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는 평생학습으로 깨어 있어 있는 이들
‘노인’을 달리 이르는 말이 여럿 있다. ‘늙은이’, ‘실버’, ’어르신‘, ‘원로’등이다. 65세 이상을 UN에서 노인으로 구분하였으나 호칭에 따라 품격이 달리 느껴진다. ‘늙은이’는 순수한 우리말이지만 ‘노인’이라는 한자어보다 격이 떨어지는 것처럼 들리며 ‘노인’이란 한자어는 ‘어르신’이라는 우리말보다는 격이 낮게 느껴진다. 또 50대의 장년이 65세부터 70대 중반에 이르는 초로(初老)의 노인을 향해 ‘어르신’이라 부르면 듣기 거북해 하는 이도 있다. 그런 경우 나이에 걸맞은 호칭이 못 되어 흔히 ‘사장님’이나 ‘선생님’으로 호칭하하기도 한다.
그런데 흔히 쉽게 부르는 ‘노인’이라는 말보다 ‘늙은이’라는 말에는 ‘나이 들어 힘없는 이’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개인에 따른 차이는 있겠으나 여든을 넘겼다면 체력이나 기력이 소진되어 앞장서서 사회를 이끌어갈 지도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더구나 여든을 전후하여 배우자와 사별하고 우울하게 보내는 이들, 치매, 암, 중풍 등 난치병으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신세를 지는 이들을 연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노인과는 달리 자기관리를 잘하여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사회활동에 참여하여 리더의 역할을 해내는 이도 있다. 심신이 건강한 이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타인으로부터 배우든 스스로 공부하든 평생학습을 통하여 늘 깨어 있는 삶을 추구하고 있다.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지역의 큰일에 앞장서 지역민들의 사표로 추앙받는 이가 있으니 그들이야말로 노인의 참 모습을 보여 주니 원로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노인은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1970~80년대 산업화에 앞장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이룬 주역이지만 안타깝게도 경로효친의 대상은커녕 외면당할 때가 많다. 무엇보다 노인들은 젊은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가 어렵다. 종친회나 문중 회의에 나가보면 50대 이하의 젊은이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금년 들어서는 코로나 사태로 다수의 모임이 거의 취소되었지만 코로나 이전 향교에서 주관하는 공맹(孔孟)과 관련된 고전강의나 예절교육 프로그램에도 50대 이하는 좀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초중고동문 체육대회장,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에 입문하려는 후보의 사무실 개소식 등 다수의 남녀노소가 모일 수 있는 장소에서도 노소 간의 대화는 뜸한 편이다. 동문체육대회 시에는 동기생끼리나 나이 차이가 그리 나지 않는 선후배 동문 간에 주고받는 이야기기가 대부분이다. 40~50대의 나이에 있는 기수는 경기 종목에 참가하지만 65세 이상의 노인 기수는 초청에 의해 내빈으로 참가하거나 체육대회를 관람하며 참여한 후배를 만나기 위해 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정치에 뜻을 둔 이들의 사무실 개소식에 참가하는 노인은 찬조 연설을 해주거나 동향 출신 선배 지인으로 분위기나 붐 조성을 위해서다.
그런데 노소가 모일 수 있는 자리에서 젊은이와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있는 노인들은 그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젊은이들 또한 노인세대를 꼰대로 보며 소통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들 한다. 국가관이나 안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노인들은 자신들과 너무 다른 견해를 가진 젊은이들로 나라의 장래를 염려하기도 한다. 노인들은 젊은이들의 안보관이나 대북관을 비롯한 국가관이 잘못되었다고 한탄하지만 젊은이들 중 오히려 노인의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며 반박하려 드는 이도 있다. 꼰대 보수와 젊은 진보는 서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내세운다.
일전에 산책을 하다 만난 어느 50대 장년으로부터 늙은이들의 처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흔히 하는 이야기로 “나이 들어 대접을 받으려면 말은 줄이고 주머니를 열어야 하는데 그와 반대의 언행을 보이는 이들을 가끔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들이 바로 추한 늙은이라며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자신은 그렇게 늙지 않겠다는 의지를 비췄다. 설사 주머니를 열 형편은 못되더라도 젊은이들의 세계를 알며 사리 분별력이 있는 늙은이라면 된 사람이니 예우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형편이 넉넉하면서도 주머니를 열지 않고 예우만 받으려 하는 노인은 어떤 이일까. 그런 이는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며 타인의 잘못에 대하여는 엄격하다. 그들 중 예우를 받고 싶어 하면서도 지역 발전을 위한 행사나 활동에 훌륭한 방법을 제시하거나 기부를 할 줄 모르며 일반 회원들과 똑같이 회비만 내려 드는 이들이 있다.
감투를 좋아하는 노인들 중 어떤 이들은 동문회장을 비롯한 사회단체의 대표를 맡아 행사시에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이나 단체장과 자리를 같이 하면 그들과 ‘호형호제’할 만큼 막역한 사이라고 떠벌리는 이도 있다.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그런 사이이므로 지역 발전을 위한 일을 두고 자신이 정치인이나 단체장에게 건의를 하면 해결되는 것처럼 은근히 힘을 과시하려 든다. 그런 노인은 자신보다 교양이나 상식을 갖춘 이들을 대하면 부족함을 ‘호형호제하는 관계’로 포장하여 열등감을 만회하려는 이들이다.
정치인이나 기관장과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주고받으며 내가 어려움에 처하면 자신의 일처럼 생각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에서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설사 그런 사이일지라도 그가 된사람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좀체 꺼내지 않을 것이다.
열등의식을 만회하려 드는 이와 어떤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보면 전문성은 차치하고 기본 상식마저 갖추지 않는 이들도 있다. 무엇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기에 감투를 무기 삼아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거나 무지나 열등감을 호형호제 관계로 덮지 말고 평생학습을 통하여 깨어있음이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