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일찍 전화 벨 소리가 들린다. 잠시후 수화기 너머로 한 남자의 울먹이는 조그만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네? 그래서요!”“지금 어디 계신대요?”“알았어요.”하더니 아내가 말했다.
“여보, 오늘 시간 좀 내주세요”“왜? 오늘 병원심방이 있어서 바쁜데....?”“아무리 바빠도 시간 좀 내서 샘병원에 좀 다녀옵시다”“갑자기 무슨 일인데 그래?”
몇 달 전 시골교회에서 아내의 전도 간증을 들은 여집사님의 전화가 왔는데 자신은 안산에 모 교회에 성도라고 소개하더란다. 저도 전도사님처럼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말씀도 전하고 위로하는 봉사를 하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단다.
처음 전화를 받고 보통 오는 전화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주 전화가 오니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언제 시간이 되면 만나자고 약속을 했단다. 지친 영혼들에게 관심이 많으시면 가까운 곳에서 전도지를 전하는 일부터 해보시라고 권했단다. 그녀는 남편을 졸라 전도지를 만들어 상록수역 앞에서 기쁘게 전도자의 생활을 시작했단다. 그리고 보름만에 그 남편의 전화를 받은 것이었다.
그 남편의 말로는 아내와 언제 한번 만나자는 약속을 한 게 마지막 말이었다고 했다. 병세가 악화되어 갑자기 혼수상태가 되어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있다고 했다. 호스피스 병동은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좀 편안하게 마지막 숨을 거둘 수 있도록 배려한 병동이다. 평소에도 전도사님을 너무 보고 싶어한 걸 알고 실례가 될걸 알면서 전화를 드렸다고 말했다. 아무리 바빠도 한번 다녀오자는 말에 심방을 미루고 샘병원으로 향했다. 차를 주차시키고 가급적 빨리 다녀오라며 병실로 보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바쁜 일정이 있어 조바심을 하며 기다리기를 30분이 지나자 전화가 왔다. 빨리 병실로 올라오란다. 병실에는 호스피스 봉사자 2명을 포함해 6명 뿐인데 알수 없는 역한 냄새가 심하게 났다. 그 집사님은 ◯◯암 말기로 오른쪽 옆구리에 어른의 주먹만한 혹이 불룩하게 솟아있고, 혼수상태로 반쯤 뜬 눈은 이미 총기를 잃어 임종이 가까운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임종을 앞둔 중환자답지 않게 용모가 깔끔했고 예뻤다.
남편의 말로는 이런 상황에서도 용변을 남의 손에 의지 않고 화장실까지 부축하면 자신이 직접 용변을 처리했단다. 자녀들은 어디있느냐고 묻자 두 아들이 ◯◯회사 해외 지사장으로 홍콩과 유럽에 있는데 중요한 회의 때문에 3일후 주말에나 귀국할 수 있단다.
순간 옛 어르신들이 꼭 보고 싶은 사림이 있으면 그를 기다리느라 임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아마 벌써 임종을 맞을 상태인데 정말로 보고싶은 두 아들을 기다리느라고 먼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구나 생각되어 가슴이 저려왔다.
그때“목사님 기도 좀 해주세요”하고 남편이 말했다. 이런 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기도해 달라니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거룩한 소망을 가지고 사시던 ◯집사님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원치 않았던 병으로 지금 투병 중에 있지만 집사님 마음에 평안과 소망을 주옵소서. 그리고 바라기는 집사님의 소천을 잠시 미루어주심으로 사랑하는 아들들을 만나게 하시고 얼마 동안이라도 평소에 그렇게 하고 싶어하셨던 입원 환우들에게 생명과 위로와 말씀을 전하는 선한 일을 감당하게 하신후 부르심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저희들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기도가 끝나고 남편이 그 집사님 귀에 대고 “당신이 그렇게 보고싶어 했던 전도사님이 오셨어. 어서 눈좀 떠 봐”하자 그녀는 거짓말 같이 눈을 뜨더니 “여기까지 와 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우리를 처다보며 2주만에 처음으로 말을 하여 우리를 놀라게 했다.
전도사님은 그녀의 어깨를 살포시 안고 “집사님 빨리 쾌차하셔서 병원사역을 함께 해요”라고 말을 전하고, 이어 주말에 귀국하는 아드님들 잘 만나시라고 인사하고 병실을 나왔다. 돌아오며 혹시 기적으로 생명이 연장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았다.
그리고 토요일이 지나 아드님들은 잘 만났을까? 병세의 차도는 있었을까? 궁금해 하는데 그 남편에 전화가 왔다. 급한 마음에 “집사님은요?”하고 묻자 잠시 후 울먹이는 소리로 “목사님 다녀가신후 한시간 후에 임종했어요” “아들은 아무도 만나지 못했어요” 어제 장례를 치르고 첫 전화를 드리는 것이라는 말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그렇게 놓지 못하고 힘들게 붙잡고 있었던 생명줄이 보고싶던 두 아들이 아니고 어쩌면 우리였고 아들의 목소리가 아닌 우리의 기도였나 하는 생각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세상에는 우리 생각이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 많지만 너무 아싑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라도 해보고 싶었던 그 거룩한 소망은 결국은 미완이 되었고 다시 못 올 먼 나라로 이민을 떠나셨지만 하나님은 그 미완의 거룩한 소원도 받으셨으리라 생각한다. 평소에 교제가 있던 분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인연으로 만나 함께 기도하게 하심도 특별한 은혜가 아닐까? 만나서 함께 기도하고 싶은 소망으로 이민선에 승선 시간도 늦춰가며 기다렸던? 김 집사님이 갑자기 생각 나 글로 옮겨본다. 몇 년 전 이맘 때라고 생각된다. 편안한 본향의 삶이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