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숙의 ‘경주 먹 이야기’
그 빛은 경건하여 천년을 비추고, 그 향은 겸허하여 천 리를 간다.
옛 선비들은 나를 문방사우 중 으뜸으로, 한낱 물건이 아닌 고결한 정신을 가진 인격체로 여겨서 정신 수양의 매개로 삼았었다.
벼루 위에 나를 세우고 온 마음을 모아 혼탁한 정신을 갈아내면 내가 닳아지는 만큼 선비의 정신은 정갈해지고 맑아져서 마침내 높은 경지로 고양되고, 그 고양된 영혼이 나를 통해 글로, 그림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선비의 붓에 묻혀지는 순간의 나는 단순한 먹물이 아닌 정신 수양의 결정체이며 드높이 고양된 인간 영혼의 분신인 것이다.
하나의 먹으로 태어나 인간의 정신 수양의 매개로서, 고양된 영혼의 분신으로서 그것을 쓰고 그려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할 수 있으니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고난 속에 살아온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꿈만 같은 일이다. 나는 사실 상처 입은 30년 된 소나무였다.
세파에 시달려 온몸에 생채기가 끊이질 않았고, 누구 하나 도움의 손길을 주는 이 없어 홀로 몸속의 송진을 쥐어짜내 덮어가며 살아왔다. 그러던 나를 경주 먹장 유병조 선생이 먹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신 것이다.
아픔은 느껴 본 사람만이 그 고통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고, 시련을 겪어내고 더 큰 가치를 추구해 본 사람만이 참고 견뎌 온 세월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름 없는 산골짜기에서 볼품없는 모습으로 살아가던 나를 알아보신 유병조 선생도 나와 같은 고통 속에 살아오셨다. 궁핍하고 남루한 생활 속에서 알아주는 이 하나 없이 먹만 바라보며 팔십 평생을 살아오셨다.
마음의 상처를 눈물로 덮고 육신의 고통을 땀방울로 덮으면서 보낸 팔십 년의 세월이 송진처럼 엉겨 붙어있었지만, 그 세월을 태우고 또 태워서 고통을 날려 보내고 그 그을음처럼 가벼워진 정수를 긁고 또 긁어모아 드디어 경상북도 무형 문화재 제35호 경주 먹장으로 지정되신 것이다.
“나의 인생은 한 번도 호화롭게 살지 못하였으나 막상 무형 문화재가 되니 굶주리며 살아온 인생에 후회 없고 더 바랄 것이 없다.”
모 언론 인터뷰에서 하신 이 말씀 속에는 팔십 평생 살아오신 선생의 모든 삶과 철학이 먹처럼 응축되어 있다.
배고픔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던 열세 살의 소년 유병조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먹과 인연을 시작하여 70년을 먹과 함께 외길을 걸어오셨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먹을 만들었으나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평생 그을음을 들이마신 대가로 천식을 달고 살았다.
그러나 먹을 향한 선생의 끊임없는 열정과 집념은 고단한 삶을 견뎌내는 원천이었고 수없이 많은 실패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수천 번의 도전 끝에 전통의 먹을 재현하는 데 성공하여, 1997년 먹 만들기 기능 전수자 (1997-04호)로 선정되었고, 2005년 해인사 팔만대장경 탁본용 먹물 스무 말을 제공하였고, 2009년에는 마침내 경상북도 무형 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평생을 깨끗한 손을 가져본 적이 없을 정도로 새까만 그을음 속에 뒹굴면서 열세 살 소년은 백발의 팔십 노인이 되었지만, 선생의 얼굴에선 품격있는 묵향이 풍겨 나오는 듯하고 선생의 형형한 눈빛은 먹을 닮아있다.
나는 소나무를 태워 얻는 그을음에 아교와 향을 배합하여 만들어진다. 나는 곱게 자란 소나무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생채기로 얼룩진 상처마다 진물 같은 송진이 흘러나와 엉겨 붙은 ‘관솔’이라야 한다. 30년 이상 된 관솔 한 그루를 모두 태워야 손가락 하나만 한 나를 겨우 얻을 수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생명이 더해진다.
