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박중언은 기자이자 노후 연구자다. 1963년 한국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로 태어나 대학교에서 화학과 교육학, 대학원에서 언론·정치·행정을 공부했다. 30년 넘게 <한겨레> 기자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누구나 바라는 행복한 노후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저자의 오랜 모색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보통 사람보다 더 일찍, 체계적으로 노후 준비에 나섰고,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달라진 인식, 행동으로 옮겨간 경험을 그대로 책에 담았다. 이 책의 지향점은 자유롭고, 건강하며, 편안한 나이 듦이다. 그 길로 가기 위한 발상의 전환과 방법론을 다뤘다. 책의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나이 듦을 제대로 아는 것이 노후 설계의 첫걸음이다. 모르는 노후는 몇 배로 두렵다. 노후 준비는 알면 알수록 쉬워진다. 막연한 선입관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원점에서부터 다시 바라보는 게 좋다.
둘째, 새로운 생각과 정보를 바탕으로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리모델링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담대하게 바꿀수록 노후가 아름다워진다.
마지막으로, 가장 작은 것부터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지금 당장! 이런 세 가지 메시지에 공감해 생각과 행동을 바꾼다면, 활기 넘치는 인생 2라운드는 바로 지금부터 가능하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이 책의 목차는 '1부 후반전: 누구에게나 노년은 온다, 2부 일: 이제 뭘 하며 살지?, 3부 돈: 채움보다는 비움, 4부 건강: 마지막까지 우아한 삶을 위하여, 5부 관계: 더하기와 빼기의 미학, 6부 권태: 내리막에서 얻은 여유'로 되어 있다.
1. 4대 리스크
편안한 노후를 위협하는 실질적 위협(리스크)은 네 범주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모든 노후 관련 조사에서 걱정거리 1·2위에 오르는 재무(돈)와 건강 리스크가 있다. 이 둘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충분히 대비했다고 안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건강을 잃으면 막대한 치료비 때문에 돈걱정이 커지고, 적정 수준의 돈이 없으면 중대 질병에 시달리기 쉽다.
다음은 관계에 따른 리스크다. 다른 사회보다 관계의 긴밀도가 높고,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큰 위험 요소다. 가족이나 친구, 주변과의 관계 때문에 노후를 힘들어하는 사례는 흔하다. 외로움은 피하고 싶은데 얽힌 게 많으면 그만큼 삶이 피곤해진다. 나이 든 부모가 다 큰 자녀를 돌보는 것은 물론이고, 결혼·주택 자금까지 고민해야 하는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성인 자녀의 리스크가 크다.
마지막은 권태 리스크다. 인간은 별일 없는 시간도 견디기 힘들어한다. 물리적 고통이 없고 걱정이 사라진다고 해서 편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재미나 보람, 가치가 없어지면 사는 게 지겹고, 그 자체가 고역이다. 돈은 적고 시간은 남아도는 노후에는 권태 관리가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20~21쪽)
2. 품격의 마지노선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은 정신과 신체의 자유에서 나온다. 되도록 오래 스스로 거동하는 것이 곧 자신의 자유와 존엄을 지키는 길이다. 평소에는 몸을 움직이고 걸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깨닫기가 쉽지 않다. 공기나 물처럼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거동이 힘들게 되는 순간 벼락 맞듯이 실감한다.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걷기는 노후의 생활 반경을 절대적으로 좌우한다. 걷지 못하면 최소한의 활동이 어려워지고 신진대사 기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동의 자유가 사라지고, 삶의 폭이 확 쪼그라든다. 죽을 때까지 혼자 힘으로 걷겠다는 목표 하나만 달성해도 정말 괜찮은 삶이다. 그것은 주변 사람의 수고를 크게 덜어주는 배려이기도 하다. 자존감과 함께 가족의 삶을 지키는 보루인 셈이다.(144쪽)
3. 자녀를 버려야 모두가 산다
재산을 모두 물려준 부모와 자녀 사이의 부양 의무를 둘러싼 소송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실효성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한 까닭이다. 목돈을 되도록 없애는 것이 그 방법이다. 부모에게 목돈이 없어야 자녀도 다른 길을 찾는다. 자산을 연금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최대 자산인 주택 또한 현금화하는 쪽이 더 안전하다. 달마다 생활에 필요한 돈이 나오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다.
