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 호남가단의 한 맥을 이루는 식영정가단의 중심이 되었던 장소
성산별곡은 성산의 사계절을 아름답게 표현한 시가로 가사문학의 정수
문학적의미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담은 국가지정 명승 57호
오동 사이 가을 달이 사경(四更)에 돋아 오니/ 천암만학이 낮보다도 밝고 아름답도다./ 호주(湖洲)의 수정궁(水晶宮)을 누가 여기 옮겨 왔는고/ 은하수를 뛰어 건너 광한전(廣寒殿)에 올라 있는 듯/ 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는 가을 칠월이 좋다 하되/ 팔월 보름밤을 모두 어찌 칭찬하는고/ 잔구름도 사방으로 흩어지고 물결이 잔잔한데/ 하늘에 돋은 달이 솔 위에 걸렸으니/ 달을 잡다가 물에 빠진 이백의 옛일이 야단스럽구나.(성산별곡, 정철)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 중 성산의 가을풍경을 예찬한 부분인다. 정철은 식영정과 서하당이 있는 별뫼(星山)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가을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며 성산별곡을 지었다.
성산별곡의 무대인 식영정(息影亭·전남 담양군 가사문학면 지곡리 산 75-1번지)은 무등산 북쪽 원효계곡에서 흘러나온 창계천이 앞으로 흐르고 뒷쪽으로는 소나무로 가득한 성산 끝자락 언덕배기에 있다. 1972년 전남기념물 1호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국가지정 명승 57호가 됐다.
식영정은 원래 1560년 서하당 김성원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것인데 식영정이란 이름은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으로 장자의 제물편에 나오는 우화인 그림자 도망치기의 의미가 숨어 있다. 그림자는 욕망으로 세속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떨쳐내기 어려운데 이곳에서만큼은 헛된 욕망을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보길 바라는 마음이 이름에 담겨 있다.
식영정은 광주호 수문 입구에서 소쇄원 방향으로 2㎞ 정도를 가다보면 도로와 접해서 좌측에 8천여 평 규모의 아담한 공원 형식이다. 경내 입구에는 3갈래 가지를 뻗은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세 갈래 가지가 마치 이곳의 주인공인 임억령, 김성원, 정철을 상징하는 듯하다. 느티나무 조금 안쪽에는 ‘송강정철가사의터’라 적힌 대리석 팔각원뿔탑이 세워져 있다.
평지로 된 안쪽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면 왼편에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연못 옆에는 2층 구조의 부용정이란 누각이 세워져 있다. 부용정 우측으로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쪽문이 있다. 문을 열면 장서각과 건물을 관리하는 고직사가 같이 있다. 한 단계를 걸어 올라가면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서하당(棲霞堂)이라고 이름붙인 또 다른 정자가 있다. 중간에 없어졌다가 최근에 복원됐다.
부용정과 서하당 사이를 조금 걸어서 좌측 산비탈쪽 계단을 오르면 담벽으로 둘러친 삼문 안쪽에 임억령과 김성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식영정은 느티나무가 심어진 좌측으로 평지보다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돌계단을 걸어 작은 동산 정도의 높이 벼랑 끝에 세워져 있다 주변에는 흉고직경 약 10∼30㎝ 정도의 송림을 이루고 있고, 성산별곡이 적힌 시비 앞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정자 앞으로는 지금은 광주호 주변에 새로운 길이 나고 댐이 생겼지만, 그 이전 창계천 주변에는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서 여름 내내 붉은 꽃구름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창계천의 옛 이름은 배롱나무의 한자 이름을 빌린 자미탄(紫薇灘)으로 불렸다.
당시 사람들은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 네 사람을 ‘‘식영정 사선(四仙)’ 이라 불렀다. 이들이 성산의 경치 좋은 20곳을 택하여 20수씩 모두 80수의 식영정이십영(息影亭二十詠)을 지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 식영정이십영은 후에 정철의 '성산별곡'의 밑바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