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이들이 줄지어 신앙을 고백하는, 청양 다락골 줄무덤 성지
이름 없는 이들이 줄지어 신앙을 고백하는, 청양 다락골 줄무덤 성지
  • 강효금
  • 승인 2020.07.07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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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당. 소성당은 천정과 창문 밖으로 보이는 십자가가 인상적이다.  사진 이성호 작가
소성당. 소성당에 들어서면 천정과 창문 밖으로 보이는 십자가가 인상적이다. 사진 이성호 작가

 

차령산맥 줄기가 지나는 오소산 기슭에 자리 잡은 청양 다락골. 청양읍에서 대천에 이르는 서쪽으로 가다 보면 화성면이 나오고, 면 소재지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계곡을 따라 오르면 '땀의 순교자'로 잘 알려진 최양업(1821-1861) 신부가 태어난 홍주(洪州) 다락골이 나온다. 다락골은 최양업 신부의 조부인 최인주가 신해박해(1791년) 때 피난 와 정착하여 유서 깊은 교우촌이 됐다. 이 교우촌은 박해를 피해 온 프랑스 신부님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줄무덤으로 오르는 길이다. 그 길에서 죽음과 부활을 만난다. 사진 이성호 작가
줄무덤으로 오르는 길이다. 그 길에서 죽음과 부활을 만난다. 사진 이성호 작가

 

‘죽음’이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아련하다. 사진 이성호 작가
‘죽음’이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아릿하다. 사진 이성호 작가

 

 

줄무덤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항아리 모양의 십자가의 길이 나를 맞이한다. 사진 이성호 작가
줄무덤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항아리 모양의 '십자가의 길'이 나를 맞이한다. 사진 이성호 작가

 

계단을 오르면 줄무덤이다. 천주를 믿는다는 이유로 죽은 사람들은 시신을 수습하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밤을 틈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서둘러 매장했기에, 한 분묘에 여러 사람을 함께 묻을 수밖에 없었다. 병인박해 때 순교한 순교자 37구가 이곳 다락골에 묻혀 있다.

 

제1 줄무덤.  사진 이성호 작가
제1 줄무덤.   사진 이성호 작가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도 남편과 다섯 아이와 함께 옥에 갇혔다. 옥중에서 젖먹이 막내가 굶주림으로 숨이 끊어지자, 이성례 마리아는 네 아이 모두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배교를 결심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동냥을 나간 사이에, 자신은 다시 남편이 있는 감옥으로 향했다. 앞서 배교했던 것을 모두 거두어들인 이성례 마리아는 용감하게 하느님을 증거했다. 

1839년 9월 12일 남편인 최경환 프란치스코는 옥에서 숨을 거둔다. 그리고 이듬해 1월 31일 이성례 마리아는 당고개에서 참수된다. 미리 소식을 들은 어린 네 아이는 망나니를 찾아간다. 그리고 동냥한 곡식을 건네며 어머니를 고통 없이 단칼에 베기를 청했다 전해진다.

이름도 없이 줄지어 신앙을 증거하는 이들. 사진 이성호 작가
이름도 없이 줄지어 신앙을 증거하는 이들. 사진 이성호 작가

 

청양 다락골 성지 성당 안에는 '양팔 없는 예수상'이 있다. 너희가 나의 양팔이 되어라. 양손이 되어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그 사람들을 섬기라는 말을 건네는 듯하다. 

 

무명 순교자의 묘.    사진 이성호 작가
무명 순교자의 묘. 사진 이성호 작가

 

 

 

이 기사 안의 사진은 이성호 작가가 제공했습니다.

 

이성호 작가는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개인전

2019 가톨릭 성지, 1898갤러리, 서울

2019 가톨릭 성지, CU갤러리, 대구

2017 정미소 프로젝트, 대심정미소복합문화공간, 예천

2016 空, 봉산문화회관, 대구

2015 空, 갤러리 나우, 서울

2012 청도 유등축제 초대전, 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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