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마을 교외에서 여성 버스 기사가 손님을 태우고 어느 한적한 산 고갯길을 달리던 중 한 중년 남자가 손을 들어 버스를 탄다. 무료한 버스 안의 모습이다. 한참을 열심히 달리던 중에 또 버스를 가로막는 두 남성이 있었다. 버스에 오른 두 남성은 다짜고짜 승객들을 향해 돈을 내라고 하여 얼마 안 되는 승객들의 돈을 거둔 다음 내리는 순간 여자 기사임을 보고 기사를 끌어 내리려 한다. 승객들은 하나같이 모른 척하고 있다. 보다 못한 중년 남자가 말리다가 두 남성에게 심하게 얻어맞는다. 이어서 두 남성은 여자 기사를 숲 속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다.
한참 뒤 두 남성과 함께 돌아온 여기사는 잠깐 승객들을 원망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운전대를 다시 잡는다. 하지만 두 남자에게 심하게 맞은 중년 남자는 차에서 내리게 한다. 황당해 하는 그 남자가 내리지 않고 버티자 안 내리면 출발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때서야 승객들이 힘을 모아 그 남성을 끌어내리고 만다. 남성이 절룩거리면서 차로 다가서자 어느 승객이 그 남자의 보따리를 차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차창을 닫으면서 차는 출발하게 된다.
중년 남자는 고갯길을 혼자서 터벅터벅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 멀리 커브길을 돌아가던 버스는 그만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져서 여성기사는 결국 중년남자 한 사람만 제외하고 승객들을 몽땅 지옥으로 데리고 함께 간다. ‘버스44’라는 2011년 홍콩에서 제작된 11분짜리 단편영화로 중국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베니스영화제 수상작이며 내용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영화이다.
최근 'n번방' 기사가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그 가운데서도 ‘박사방’의 잔혹한 행각이 너무 끔찍스럽다. 두 얼굴의 20대 청년에 의한 대규모 디지털 성범죄와 성 착취물이 사이버 공간을 떠돌고 피해자 중에는 미성년자가 대거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민망스럽게 한다. 1970-80년대의 역전 골목 간판 없는 여인숙 사창가에서 벌어지던 1대 1 호객행위가 n번방이라는 얼굴 없는 디지털 성범죄로 크게 변했다. 가입자가 수만~수십만 명에 이르며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가지가 얼마나 뻗어있는지도 모른다. 연령층도 10대에서 40, 50대까지 광범위하다고 한다. 용감한 여대생 두 명에 의해서 바깥세상으로 드러나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나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눈물로 호소하며 TV진행자와 대담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위기상황에서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사회모습이 안타깝다. 이제 사회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져서 자신의 일이 아니면 무관심이다. 혼족(무엇이든지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여 혼밥, 혼술, 혼놀 등 남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 즐기고 만족하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전철이나 버스 등 복잡한 차 안에서도 휴대폰이나 이어폰으로 홀로 즐기며 불의(不義)의 사고나 위험을 보아도 얼른 나서지 못하는 최소한의 도덕적 책무마저 저버리는 현실이다.
고령화와 저출산에 의한 가족해체 현상과 디지털문화와 같은 사회변화가 너 죽고 나 살기식의 극심한 생존경쟁으로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긴 탓일까? 전체를 생각하기보다는 나 자신만의 이익 추구와 함께 철저히 자기중심화해 가고 있는 현실이다. 네가 살아야 나도 살수 있다는 공동체 시민의식은 어디 가고 남의 일에 끼어들거나 참견이 화를 당하는 세상이요, 위험 상황에서 몸 사리기로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