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을 맞으며] 영원한 꽃띠 할매.할배가 펼치는 재미난 3대 이야기
[가정의 달을 맞으며] 영원한 꽃띠 할매.할배가 펼치는 재미난 3대 이야기
  • 김동영 기자
  • 승인 2020.04.29 16: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9세 할매 박필선 씨와 11세 손자 김도현(대구 북구 관천초 4년)는 늘 바쁘다. 할배는 옆에서 뒤치다꺼리 하느라 또 늘 바쁘다. 하지만 할매에게 자식의 뒷바라지를 부득이 의존하는 둘째 딸 맞벌이 부부는 오히려 늘 흐뭇하다.

◆영남알프스 9봉 등정
할매와 손자는 경남 밀양 인근에 위치한 영남 알프스 9봉 마지막 등정을 위해 지난 3월 주말 다시 길을 나섰다. '영남 알프스' 는 울산, 밀양, 양산, 청도 등에 넓게 펼쳐진 해발 1,000m 이상의 간월산, 천황산, 운문산 등 봉우리들의 파노라마를 가리킨다. 마치 유럽의 알프스 비경에 견줄수 있다 해서 영남 알프스라고 부른다. 이 9개 봉우리를 다 오르면 완주증을 준다. 할매는 이번이 두번째 도전이다. 한 번은 자전거로, 이번에는 걸어서 간다. 이 길에 열한 살 도현이도 좋아라 나선다. 여느 초등학생이랑 많이 다르다.
휴대폰도 없고 컴퓨터 게임도 않는다. 그저 할매, 할배가 이끄는 대로 산으로 강으로 다니는 것을 즐긴다. 할배는 이 분주한 할매, 손자 사이에서 운전수 역할과 '보급대' 역할을 웃으며 묵묵히 수행한다.

 

◆열한 살 도현이의 자연사랑 도전기
도현이의 자연 사랑이 이번 처음은 아니다. 팔공산 별빛걷기, 북구 마라톤 10Km, 한티성지 가는길 45.6Km 걷기 등을 지난해에 해냈다. 또 자전거에도 도전해서 섬진강 일주 146Km도 해냈다. 한라산 등반도 해냈다. 수영도 인라인도 잘한다. 악기도 제법 분다. 방과후 수업에서 배운 클라이넷은 종종 무대에 나가 재능을 발휘할 정도다. 이 모든 일상은 분주한 할매가 늘 앞장서서 이끈다. 수영, 인라인, 자전거등도 할매가 먼저 배워서 손자의 손을 이끌고 분주히 다녔다.

◆슬하에 1남2녀, 손자손녀 4명
이 왁자지껄한 할매와 느긋한 할배의 가족은 넓게 펼쳐져 있다. 1남 2녀의 자식을 두었다. 큰 딸은 중학교 미술 교사이고 사위는 미국 네바다주 소속 병원의 의사다. 서울대학교 의과대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방학이면 미국으로, 한국으로 1년의 반은 왔다갔다 한다. 할매도 손녀 손자 ( 성예지 13세 , 성시훈 11세 )를 돌보러 미국으로 따라갔다. 영어를 못해 힘겨웠지만 이내 용감한 할매로 변신하여 자연속에서 열성으로 애들을 돌보곤 했다. 그때 자전거를 처음 경험했다.  

둘째 딸 역시 고등학교 수학 교사이다. 과목이 수학이고 고등학교에 재직하다 보니 야간 자습 등으로 자주 늦다. 회사원인 남편도 늘 출장이다. 자연히 도현이를 할매에게 의지하곤 했다. 막내 아들은 포항 포스코에서 일한다. 작년에 막 치른 결혼 후 이제 3개월된 아기가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할매와 아들은 둘이 유럽 배낭여행 다녀온 기억을 소중히 기억하고 있다. 2014년 아들이 포스코 입사 확정 후 모자는 마치 데이트하듯 유럽 곳곳을 손잡고 쏘다녔다. 때론 쫄바지도 입고 무릎 위 스커트도 입고서 그렇게 추억을 차곡차곡 채우고 돌아왔다. 할매는 혹시나 자식들과의 추억이 한쪽으로 쏠릴까봐 딱딱 정리해서 한 자녀씩 기억 창고에 구분하여 저장해둔다. 큰딸, 작은딸, 막내아들 그리고 올해 태어날 예비 아기까지 포함하여 네 명의 손자, 손녀와의 추억쌓기는 지금까지 계속 쉼없이 이어진다.

