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의 ‘칠백만원’
박형준의 ‘칠백만원’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8.26 10:0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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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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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의 ‘칠백만원’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식구들 몰래 내게만

이불 속에 칠백만원을 넣어두셨다 하셨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불 속에 꿰매두었다는 칠백만원이 생각났지

어머니는 돈을 늘 어딘가에 꿰매놓았지

대학 등록금도 속곳에 꿰매고

시골에서 올라왔지

수명이 다한 형광등 불빛이 깜빡거리는 자취방에서

어머니는 꿰맨 속곳의 실을 풀면서

제대로 된 자식이 없다고 우셨지

어머니 기일에

이젠 내가 이불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얘기를

식구들에게 하며 운다네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가 이불 속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내 사십 줄의 마지막에

장가 밑천으로 어머니가 숨겨놓은 내 칠백만원

시골집 장롱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는

이불 속에서 슬프게 칙칙해져갈 만원짜리 칠백 장

 

시집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창비. 2020년 6월 25일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모친이 돌아가시고 집 안 정리를 하다가 소파 방석이 불룩해진 것을 발견했다고. 덧댄 천으로 꿰매진 묵직한 뒷면을 뜯었더니 현금 다발이더란다. 5만 원 권 지폐가 2천만 원이나 되는 아주 큰돈이었다는데 아마 먼 길 떠나실 줄 예감하고 미리 준비해두신 게 아니었을까. 먼저 금액에 놀라고 감쪽같이 숨긴 지혜에 또 놀랐다. 우리 엄마는 노름에 정신 팔린 아버지 눈을 피해 돈이라 생긴 건 무조건 감추었다. 젊은 나이에 황망히 세상을 뜨자 애도哀悼 보다는 돈의 행방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집 안 어딘가에 있을 돈 찾기에 혈안이 되었지만 끝내 미궁에 빠졌고, 지금은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전설로 묻혔다.

‘칠백만원’은 서사적인 진술로 이루어진 이야기 형식의 시다. 외형상으로는 독백 형태를 띠고 있다. 보통 이런 경우엔 정서적 호소력이 강하여 공감을 끌어내기 쉽다. 돈을 속곳에 꿰매고 다닌 어머니는 거기가 가장 안전한 자리란 걸 아신 거다. 장가 못 간 아들을 위해 모운 칠백만원은 당신 목숨과 같은 의미일 테다. 그럼에도 부피 때문에 이불에 꿰맨 것이겠다. 아뿔싸! 그게 화근이다. 돈과 어머니의 동일체랄까. 사라진 돈이 곧 어머니이기에 울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시골집 장롱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는/이불 속에서 슬프게 칙칙해져갈 만원짜리 칠백 장’ 덕분에 시인의 시심이 마르지 않겠다. 이처럼 삶에 천착한 시는 울림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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