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아쉬운 명절
새벽에 전화가 온다.
"이장님 오늘 아침에 우리집에 아침 드시러 오세요. 기장댁도 같이."
내일이 말날이라고 소금을 사와야 하는데 무거워 어짜노 하고 걱정을 하시길래 어제 면소재지에 볼일 보러 나간김에 사다 드렸다. 그랬더니 설 차례상에 올린 과일을 가지고 나와 대접을 하신다.
저녁 걱정을 하시길래 먹었다고 했더니 안심을 하신다.
그렇게 헤어졌는데 설이라고 떡국 한 그릇 안 끓여 주신 게 걸렸다며 날이 새자마자 전화를 하신 것이다.
안 가면 하루종일 전화를 하시는 분이라 둘이서 내려가니 상이 그득하다.
우리 마을에서 4대가 있는 두 가구 중 한 가구이며, 1960년생 따님을 내가 5, 6학년때 담임을 했던 인연도 있다.
작은 아들은 경찰 간부(경감)이고, 맏 손자는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비행기 조종사를 하고 있다.
마당에는 큰아드님이 가꾼 소나무와 모과나무 등이 멋진 정원을 이루고 있다. 연세드신 할매가 잔디를 가꾸느라 고생을 하신다.
애살이 있는 분이라 잔디밭이 항상 깔끔하다.
일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니다 해방이 되어 귀국해 이곳 면소재지 초등학교를 졸업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자전거도 잘 타신다. 마을에서 80세 이상 할매 중 자전거를 탈줄 아는 유일한 분이다. 자전거를 타고 경로당 앞에 세워두면 말씀을 드리고 나도 가끔 이용한다. 경로당 모임에 나갔다가 집에 볼일이 있으면 걸어오면 5분이나 걸려 가끔씩 나도 타는 자전거이다. 이번에 새로산 빨간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다니시는 87세의 학산 할매(심분조 여사)가 주인공이시다.
코로나19 이전인 지난해 설날만해도 집성촌인 우리 마을에서는 어느 집에 가거나 떡국을 끓여주고 음복술을 내놓으셨다. 설이 지나도 정월 보름까지는 술과 밥이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난데없는 코로나19로 인해 이번 설에는 객지의 자녀들이 오지도 못하고 마을에서도 5인 이상 모이기가 금지되어 사람 사는 맛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오늘도 우리 둘이 가도 3명이라 나섰지만 세상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어서 코로나19가 끝나야 이장인 내가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안부도 묻고 말동무도 해드리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심부름도 해드릴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