◆늘 미래를 꿈꾸는 할매
하지만, 사연없는 집이 어디있고 늘 평탄하기만 한 가정사가 어디 있으랴!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얘기를 해달라고 하자 손사래를 친다. 묻어둔 얘기는 묻어둔 채로 지난 한숨에 날려버리고 지금에 충실하고 싶다고 한다. 과거보다는 오늘과 미래에 눈을 든다.  여느 할매처럼 하소연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도현이와 미래의 새로운 도전거리를 찾는 일에 열심이다. 아직 해야 할일들이 부지기수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69세 할매의 자전거 사랑, 그랜드슬램 백두대간 라이딩
할매는 몇 해 전부터 자전거에 팍 꽂혔다. 못 말린다. 대단하다. 30대 청춘들도 쉽사리 무시하지 못한다. 자그마하고 단아한 여성의 체구 어디에서 그런 용기와 힘이 솟아날까 자못 궁금할 지경이다. 대한민국 자전거 그랜드슬램을 마쳤다. 4대강을 비롯하여 제주도 동해안 일주까지 약 1,900km에 이르는 장대한 길이다. 울릉도도 다녀왔다. 일본 히로시마도 자전거로 누볐다. 베트남 북부 산악지대 하장도 너끈히 해냈다. 남해 서해 등 해안 곳곳 섬 지대를 자전거로 누볐다. 영남 알프스 9봉도 올랐다. 강원도 운탄고도 길도 벌써 5차례나 다녀왔다. 1,300m 고지대이다. 가실성당에서 팔공산에 이르는 한티가는길 45.6km도 도전해냈다. 지금은 대한민국 산악정맥길 백두대간 1,900km를 약 10개월에 걸쳐서 도전 중이다. 웬만큼 자전거 좀 탄다 하는 젊은이들도 힘겨워 하는 대장정이다. 그 자그마한 몸매 어디에서 힘이 나오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것도 69세의 나이에! 뽕바지 입고 헬멧 쓰고 호주머니에 딱 2만 원만 넣고서 집을 나서는 할매의 자전거 도전은 연일 이어진다.

◆자연 속에서 노니는 3대 가족들
할매, 할배의 일상은 늘 자연과 소소한 재미 찾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 주말이면 가급적 차를 몰고 교외 자연을 찾아 나선다. 맛집, 멋진 카페찾기 놀이가 아니다. 개울이나 계곡, 산, 바다를 찾는다. 그리곤 걷는다. 꽃도 만나고 새도 만나고 구름도 만난다. 사진도 곧잘 찍는다. 그리곤, 집에서 직접 내린 커피랑 직접 만든 김밥과 샐러드로 만찬을 즐긴다. 인스턴트가 없다. 할매는 하나씩 손수 정성껏 만든다. 화려함도 적다.  하지만 마음의 뿌듯함은 마구 크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할배는 은근히 즐겁다.  

자연과 도전 속에서 자란 손자, 손녀들은 할매, 할배랑 노는 것을 제1번으로 손꼽는다. 그 나이에 컴퓨터 놀이나 인스턴트 놀이를 좋아할 법도 하지만 어릴 적부터 자연을 접해온 터라 당연하다. 그런 할매를 바라보는 두 딸은 안쓰럽기보다는 분주함에 못 따라가서 힘겹다. 할매의 성화에 자전거 타기를 시작한 딸은 강 가에 도착하면 "엄마 다녀와, 난 여기서 좀 쉴래" 하곤, 슬슬 뺀다. 그래도 그 나이에 건강하게 젊은이 이상으로 활기찬 할매를 보는 것은 항상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되뇌인다.

할매의 손자, 손녀 돌보기는 미국 땅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큰딸의 맏손녀 예지의 산파 노릇하러 가서 시작된 미국 생활은 1년 이상 지속되었다. 딸 부부가 출근하고 나면 할매는 갓난 아기를 들쳐 업고서 산과 강을 찾으며 자연을 접했다. 외로움도 컸지만 보람도 컸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또 태어난 시훈, 도현이까지 세명의 손자, 손녀는 오롯이 할매의 몫이었다. 하나는 들쳐 업고 둘은 유모차를 밀면서 동요도 부르고 직접 만든 음식을 먹이며 정성으로 돌봤다. 아기들의 아장걸음이 시작될 때부터 자연을 찾았다. 그러한 할매의 자연사랑은 그대로 손자, 손녀에게도 이어져 참교육의 장이 되었다.

보다 속깊은 얘기를 들으러 밤늦게 집으로 찾아갔다. 늦은 시간이라 할매와 둘째딸의 얘기만을 들어봤다.

먼저 둘째딸에게 물어봤다.

▶할매랑 도현이가 높은 산 등정할 때 걱정되지 않던지요?

-할매가 도현이가 어릴 적부터 한라산, 태백산, 함백산 등 자주 데리고 다녀서 만류도 했지만, 도현이도 즐거워 하고 독립적인 성향도 길러지고 의젓해져서 지금은 정말 보기 좋아요.

