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의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핥을 때’
입에서 팔이 나온다.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연약한 떨림을 덮는 손이 나온다.
맘껏 뛰노는 벌판을
체온으로 품는 가슴이 나온다.
혀가 목구멍을 찾아내
살아 있다고 우는 울음을 핥는다.
혀가 눈을 찾아내
첫 세상을 보는 호기심을 핥는다.
혀가 다리를 찾아내
땅을 딛고 설 힘을 핥는다.
혀가 심장을 찾아내
뛰고 뒹구는 박동을 핥는다.
혀가 나오느라 꼬리가 길다.
혀가 나오느라 귀가 빳빳하다.
혀가 나오느라 발톱이 날카롭다.
월간 《현대시》 2020년 9월호
봉무공원 초입으로 가려면 길고양이 집을 네 개나 만난다. 폐스티로폼 지붕에다 돌을 얹어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 플라스틱 그릇에는 누군가의 정성으로 차려진 밥이 소복하다. 숨은 이의 보살핌 덕분에 고양이들은 나날이 살이 오른다. 강추위가 극성을 부리던 며칠 전의 일이다. 단산지 가장자리에 터를 잡은 고양이 두 마리가 바위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한 컷 찍으려고 핸드폰을 꺼내자 갑자기 내 앞으로 쪼르르 다가오는 게 아닌가. 아마 먹을 것을 기대한 모양이었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밥그릇이 텅 비어있었다. 겸연쩍은 마음에 얼른 폰을 집어넣고 귀갓길에 마트로 갔다. ‘성묘용’이라 적힌 것을 한 봉지 사다가 다음 날 아침 산책길에 부어주며 전날의 미안함을 전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촘촘한 언어의 정원을 거닌다. 직조가 잘된 비단결처럼 시가 매끄럽다. 나온다/핥는다, 반복되는 동사에 주목하면 혀의 기능이 한 겹 한 겹 확장됨을 알 수 있다. 새끼를 기르는 어미 고양이의 지극정성이 공분을 샀던 '정인이 사건'과 맞물리면서 새삼 화가 난다. 생모가 제 자식을 죽인 사건은 또 어떤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다. 시가 삶의 태도를 바꾸어주거나 결정짓는 역할은 못할지라도 위로를 얻고 아픈 영혼을 치유했으면 좋겠다. 시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든 읽기 이전과 이후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를 기대해본다. 문득 고양이의 혀는 만능키란 생각이 든다. 혀 하나로 자신의 온몸을 관리하고 새끼까지 살뜰히 챙기는 동물이 고양이 말고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