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마을 전체가 초가집인 봉강리(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에서는 추운 겨울밤이면 참새를 잡는 것은 연중행사 같은 놀이였다.
사랑방에서 놀던 친구 4~5명이 오후 10시 경 두꺼운 옷을 입고, 손전등과 꽈리(대마 겉껍질을 벗긴 속대를 발과 같이 엮어서 위는 직경 30cm 정도, 밑은 손 하나 들어갈 정도로 좁게 만든 기구)를 들고 나갔다.
처마 밑에 가서 손전등으로 처마 끝을 비추면 하얀 솜털 뭉치 같은 참새가 있었다. 인기척에 놀란 참새가 깃 속에 넣었든 고개를 들면, 말똥말똥한 두 눈을 볼 수 있었다. 참새는 전등 불빛에 눈이 부셔 날아가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이때 오른손을 꽈리에 넣고 참새가 있는 곳에 꽈리 입구를 대고 위로 “툭” 쳤다. 참새는 밑으로 툭 떨어지면서 날아가는 습성 때문에 꽈리 안으로 들어왔다. 날아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꽈리는 밑 부분이 좁아 푸드덕거려도 미끄러져서 바로 손에 잡혔다. 따뜻하고 폭신한 촉감의 참새가 손에 잡혀 가슴이 팔딱거릴 때 기분은 잡아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을 못 한다. 그러나 잡힌 참새가 죽는 것은 불쌍하였다.
끝을 묶고 허리에 묶어 늘어트린 새끼줄에 참새 머리를 끼워서 달고 다녔다. 60여 호 동네를 돌다 보면, 참새를 잡으려고 나온 형제, 남매, 젊은 부부들도 있었다. 추위도 잊고 한두 시간 동네를 돌며 잡으면 많을 땐 40~50 마리, 적게 잡을 때도 10 마리는 잡았다. 참새를 잡아 오면 사랑방 안주인의 맛있는 참새 요리를 밤참으로 맛있게 먹고 헤어졌다.
가을에 농사일 끝나면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 초가지붕을 품앗이로 새로 이는 것은 연중행사였다. 새 이엉으로 초가지붕을 이고 나면 집안이 더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면, 울타리와 나무에 앉아 있던 참새들이 새로 이은 초가집 처마 끝에 날아들어 볏짚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잠을 잤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 처마 끝에서 잠을 자는 참새가 많아졌다. 여러 팀이 참새를 잡으려 다니면서 처마 끝을 쳐올려 어떤 집에서는 처마가 상한다고 참새를 못 잡게 하지만 몰래 들어가서 잡았다.
아이들은 y자 나무 막대 양쪽에 굵은 고무줄을 묶고 두 고무줄 끝에는 두꺼운 천이나 가죽을 묶어 새총을 만들었다. 작은 돌을 넣고 고무줄을 당겼다가 놓아도 참새를 잡기는 힘들었다. 어느 날 상철이가 복숭아 나뭇가지에 앉은 참새를 보고 고무줄 새총을 쌌다. 돌에 맞은 참새가 땅에 떨어졌다. 지나가던 어른이 “네 손에 살이 낀 것 같다. 오늘은 조심하여라.” 하였다. “옛말에 살이 끼는 날은 살짝 때려도 사람이 죽는다.”는 말이 있었다.
비, 눈이 내리려 하면 야생 동물과 새들은 미리 아는가, 먹이를 찾아 활동하였다. 눈 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덫을 놓아 참새를 잡았다. 작은방 방문에서 잘 보이는 마당 한구석의 눈을 쓸고, 산태미(삼태기)를 뒤집어 끝은 땅에 닿고, 손잡이인 둥근 나무 중간 부위에 20cm 정도의 나무 막대로 받쳐 들리게 하였다. 산태미 위에는 큰 돌을 얹고, 밑에는 짚북데기와 싸라기를 약간 뿌려 놓았다. 나무 막대 밑 부분에 노끈을 묶고 한쪽 끝은 방문 구멍을 뚫어 안까지 들어오게 하였다. 손에 노끈을 쥐고 문구멍으로 밖을 보며 기다렸다.
장난 좋아하는 동생들도 못 떠들게 하고 숨을 죽이고 밖을 보았다. 기다리다 보면 눈이 쌓여 먹을 것이 없는 참새들이 산태미 주위를 경계하며 뱅뱅 돌았다. 밖에서 조심스럽게 주워 먹다가 경계심이 풀리면 안으로 들어가서 마음 놓고 먹었다. 이때 노끈을 당기면 산태미가 땅에 닿았다. “야” 아이들은 소리치며 뛰어나가 산태미를 발로 밟으면 밑에 깔린 참새를 모두 잡았다. 참새가 소 등에 앉아 “네 고기 열 근 주어도 내 고기 한 근 안 준다.”고 큰소리쳤다는 옛말이 있었을 만큼 참새 고기는 맛이 있었다.
초가집 지붕에 집을 짓고 살면서 농작물을 먹어 치우는 참새 떼가 많았다. 벼 이삭이 고개 숙여 갈 때 벼 낟알 속에는 묽은 풀 같은 흰 물이 생겼다. 이때 참새 떼가 벼 논에 날아들어 낟알을 부리로 씹어 흰 물을 빨아 먹으면 쭉정이가 되었다. 농부들은 참새 떼를 못 오게 하려고 허수아비를 세웠으나 참새는 속지 않았다. 참새는 머리가 좋은가 허수아비에 앉았다가 이삭에 내려앉아 벼알의 물을 짜 먹었다.
학교에서 집에 온 아이들은 하기 싫지만 참새를 쫓으려 논으로 나갔다. 논둑에 새끼줄을 치고 헌 깡통을 달아 줄을 당기고, 뛰어다니며 참새를 쫓았다. 친구와 한눈팔고 놀다 보면 참새들이 다 내려와서 먹었다. 마당에 멍석을 펴고 벼 콩 팥 녹두 참깨 들깨를 말릴 때도 참새는 몰래 와서 먹었다. 막대기를 옆에 두고 마당을 탕탕 두드리며 참새를 쫓았다.
참새는 처마 이엉에 구멍을 파고 들어가 깃털을 뽑아 놓고 3~4개 알을 낳았다. 아이들은 사다리를 처마에 놓고 올라가서 참새집에 손을 넣어 알을 꺼내어 먹었다. 처마 부근에서 참새 떼가 날며 “짹”“짹” 울부짖을 때가 있었다. 위험하다는 신호다. 처마 끝을 보면 큰 구렁이가 참새 집에 들어가서 알을 먹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아이들이 소리쳐도 구렁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겨울이 되면 그물을 치고 참새 잡는 아저씨들이 봉강리에 자주 왔다. 긴 장대 두 개에 그물 끝을 매어 그물 넓이만큼 벌려 동네 양쪽에 쳤다. 과자를 얻어먹은 아이들이 동네에서 뛰어다니면 도망가려는 참새들이 그물에 걸렸다.
이웃 동네 새총이 있는 아저씨가 있었다. 총대를 꺾고 납으로 된 총알 하나를 넣고 총대를 펴서 정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겨 참새를 잡았다. 처음에는 참새를 잘 잡았으나 조금 지나면 총대를 들면 참새가 알고 날아갔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확대되면서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시멘트 기와지붕으로 개량하기 시작하여 초가지붕을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겨울밤 손전등을 들고 참새를 잡던 재미있던 놀이도 지붕 개량과 함께 영원히 사라져 지금은 추억 속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