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슬링-행복한 가정] 내 핏줄도 아무 소용없습디다
[카운슬링-행복한 가정] 내 핏줄도 아무 소용없습디다
  • 시니어每日
  • 승인 2020.04.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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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는 77세, 나도 이 세상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는 형제가 8남 2녀이고 오빠 하나에 내가 둘째이지만 장녀입니다. 이웃들은 다복하다고 말들 했습니다. 나는 24세 때 중등교사로 발령을 받고 정년을 하자마자 외국여행도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다녔습니다. 남편은 이혼하고 없었지만 아들 하나를 키웠고 그만한 연금이 있었기 때문에 사는 데 별로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난 암으로 항암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내 마음대로 돈을 썼지만 온 집안이 모두 나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촌 동생도 소식이 없다가 찾아오면 으레 돈 이야기입니다. 내가 암에 걸렸다고 하니 가져간 돈 줄 생각은 안하고 도망가듯 가서 소식도 없습니다.

여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없으면 소소하게 가져가곤 했습니다. 병원에서 1년 밖에 못산다고 하기에 내가 죽으면 동생 아들 결혼 때 부조도 못할 거라며 5백만원을 주었는데, 내가 1년을 넘겨 살고 있으니 준 돈 때문인지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오질 않습니다.

형제가 많아도 남동생 일곱은 하나같이 다 암으로 돌아갔고 이제 여동생과 오빠와 나만 남았습니다. 오빠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 불효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 안 되길 바라겠느냐고 하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어찌 그리 이해못하느냐고 나는 오빠와 크게 한 번 다툰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섭섭했는지 나하고는 남남이나 다름없습니다. 연락도 하지 않는 남매 사이가 되었습니다.

여동생은 미스코리아 여섯 번째로 뽑힌 미녀였는데 그 인물 몸매는 어디로 갔는지 그냥 뚱보가 되어 있습니다. 누가 봐도 전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저 중년의 쪼들리며 사는 아주 평범한 아줌마가 되어 있습니다.

아들도 변변한 직장이 없이 어머니가 맞을 항암치료 한 세트도 못 도와 주고 있답니다. 나도 얼마 더 살지는 못할 것을 예감합니다만, 우리 집안 이야기인데 아들 흉 한 번 볼까요? 글쎄 항암을 맞으러 가자고 해놓고는 어머니만 병원에 두고 자리를 피한 아들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당하고 보니 섭섭하지도 않습니다. 동회에서 쌀 한 포대 주고 갔습니다. 엄마가 돈을 두고 있는 줄 아는 모양입니다. 내가 1`년을 넘게 사니 돈은 떨어지고 항암주사 맞으러 갔다가 못 맞고 있는데...... 이러면 되겠습니까? 가족은 다 외면하고 누굴 믿겠습니까? 지금 당장 죽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맘대로 안 되고 어찌 하면 좋을까요?

 

조언드립니다:

그냥 듣기만 해도 참 서운하시겠습니다. 오빠나 여동생이나 아들이나 사촌동생이나...... 선생님이 도와줄 땐 돌려받으려고 했겠습니까만, 자신이 어려운 처지가 되고 보니 그때 생각도 나고 섭섭할 수 있겠습니다. 버거운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필요하겠습니다.

동회에서 쌀을 받을 정도면 많이 어렵겠는데 혼자 생활하신다니 얼마나 불편하시겠습니까? 도우미나 또 받을 수 있는 복지제도가 더 없는지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선 섭섭한 마음을 가지시면 끝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오늘 내일 하는 분에게 그러겠습니까.

오빠는 그렇다 치더라도 동생이나 아들도 얼마나 형편이 좋지 않으면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오려고 해도 가진 것은 없고 못 와 봐서 피눈물을 쏟을 수도 있습니다.

그 입장도 너그럽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1년을 더 사셨으니 앞으론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모른다고 생각하시고, 죽음이 두렵지 않게 느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면 죽는 것이 정한 이치입니다. ‘하나님이 날 암이란 것을 주어 데려가시나 보다 고맙기도 해라’ 라고 넓게 마음 먹어야 두려움도 좀 가시고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저도 늘 죽으려면 암으로 죽고 싶었습니다. 치매나 이상한 병 걸리면 품위는 간 곳 없고 추하게 죽을 것 같아 그러기 싫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을 살아도 맨 정신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옷 같은 것은 정리하셨나요? 좋든 안 좋든 가진 것은 살아계실 때 다 정리하시고요. 깔끔하게 해놓으시면 죽음이 기다려질 수도 있습니다. 조금 일찍 가느냐? 늦게 가느냐가 문제지 누구나 다 가는 길입니다.

동생에게도 참 잘 주었다라고 생각하시고 보고 싶으면 한 번 오라고 전화라도 먼저 하십시오. 아픈 언니가 전화해서 한 번 오라고 하는데 거절할 아우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안 오면 그럴만한 사연이 있겠지 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다투었다고 하지만 오빠는 여든이라는 나이도 있고 내 핏줄인데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얼마나 마음 아파할까요? 오빠에게도 마지막이라고 한 번 오시라 하여 못 다한 이야기도 다하셔야 합니다. 오빠 오빠하면서 ‘그때는 이러이러하여 오빠한테 달려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 잘못이 컸어요. 오빠에게 용서를 빕니다.’ 라고 하면 어느 오빠가 죽어가는 동생에게 쌀쌀하게 굴겠습니까?

선생님 생각의 정반대로 기다릴 수도 있으니까요. 누구보다도 앞서 달려올 것 같습니다. 귀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으면 조카들 주라고 내줄 수도 있고요. "올케도 우리 집에 시집와 엄한 오빠와 산다고 고생했다" 라며 이런 저런 이야기 해주면 풀리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동생이나 아들도 섭섭하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힘들면 같이 불러도 좋고 아니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불러 다 마음 풀고 돌아가셔야 할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섭섭하다고만 하시지 마시고 이제 남은 숙제라 생각하고 다 풀고 가시길 바랍니다.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유가형(시인·대구생명의전화 지도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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