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가 되면 정부에서 '지공선사'의 자격을 준다. 지하철 공짜로 타고 경로석에 앉아서 지긋이 눈감고 참선하라는 자격증이다. 누구나 나이만 되면 저절로 주는 자격이며 남녀, 학벌, 경력, 재산의 구분이 없다. 노인에게 지하철 공짜는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에만 있는 경로우대 제도이다. '지공여사'라고도 한다.
올해 10년째 지공선사가 되어 지하철을 공짜로 타보니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너무 많아 나름 '10가지 지공사 수칙'을 터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1.출퇴근 시간대에 지하철 타지마라. 할 일 없는 노인들이 차지하면 밤잠 설쳐 피곤한 학생이나 고단한 직장인에 피해가 간다. 등산 채비나 사이클을 끌고 유산소 운동 나왔다면 지하철 이용를 삼가하라.
2.승차 질서를 지켜라. 승객이 하차 후 승차하는 것이 기본이다. 승객이 출입문을 빠져 나오기도 전에 몸을 들이밀지 마라. 전국에서 지하철 승차 질서가 가장 엉망인 곳이 대구권이다. 특히 지공여사들이 심하다.
3.당신의 자리는 경로석이다. 일반 좌석에 앉지 마라. 경로석이 비어있는데도 일반석에 앉으면 공연히 자리 하나만 줄어든다. 노인인 당신이 같은 노인 곁을 싫어하는데 젊은이들은 오죽하겠는가.
4.깨끗한 옷차림으로 단정해야 한다. 늙으면 가뜩이나 추해지고, 냄새나고, 꼰대 티가 난다. 외모에도 각별히 신경 써 정갈한 지공이 되자.
5.일반석 앞에 서 있지 마라. 착석한 승객이 불안하다. 곧 내릴 것처럼 출구에 서 있거나 경로석 앞에서 기다려라.
6.경로석에서는 모자를 벗어라. 모자를 쓰면 10년은 젊어 보여 가짜지공으로 오인 될 수 있으니 모자 벗고 대머리나 백발을 보여라.
7.목소리나 휴대폰 볼륨을 낮춰라. 휴대폰 만지작거릴 나이는 한참 지났다, 지공선사 품위만 손상되고 타인에게는 소음에 불과하다.
8.옆 사람의 휴대폰 화면이나 여인의 종아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지 마라. 망령든 노인으로 오해 받는다.
9.좌석에 퍼질고 앉지마라. 넓게 양다리나 쇼핑백을 벌리고 두 자리 차지하여 자기 안방처럼 전용하지 마라. 승객들이 멸시한다.
10.지하철 공짜로 매년 막대한 적자 운영이다. 정부는 대중교통비 지출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중산층 노인에게는 일반인의 반값 정책을 시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