠깐 방문을 할 수 있는 행성은 있겠지만,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다. 좋든 싫든 인류는 당분간 지구에서 버텨야 한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고 한다. 인류가 가지는 자만(自慢)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이 사진이다. 나에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더 강조 하고자한다“
그렇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지극히 작은 점, 창백하고 푸른 점에 지나지 않았다. 우주의 중심이기는커녕 극히 작은 태양을 도는 여러 개의 점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만약 우주에서 지구의 크기를 비유한다면, 바닷가에서 한 알의 모래와 같다. 한 알의 모래 같은 지구에서 인간들이 서로 증오하고 싸우는 것을 외계인들이 본다면, 아마 절로 웃음이 나올 법도하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고 하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