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75세의 남자입니다. 어릴 때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형님와 여동생 어머니 네 식구가 살았습니다. 누구나 다 그랬듯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서 바위가 논 가운데 우뚝 우뚝 솟아있는 논 서마지기로 살았습니다. 눈만 뜨면 멀리있는 밭에 가서 일 했고 저물어서야 들어왔습니다. 초등학교를 나왔지만 학교에 간 날은 세어도 될 만큼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늘 가난에 허덕였고 잔치집에나 가면 국수로 배를 채웠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어느날 꼴(소먹이) 베러 간 여동생이 동네 연못(저수지)에 빠졌습니다. 동네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못이었습니다. 날씨가 더우니 물 들어오는 연못 입구에서 목욕을 하다가 미끄러진 모양입니다. 입구는 구정물이 일어 있었고 동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도 혀만 끌끌 찰 뿐 어디에 있는지 모를 동생을 선뜻 건져낼 사람이 없었습니다. 일하러 간 형이 소식을 듣고 뛰어 와서 못 속을 뒤져 죽어 축 처진 동생을 건져 냈습니다. 객사한 사람은 집으로 들이는 것이 아니라 해서 못둑에 누이고 어머니는 밤새도록 지켰습니다.
어머니는 울다가 왜 먼저 갔느냐며, 죽은 동생을 지개 작대기로 때렸다가 했습니다. 희미한 달빛 아래서 행해지던 그때 상항을 잊히지 않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형도 결혼하여 부산으로 이사갔고 어머니와 있던 나도 어머니만 남겨둔 채 부산으로 갔습니다.
내 나이 18살, 부산으로 가서 미역이나 생필품을 떼어 집집이 돌면서 팔았는데 동정으로 사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난 키가 작아서 어려 보였습니다. 온갖 고생을 하다가 외항선원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조리실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보통 돌아오는 기한이 1, 2년 3년이 걸릴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낯선 어느 항구에서, 어쩌다가 배를 수리한다든지 며칠을 배가 뜨지 않을 때는 그 지역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돈도 조금 모이고 결혼할 나이가 되어 중매가 들어왔습니다.
양산으로 장가를 갔는데, 영화같은 일이 벌어진 겁니다. 분명 언니와 선을 보았고 결혼식을 했는데 첫날밤을 자고 보니 상대가 동생이었습니다. 세상에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왜 거절하고 뛰어 나오지 못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게 마법에 걸린 듯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나는 혼인을 마치고 곧 외항선을 타게 되었습니다. 양산에 아까운 논을 팔려고 내놓은 게 있다 하기에 사라고 했고, 부산에 집이 있다고 하면 사라고 했습니다. 마음에서 재미있게 살림을 일구어 나갔습니다.
몇 년이 지나 들어와 보니 아이는 커 가고 있었고 사준 논은 장인 앞으로 되어 있는데 아예 돌려줄 생각이 없었고, 집은 온데 간데 없었습니다. 보내준 돈은 아내가 아버지에게 빌려주고, 흥청망청 다 없애고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전셋집 한 채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생 고생한 것을 허탈과 허무감과 배신으로 보상받았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나이도 오십대 중반에 있었고 국내에서 세차장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마땅치가 않고 작은 돈으로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속을 끓였는지 생병이 났습니다. 아니 진짜로 병이 생겼습니다. 병원을 찾으니 스트레스로 죽게 생겼으니 마음을 잘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아들, 딸 남매인데 올바르게 자란 놈이 하나도 없습니다. 딸은 날라리처럼 돌아다니고 아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외박이지 난 정말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몇 년을 지나니 정말 병이 들었습니다. 위암이 걸려서 얼마나 살지 모릅니다. 그래도 식구들은 정신을 못차립니다. 난 곧 죽을 것입니다 그것을 난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언드립니다.
박복한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를 깬다고 하더니 고달픈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고생 끝이라 생각하고 부풀어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들로 병까지 얻었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머니가 낭비벽이 심하면 아들 딸이라도 그렇지 않으면 모르는데 행실에 문제가 있고 보니 아버지로는 어이가 없겠습니다.
소심하시지만 자기 일에는 충실했던 내담자가 겪어야 했던 기막힌 일들을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할 말을 잊었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면 혼인할 때부터 잘못되었고, 이렇게 말하기는 그렇지만 처가 집안이 모두가 집단으로 병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한 사람이라도 지적하고 나섰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지요?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짐승 사회도 아니고, 상식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도무지 도의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럴 때는 큰 용기가 필요했는데 용기조차도 내기 어렸웠던가요? 그렇다고 아주 옛날도 아닌데 빠져들려고 하니 거절못하는 내담자가 걸려든 것 같습니다. 도둑이 들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고 하더니...... 그런 일이 있고부터 온순한 내담자를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논 산다, 집 산다, 해 놓고 장인 이름으로 등기를 마치다니요? 딸에게 부친 것도 처가에서 다 빌려쓰고, 딸도 사위도 다 자식인데 너무한다는 느낌이고 화가 나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참 알 수가 없습니다. 한 번도 재미있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자식들도 언제 철 들지 한숨만 나오겠습니다. 꼭 찾을려면 처가라도 고소하여 찾을 방법이 있긴 할 것 같은데 내담자가 그것은 안 될 일이라고 하니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내담자니까 할 수 있는 말 같습니다. 미루어 생각해 보면 그집 같으면 열 번이라도 더 고소하고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생활을 할 수 있는 여력이 된다면 지나간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고심하였으면 속속들이 말 못 하고 병까지 들었겠습니까? 절대 자괴감에 빠지지 마시고 물걸레로 청소하듯 과거를 다 잊을 수 있다면 크나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청소하여 깨끗하게 잊으시고 자신만 생각하십시오. 아들 딸도 나이가 있으니 이 마당에 무얼 더 생각하고 자시고가 있겠습니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하더니 누굴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내 아내, 장인 못 믿으면 세상 어느 것도 믿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 용서했지만 그들로 인하여 무의식에 내재된 감정은 사회도, 이웃도, 친구도, 불신만 늘어가겠다 싶어 가슴이 아픕니다. 부디 자신만 생각하시어 속히 완쾌하시길 기원합니다.
유가형(시인·대구생명의전화 지도상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