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 34만 파월 장병들이여!
생과 사의 기약도 없이 월남으로 출발한 전우들, 조국을 위해 한 목숨 다 바치겠다는 높은 구국의 일념 하나로 국가의 명령에 따라 불구덩이 전쟁터로 향하던 그날을 반추해본다.
이별의 슬픔을 달래려고 모여든, 수십만 환송 인파와 태극기 물결이 부산항 제3부두를 가득 메웠다. 전투부대인 맹호, 백마, 청룡부대원들은 부대가를 목이 터져라 부르며 오직 살아서 돌아오리라, 승전고를 울리면서 개선 귀국하리라 맹세했던 이곳이 아니었던가?
살아오기를 기원하며, 사랑하는 부모님, 가족, 친지들이 마냥 부둥켜 안고 땅을 치며 통곡하였던 그 절규의 아우성,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애절한 눈물을 흘리던 파월 장병들은 면도칼을 들고서 자기의 머리카락을 잘라달라고 부탁했다. 손톱을 깎아 모으고 머리카락과 함께 손때 묻은 백지에 싸고 봉투에 넣어 환송 온 병사에게 건네주었다. 나의 부모님께 우편으로 보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사지로 간 아들이 살아오지 못하면 부모님이 나의 머리카락이라도 만져보시도록 하겠다는 애절한 마지막 부탁이었다. 파월 장병 모두가 통곡의 머리카락 자르기를 행하던, 애잔한 그 현장을 그 누가 알아주랴.
거대한 미군 수송선 뱃고동 소리는 죽음의 전쟁터를 향하여 떠날 때, 이별의 눈물이 제3 부두를 넘쳐나게 하였다.
아! 대한민국이 마지막 보이는 섬이다. 바로 부산 오륙도를 지날 때였다. 5천여 명의 장병들이 약속이나 한듯 갑자기 대화를 멈추었다. 눈물을 감추려고 속가슴앓이로 훌쩍거린 목멘 울음소리…. 이제 조국을 뒤로 하고 떠나가노라….
1965년 1인당 GNP 78$로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대한민국이 아니었던가! 파월 전장(戰場)에서 그들이 9개 년 동안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외화 74억6천만$로 한강의 기적을 태동시키고, 부국강병의 초석이 되었음을 아는가 모르는가?
제1,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목표의 400%를 달성하여 대대로 이어온 가난의 보릿고개를 영원히 탈출하게 되었다.
이역만리(異域萬里) 폭염의 전쟁터에서 피와 땀, 눈물을 뿌리며 국위를 선양한 영웅들이다. 5천여 명의 전사자와 1만여 명의 상이용사, 15만 명의 고엽제 환자, 그들은 살신성인 정신으로 세계 경제대국 12위권에 자랑스럽게 금자탑을 이룬 대한민국의 역군이 아니었던가 !
세월 따라 70~80세 노병들이 되었지만, 그때 목숨 걸고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한 몸 던진 애국자요, 조국 발전의 선구자임이 분명하다.
정글 속 수많은 독충들, 적의 기습에 대한 공포심, 총탄·포탄에 쓰러져 유혈이 낭자한 전우의 모습 등은 아직도 노병들의 뇌리에 트라우마(trauma)로 사라지지 않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영웅, 미국의 명장 맥아더 원수가 퇴역 때 한 명언을 빌리면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우리 참전 용사 노병 모두는 이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월남 전쟁에 참전한 전우들이 국가에 바라는 것은 우리가 국가를 사랑했던 만큼, 국가도 참전용사에게 그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유공자의 예우를 확실히 실천하여, 그 가슴 속에 맺힌 한을 속시원히 풀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모든 참전 노병은 이 나라 역사의 뿌리 깊은 나무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지난 반 세기 전 월남전에 함께 참전하여 대한의 용맹을 세계 만방에 떨치다 산화한 동료장병들께 그때를 상기하며 삼가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금태남(금경연화백예술기념관 관장·전 월남참전 수성구 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