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65세의 남자입니다. 아버지는 18살, 어머니는 20살에 결혼하여 첫아들인 저를 낳아 길렀습니다. 나이 어린 부모지만 외롭게 자라셨고 첫아들이라 금이야 옥이야 저를 길렀다고 합니다. 우리 할머니가 계셨는데 할머니는 아버지의 큰엄마였습니다. 친어머니가 재혼하여 떠나고 큰어머니 밑으로 양자를 왔다고 합니다. 내가 어릴 때 조부모님이 다 계셨는데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시자 혼자 된 할머니는 자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린 3남 1녀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농땡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영향인지 이국적인 외모로 사람들은 날 잘 생겼다고들 합니다. 그런 소리를 자꾸 들어서 그런지 열심히 공부하기도 싫었고 아버지에게 붙어 애만 먹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집은 과수원을 했는데요. 순전히 아버지의 노력 덕분에 우리 4남매는 호강스럽게 자랐습니다. 지금은 집도 낡고 과수나무도 오래되어 부모님은 농사를 할 여력이 없습니다.
이 불효자는 부모님 덕분에 결혼을 하고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전기 일을 배워서 신축건물에 전기공사를 했고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왔는데, 그 동안 아이 둘이 태어나고 안정된 살림을 해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무슨 일인지 대낮에 날벼락 치듯 이혼을 하자고 했습니다. 다른 남자가 생겼는지 의심했고 때리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을 밝혀내지도 못하고, 뚜렷한 이유도 없이 살기 싫다니 어쩌겠습니까? 위자료 한 푼 안 줘도 좋다고 하며 몸만 빠져 나가버렸습니다. 아이 둘을 내가 맡아 길렀습니다.
아이들은 어렸지, 그 당시는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부모님의 걱정이야말로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은 어느 사이 나이가 들어 지금은 자신들이 알아서 밥해 먹고 치우고 손수 다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불편한 것은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나 때문에 걱정 많이 하셨는데 효도는 받아보지 못하고 또 걱정을 끼칠 일이 생겼습니다. 아이들도 제대로 키워주지 못했는데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이 생겼습니다.
전 아직 말은 하지 않았지만 폐암을 앓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부모님도 알 것이고 아이들이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요? 이 죄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겠는지요?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 애먹인 그대로 내가 벌을 받는 것 같습니다.
나대로는, 산다는 것이 뭔가? 라고 끝없는 물음에 청소년 때는 몹시 방황했고 이제 정신 차려 살려고 보니 폐암이란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전 지금 생각합니다. 이것을 뛰어 넘는다면 또 어떤 장애물이 버티고 있으려나? 내가 그토록 물어왔던 것들이 이게 답인가? 라고 헛 웃음을 웃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폐암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저도 익히 들어온 일이라 각오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불상해서 혼자 울기도 하고, 어쩌다가 우리 아들 남매는 부모 잘못 만나 배우고 싶은 것 마음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먹고 싶은 것 먹지도 못했구나 싶어 시시때때로 저 혼자 웁니다. 집안에 들어앉으면 알게 되겠지요? 부모님을 속이는 것도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이 불효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조언드립니다:
심심한 마음의 위로를 드립니다. 말만으로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만 몇 마디 드립니다. 자라 오면서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란 큰 바위에 등을 기대고 오르기도 하고, 비비기도 하는 게 삶의 밑바탕이었지요. 어릴 때 어른들은 슬프지도 않고 괴로움도 없는 줄 알았지요. 부모님은 하나님 같아 뭐든 억지 쓰면 다 되는 줄 알았지요? 어린 아이 같이 떼쓰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줄 알듯이 부모님은 뭐든 못하는 것이 없는 줄 알았지요.
어릴 때는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억지를 부릴 때는 부모님 밖에 아무도 받아주지 않거든요. 나는 열심히 공부를 해도 다른 애들에 비해 성적이 모자란다 싶으면 부모님은 괴로울 수 있는 거지요. 그것은 부모님의 욕심 때문입니다. 우리 내담자 책임이 아닙니다. 나는 최선을 다 했으니까요.
부모님은 맏아들에 대한 기대가 커서 괴로움도 컸을 것입니다. 이해는 갑니다. 아마도 그런 것들을 우리 내담자가 제공했다고 생각하시는 같은데 잘하고 못하는 것은 내가 최선을 다하는 한 내담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럼 공부를 잘 못하는 꼴찌는 아주 불효자이지 않습니까? 공부 못해도 사회적으로 크게 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공부 잘해서 서울대학 가는 사람이라고 다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못 생긴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듯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산에 나무가 다 크게 자라지 못 하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잘난 사람이 있으면 그에 비해 좀 못난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똑 같을 수 있겠습니까? 부모님도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잘하는 부분을 칭찬 격려해 주어야 하였지요.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신 거지요. 잘못된 사랑이란 이름으로 키우다 보면 내담자는 죄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모든 사실을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알리고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나중에 병이 더 깊어 아시면 치료에도 차질이 생길 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몹시 섭섭해 하실 것입니다. 자식이 병에 걸렸는데 어느 부모가 편히 가만있겠습니까? 형제들의 힘을 빌려서라도 속히 치료를 받으시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은 용서고 뭐고 애처러움으로 바뀌어 눈물 먼저 흘리실 것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있습디까?
아픈 것을 감춘다고 효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원망하실 필요도 없고 입원하셔서 속히 치료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병은 일찍 알아서 일찍 치료받는 것이 효과가 크지 않겠습니까? 속히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바쁩니다. 속히 치료하여 낫는 것이 효도하는 것입니다. 저도 우리 내담자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유가형(시인·대구생명의전화 지도상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