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디트를 소재로 그린 많은 그림 가운데 남다른 개성을 지닌 것이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이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장면을 그린 그림에 카라바조의 것이 있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극적인 면에서나 역동적인 면에서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를 따르진 못한다. 특히 젠틸레스키가 여류 화가였다는 점에서 이 그림은 주목을 받는다.
관능의 언덕바지를 오르던 한 사나이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는다. 관능의 팔부 능선쯤에서 느닷없이 목이 베이는 사나이, 홀로페르네스는 입을 벌린 채 불거진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목이 베이는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재현해 놓고 있다. 팜므 파탈의 한 전형을 보는 듯하다.
생에 대한 애착이 절실한 홀로페르네스의 몸부림을 제압하고 그의 목에 칼을 깊이 꽂아 넣는 유디트의 의지는 쭉 뻗은 두 팔에 실려 있다. 살기가 섬뜩한 부르쥔 손이 적장의 얼굴을 짓눌러버렸다. 부르쥔 손이 적장을 제압하는 순간 아군과 적군의 운명은 갈렸다.
젠틸레스키는 유디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이는 세상을 향한 젠틸레스키의 저항적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유디트를 풍만하게 창조한 것 또한 자신의 저항적 의지의 표현일 터이다. 꾹 다문 붉은 입술은 이미 유혹의 그것이 아니다. 단심이다. 페시미즘의 미학은 이렇듯 서슬이 시퍼렇다.
이 그림을 보고 있자니, 문뜩 변영로의 <논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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