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힘든 시기 보내고 있어
“성질은 잘 내지 않습니다. 어지간하면 내가 손해보고 맙니다. 그리고 내가 덕 보고 얘기를 끝내는 것이 아니고 내가 손해 보더라도 상대방 편하게 대해주고 끝내는 것이 마음 편합니다.”
45년 외길 인생! 편안한 인상에 얼굴엔 항상 밝은 미소가 있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제작 과정과 재질, 제품의 구조를 상세히 설명하며 최선을 다한다. 대구교육대학교 정문 인근에 위치한 '진 화방' 최종기(65·대구 남구 명덕로 40길 79) 대표이다.
최 씨도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손해를 피해 갈수는 없었다. 매출이 전혀 없어 1월부터 4월 말까지 지난 4개월 동안 50만 원도 벌지 못했다고 말했다. 길에 사람이 다니지 않고 주거래처인 학교가 신학기 환경 개선 등 교체 작업 시기이지만 개학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게에 출근해도 손님이 없지만, 지인을 찾아가도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놀러 다닐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집에 있으면 더 답답해 문만 열고 개점휴업 상태로 있다고 했다. 이 기간 일감이라고는 표구하는 친구가 주문받은 것 중 화방에서 할 수 있는 액자라며 들고 온 것과 주택회사 조감도 한 점이 전부였다.
최 씨는 “화방은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나 유화, 판화 같은 서양화 계통의 작업을 하는 곳이고, 표구사는 병풍 족자 같은 화선지로 되어 있는 그림인 동양화 계통을 취급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쉽게 이해할 것”이라며 화방과 표구사에 대해 설명했다.
이처럼 표구사와 화방 일이 다르다 보니 일감이 들어오면 표구는 전문적으로 하는 친구에게 의뢰하고 화방 일은 최 씨가 맡아 고객이 원하고 만족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다.
최 씨는 지난 1975년 20세 나이로 대구 중앙파출소 뒤 미도화방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처음에는 대패와 톱질, 끌 등으로 자재를 다듬고 맞추는 일을 했다.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손도 많이 다쳤다. 당시 월급 4천 원이었다. 5년간 일을 배워 1980년 남대구초등학교(대구 남구 중앙대로 47길) 앞에서 가게를 얻어 처음으로 자신의 화방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때 진실하게 운영하라는 뜻으로 지인이 지어준 상호가 진(眞) 화방이다. 인근으로 한 차례 가게를 옮겼고, 지금의 위치로 이사 온 것은 2001년이었다. 3층 건물을 구입하여 1층을 화방으로 운영하고 있다.
최 씨의 화방은 31㎡(10평) 규모로, 완성된 액자와를 진열하고 고객을 맞이하는 사무실, 그리고 나무, 수지 몰딩 등 자재와 재단기 등 기계가 있는 작업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최 씨가 화방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관련 가게들이 많지 않았다. 그때는 액자나 족자를 보면 누구가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던 시대였다. 지금은 기계가 좋아 아무나 다 할 수 있고 업체 수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망치로 일일이 박던 못은 전동드릴이, 톱으로 썰고 작두로 하던 작업도 재단기가 대신하고 있다. 대패로 다듬고 각종 몰딩 등의 자재를 끼워 맞추는 작업도 조인기 등 기계가 대신한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기술이 필요했으나 지금은 기계만 믿고 가게를 차린다고 했다.
“옛날에는 이 일을 하려면 기술이 좀 필요했지만 지금은 기계가 있어 조금만 배우면 할 수있다”며 “기계가 잘 나와 이 업종이 괜찮은 줄 알고 많이 뛰어들고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폐업하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했다. 최 씨는 또 "기계 공장에 가보면 하루에도 몇 대씩 재단기 등 각종 기계가 중고로 나와 있다”며 새로이 시작할 때 신중을 기해줄 것을 조언했다.
최 씨의 주 거래처는 학교이다. 매년 입학식, 운동회, 졸업식이 있듯이 가을이 되면 학교마다 학생들의 글짓기, 그림그리기 등의 전시회를 개최한다. 비록 계절적으로는 한철 사업이지만 추석에 떡집이 바쁘듯이 사전 준비과정을 완벽히 해 두어야 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규격에 맞추어 조립해 납품해야 하는 관계로 여름부터 준비를 철저히 해 두어야 한다.
학교 예술제는 대부분 매년 10월 15일에서 말일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봄에는 신학기로 학교에서 환경구성을 많이 한다. 선생님이 새로 오시고 학교의 내용물도 바뀌는 계절이지만 예전처럼 일감이 많지 않다고 한다.
최 씨는 “수 년 전만 해도 일이 한창 많을 때는 직원도 두고 아내와 함께 납기를 맞추기 위해 정신없이 일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혼자 할 일도 없다. 그런 시절이 다시 오지는 않을 것 같다”며 지난날을 회상한다.
최 씨는 45년간 화방을 운영하면서 자녀 3명을 출가시켰고 가족 모두가 과오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돈 쓸 일이 많이 없으니 어려운 시기도 버텨가고 있지만 자녀들이 한창 클 때 이런 사태가 왔으면 아마 못 살았을 거예요. 빨리 경기가 좋아져 이 업종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이 웃음을 되찾기를 바랄뿐”이라며 긍정의 힘을 강조했다.
최 씨는 이 일을 오래 해왔고 나이가 들어도 체력이 닫는 한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거리 들어와도 일거리가 없어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운영할 계획이다. 남들처럼 뚜렷하게 봉사는 많이 하지 못했지만 일상에서 가족의 소중함과 현업에 최선을 다하며 늘 미소를 잊지 않고 행복을 찾는 최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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