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4월 1일,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따스한 날이었다. 33년 전 만우절, 대구와 인접한 경산군 진량면 ○○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였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이, 그날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기에 기억을 되살려 본다.
새벽 운동으로 조기회 회원들과 테니스를 하고 학교 사택으로 돌아와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아침밥을 먹고는 보통 날과 똑같이 콧노래를 부르며 교무실로 향했다.
만우절도 보통의 날과 다를 건 없었고, 6교시 수업을 마치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늘 그렇게 하듯 동료들과 노가리 안주에 막걸리를 한 잔 걸치고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왔다. 딸아이가 달려와 안기려는데 아내가 하는 말,
“술 마시려고 카메라는 학교 두고 왔소?”
“카메라는 무슨 카메라?”
“2교시 마치고 중간놀이 시간에 자기 반 학생이라며 선생님께서 카메라를 가져 오라고 한다고 해서 내 줬는데?”
“뭐라고, 난 안 시켰는데?”
하늘이 노랗게 변했고 취했던 술이 확 달아나 버렸다.
그 카메라가 어떻게 산 것인가? 용돈을 절약하고, 다른 사람의 숙직을 대신해주며 숙직비와 출장비를 모았다. 카메라가 벌써 몇 갠데 또 산다며 아내에게 이 욕 저 욕 다 얻어먹고 산 것이 아니던가? 한 달 월급보다도 더 주고 산 카메라. 난 딸을 안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털썩 주저앉아 고함을 냅다 질렀고, 딸아이가 놀라 엉엉 울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참 선생님도” 하며 웃는 것도 모르고. 아끼는 카메라, 몇 번 찍어 보지도 못했는데 집으로 와서도 아깝고 아까워 잠도 오지 않았다.
설친 잠에 눈은 벌겋게 붉어져도 학교는 가야지 하면서 ‘어느 놈인지 잡히기만 해 봐’ ‘학교에 가서 어떻게 조사를 하지’하는 생각으로 꽉 찼다. 교무실에 들어서니 선배 선생님들께서 기다렸다는 듯 “안 선생 어제 한 건 했다며?” 크게 웃는다. 조그만 동네라 벌써 소문이 났구나 생각하니 카메라보다 더 부끄러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빨리 교실로 올라갔다. 조사해 봐야지 하며 단숨에 4층으로 올라가니 빨간 보자기가 교탁 위에 놓여 있었다.
“내 카메라다!”
범인은 우리 반의 전교 어린이 회장이었다. 불러서 물어 보았다. 선생님께서 카메라 메고 다니며 친구들 사진을 찍어 주는 게 그렇게 멋있어 보이고 좋았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학생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때 장래희망을 결정했고, 죽을 작정하고 친구들 셋이서 만우절에 한 번 사고를 치자고 계획을 했다는 거였다. 필름을 사서 사진관에서 끼워 학교를 마치고 온 동네를 다니며 폼을 잡으며 찍었다고 한다. 흔들리고 초점도 맞지 않아 사진으로 인화된 건 몇 장 없었지만 지금도 우리가 만나는 날엔 늘 가지고 온다.
그 제자 건우(가명)는 퇴직이 얼마 남진 않았지만 지금도 모 방송국에 책임자로 근무하며, 내가 중신해 친구 딸과 결혼을 했다. 부족한 사람을 선생이라고 스승의 날을 잊지 않고 제자들을 불러 모아 해마다 잔치를 벌이며 옛날의 이야기를 한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지금의 내가 있는 건 선생님 덕분이라는 공치사도 잊지 않는다.
건우야 이제 미안해하지 마, 당당해져 봐. 대한민국 최고의 방송국이잖아. 그리고 선생님의 제자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며, 선생님을 자랑하며 다니는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 다른 사람을 통해 칭찬의 말을 듣는 건 얼마나 기쁜지.
더 제자들과 친해지고
더 제자들에 대해 알고
더 제자들을 자랑하고
더 제자들을 사랑할 게.
또 만나자 건우야 그리고 제자들아.
(사진설명) 만우절 추억이 깃든 카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