농경 사회에서 한 식구처럼 지내며 평생 온갖 궂은일을 해낸 소의 일생이 더해지는 것이다. 소의 가장 질긴 힘줄과 가죽과 뼈를 몇 날 며칠 고아서 끈끈한 원형질이 남으면 소나무의 그을음과 섞어 반죽을 한다. 소나무가 연소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분신인 그을음을 긁어모아, 소의 가죽과 뼈와 힘줄을 고아서 마지막 남은 원형질과 섞는 것이다. 여기에 장인의 땀방울과 눈물이 섞이면서 품격있는 영원함을 향한 준비를 한다.
장인은 산천을 헤매며 장뇌, 용뇌, 매화 그리고 사향 등에서 향을 채취하여 마지막 품격을 높인다. 묵향이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고매한 묵향이 더해지면서 먹은 비로소 경건하고 겸허한 장인의 영혼과 완결된 일체가 된다.
이제 완성된 하나의 먹은 동트기 직전의 밤하늘처럼 푸른 빛이 감도는 고고한 검은 빛을 내뿜으며, 송진이 엉겨 붙도록 처절하게 그러나 이상을 잃지 않고 살아온 30년 소나무의 삶과, 힘줄이 질겨질 대로 질겨지도록 고단하게 그러나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성실히 살아온 소의 삶과, 묵묵히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향을 키워온 장뇌, 용뇌와, 추운 날씨에도 기개를 잃지 않고 꽃 피운 매화의 삶을 경건하고 겸허하게 말한다. 경주 먹장 유병조 장인의 눈물과 피땀 어린 인생이 함께 뿜어져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이렇듯 세상에 함께 태어나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고귀한 삶과 장인의 피땀 어린 눈물을 간직하였기 때문에, 그저 단지 글씨나 그림을 그리는 도구가 아닌 인간의 정신을 가다듬고 인격을 정화하는 수양의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고, 또 그리하여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지금까지 살아 올 수 있었다.
경주 먹장 유병조 선생의 피땀 어린 집념과 열정으로 내가 다시 존재함을 깊이 되새기며, 장인의 뜻을 받들어 나의 본분인 인간 영혼의 고양된 최고의 경지를 표현하는 데 온몸을 사를 것을 다짐한다. 나를 통해 글과 그림으로 표현된 최고 경지의 인간 영혼이, 영원한 생명을 얻어 이 땅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금상
우선 ‘먹’이라는 단어부터 찾아본다. 벼루에 물을 붓고 갈아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검은 물감이라는 것이 사전적인 의미다. 아교를 녹인 물에 그을음을 반죽하여 굳혀서 만든다는 부연 설명이 있다. 이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을 기초적인 지식일지 모른다. 연필 세대, 볼펜 세대라는 핑계가 구차스러울까. 습자지를 펼쳐놓고 붓을 잡으면 언제나 손이 먼저 떨려서 주눅이 들곤 했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찢어질 것 같은 얇은 종이 앞에서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행위는 두려움 자체였다. 먹물로 글을 쓰는 서예가나 수묵화를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면 대체적으로 낯설게 느끼는 도구가 아닐까 싶다.
‘경주 먹 이야기’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작품이다. 수필은 주로 자기 경험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형식면에서 제한을 덜 받는다. 자유롭게 쓰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글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역사 속 인물 혹은 현존하는 인물을 주제로 할 때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용이하다. ‘벼루 위에 나를 세우고’에서 보듯이 나=먹이란 등식으로 먹을 의인화 시킨다. 작가가 외부 관찰자인 먹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서술한 점이 이채롭다.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기조로 외부적인 사실만을 관찰하고 묘사한다. ‘피땀 어린 집념과 열정’에서 알 수 있듯이 한 분야의 장인이 된 경북 무형문화재 유병조 선생의 삶이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