▶도현이가 여느 애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요?

-자연을 많이 접해서인지 휴대폰도 없고, 컴퓨터 게임도 전혀 안해요. 웬만큼 어려운 일도 혼자서 척척 해내고, 모든 일에 겁을 내지 않아요. 책도 많이 읽고요.

▶손자를 돌보는 할매가 안쓰럽지는 않은지요?
-안쓰럽다기보다는 죄송하지요. 갓난 아기 때부터 친정엄마에게 도현이를 부탁해 왔어요. 저희 부부가 일을 하고 또 제가 고등학교에서 수학교사를 하다 보니 늘 늦고 종종 주말에도 출근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도 싫은 내색없이 돌봐 주셔서 감사할 뿐이지요. 오히려 지금은 도현이가 할매를 더 따를 때면 샘날 때도 있어요.

▶혹시 더 바라시는 것이 있는지요?
-엄마가 지금처럼 건강하고 오래도록 활기차게 생활하시기를 바라지요. 다른 것은 없어요. 우리 가족들의 추억도 더 많이 만들고 싶어요.

 

옆에 있던 할매에게도 몇가지 물었다.

▶그 연세에(69세) 등산하고, 고지대 자전거 타시면 위험하지 않는지요?
-자연 속에 사는 것이 가장 즐거워요. 또 그것을 애들과 함께 하니 나이를 잊어버린지는 한참 되었어요. 눈 뜨면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생각하면 마음이 설렙니다. 사실 세 명의 손자, 손녀를 키운다고 약 10년 동안 매여서  살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걔들과 함께하니 새로운 즐거움이 더합니다.

▶어디 몸이 불편한 곳은 없는지요?
-등산, 자전거를 즐기고 나서 그 흔한 잔병치레도 전혀 없어요. 감사하지요. 지금도 1,000m 산을 자전거로 너끈히 오를수 있어요. 팔공산 자락 하늘정원(해발 1,050m)도 자전거로 몇 차례 다녀왔어요.

▶또 달리 도전하고 싶은 곳이 있는지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880km를 자전거로 도전하고 싶어요. 약 12일 정도 걸리죠. 시간이 허락하고 동반자만 있다면 한 달 이상 걸어서도 가고 싶어요. 당초 올 봄에 다녀오려 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취소되어 아쉽지요. 다음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필선 님에게 나이는 무엇인가요?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저는 몇 년 전부터 나이는 잊어버렸어요. 도현, 시훈, 예지랑 지내다 보면 곧장 11살짜리 나이로 돌아갑니다.

▶다른 소망이 있으신가요?
-가족들 건강하고 지금처럼 무던하게 살아갔으면 합니다. 특별한 욕심은 없습니다.

 

5월 가정의 달, 우리모두 꼭 행복해져요!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흐뭇함을 멈출수 없었다. 말 못 할 역경 속에서도 1남 2녀 자식들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게 건사시켰고, 이제는 그 자식들과 하나씩 차곡차곡 추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이 들어서 병원 문을 두드리는 일상이 아니라 헬멧 쓰고 자전거 뽕바지를 입고 한껏 패션을 부리며 산길을 찾아나서는 할매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무뚝뚝한 전형적인 경상도 할배의 은근한 웃음은 큰 양념이다. 11살 도현, 시훈 또 예지와 무슨 꿍꿍이를 꾸밀까를 염탐하는 것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아뿔싸!

"11살 도현이가 진짜 스스로 휴대폰과 컴퓨터 게임을 거부했는지? 혹시나 엄마의 성화 탓은 아닌지? 또 도현이가 스스로 원해서 영남알프스 9봉을 올랐는지. 할매의 득달에 떠밀려서 간 건 아닐지?"

잠자는 도현이를 깨워서라도 물어봤어야 제대로 된 검증이 될 터인데, 기자의 역량 부족이다. 아쉽다. ㅎㅎ.

영원한 꽃띠 할매.할배와 1남 2녀의 자식, 사위, 며느리, 또 4명의 손자, 손녀들이 펼칠 미래의 아름다운 삶의 여정을 기원한다.

올 4월은 코로나 바이러스 만큼 심술궃은 날씨 또한 괴퍅했다. 하지만, 가정의 달 5월에는 완연한 햇볕과 포근하고 훈훈한 순풍을 소망한다. 그리하여 모든 이들의 얼굴에도 따뜻한 웃음이 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도 이제는 진정한 봄을 누릴만큼 너무나도 오랫동안 움츠려있지 않았던가! 그깟 코로나도 훅 사라지리라!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다.

하늘을 본다.

'오늘밤은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