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영의 ‘등을 밀어준 사람’
-산티아고 오르막길에서
그것은 손끝이었네
손가락 끝
사알짝
댄듯 만듯
무너지듯 주저앉아
아이처럼
서럽게 울고 싶던
숨막히는
오르막길
그 산을 넘은 힘은
누군가의
손끝이었네 고요히
등 뒤에서 살짝만
밀어주던
시집 “등을 밀어 준 사람” 이야기담. 2019. 3. 7.
'이 나이 먹도록 세상을 잘 모르나 보다/진심을 다해도 나에게 상처를 주네’ 유행가 가사 한 소절에 울컥해진다. 진심을 다해도 상처만 돌아오는 게 인생이런가.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천년 악연을 만들 수도 있다. 말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하니까. 좋다, 잘한다, 응원 한마디가 여기까지 오는 원동력이었다. 얼떨결에 판을 편 문학 톺아보기가 74번째다. 용기 북돋아준 고마운 얼굴들이 스친다. 숨은 응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게다. 이 장을 빌려 감사를 전한다. 문학사적으로 고평가되는 작품만 고집한 건 아니다. 그럴 역량도 안 되지만 최대한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자 선별에 신경을 썼다. 작품의 맥을 정확히 짚지 못해 무지를 범했을 수도 있다. 못내 부끄럽다는 인사 덧붙인다.
'등을 밀어준 사람’ 시의 속살이 간결하고 따스하다. 시구의 결을 따라 차근히 가다보면 보편적 인정이 감지된다. 굳이 연 구분을 한 것은 험준한 산행에서 호흡을 고르며 쉬어가듯이 등을 밀어준 사람의 고마운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시인의 의도인지 모르겠다. 등산을 해본 사람은 안다. ‘손가락 끝/사알짝/댄듯 만듯’ 밀어주거나 잡아만 주어도 얼마나 수월한지를. 비단 산행만 그럴까? ‘무너지듯 주저앉아/아이처럼/서럽게 울고 싶던’ 그런 순간이 있지 않던가. 인생살이 전반이 등산과 무엇이 다르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달변가의 백 마디가 아니라 진심 어린 어눌한 한마디다. 2020년, 코로나19의 태산을 무사히 넘는 것도 그런 정 덕분일 게다. 손가락 끝 살짝만 닿아도 온기가 나눠지는 연말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