자녀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큰돈을 줘버리고 빈곤선에서 허덕거리는 것보다 다달이 나오는 연금을 모아 생활비라도 보태주는 게 훨씬 낫다. 자녀가 빚의 늪에 빠지는 등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자녀를 버리는 쪽을 택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에는 함께 사는 길이다. 내가 우선 살아야 가느다란 생명줄이라도 내려줄 수 있다. 추락하는 항공기의 산소마스크를 엄마가 먼저 쓴 뒤 자녀에게 씌우도록 하는 것처럼.(207~208쪽)
4. 느슨함의 미학
애정의 온도가 떨어지고, 공동의 의무가 사라진 시기의 배우자는 자연스럽게 오랜 친구에 가까워진다. 절실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꽤 필요한 존재다. 귀찮을 때만큼 기댈 때도 많다. 노후 부부관계의 바람직한 모델은 '느슨한 동반자 관계'이다. 미국 가족 문제 전문가 주디스 월러스타인이 말하는 '대등한 파트너 사이의 친밀함과 자유로움이 균형잡힌' 사이다.
사이좋게 늙어가는 노부부만큼 흐뭇한 모습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친밀함이 지나친 의존이나 간섭의 빌미가 되면 곤란하다. 친밀함이 회전하는 물체의 구심력이라면, 자유로움은 원심력에 해당한다. 궤도를 이탈하려는 힘이다.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이 회전을 유지한다.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산적해 있더라도 공존하게 해주는 힘의 균형은 정신적, 물리적 여유에서 나온다. 바로 느슨함이다. 서로를 옥죄지 않는 좀 헐렁한 상태, 그래서 나름의 숨 쉴 공간이 있는 상태다. 그것은 같이 편안하게 나이 들어가는 틀 안에서 상호 의존과 독립이 적절히 섞인 노후 결혼생활의 자유다. 갈라서니 마니 사생결단을 하지 않고 동의 가능한 수준에서 관계를 지속하는 지혜다.(218~219쪽)
5. 마르지 않는 샘
뭔가를 알게 되는 것은 재미를 준다. 배움이 즐거운 이유다. 이전에는 분명한 쓸모가 있지 않으면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 '올라갈 때 못 본 꽃을 볼' 시간이 생긴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입시 공부가 아니라 마음이 움직여 하는 인생 공부의 깊은 맛은 놓치기 어려운 노후의 재미다. 대단한 지식 축적이나 성취가 아니라 배움의 과정에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당연히 사람마다 차이는 있다.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 공부는 노후와 잘 어울린다. 연륜과 더불어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이해도와 생각이 깊어진다. 요즘 인문학 강좌가 홍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많고 유튜브에 엄청나게 쌓여 있다. 더 깊이 있는 공부는 동서양 철학이나 고전 강독 등 소규모 오프라인 강좌가 적절하다. 인문학공동체 수유너머, 에피쿠로스 같은 데가 대표적이다. 이런 공부 모임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좋은 기회도 된다.
공부가 머리 아프다면 단순한 동작으로 몰입과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컬러링북이 대표적이다. 좋은 글귀를 따라 쓸 수도 있다. 마음에 와 닿는 대목을 연필 또는 펜으로 백지 위에 옮기는 것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텍스트를 장악한 요즘은 손 글씨를 쓰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코로나19로 꼼짝하기 어렵게 됐지만, 여행은 대다수가 즐기는 '국민 취미'다. 시간이 많아진 5060에겐 여행만큼 마음 설레게 하는 게 없다. 해외여행과 공부를 결합한 시니어 단기 어학연수 또는 유학도 가능하다.
공부든, 취미든, 여행이든 몇 주나 몇 개월 단위의 프로젝트처럼 하면 생활의 리듬과 활력이 더 생긴다. 처음과 끝이라는 매듭이 생겨 지루함과 막막함이 덜하다. 기간이 정해진 강좌는 수강 자체가 하나의 프로젝트다. 장편소설이나 전집 읽기, 노래 한곡 연주를 언제까지 끝내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나름의 긴장감이 생긴다.
자기와의 약속이라고 해서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마냥 널브러져 있을 수 없다. 프로젝트를 끝냈을 때는 자그마한 보람과 행복이 찾아온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장단기 프로젝트에 따른 긴장과 이완이라는 사이클이 생기를 복돋운다.(265~269쪽)
6. 최고의 종교
삶의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는 철학과 종교는 나이와 더불어 정신세계가 깊어질수록 더 가까이 다가온다. 인간의 한계와 나약함, 세상살이의 덧없음을 알아가는 시기여서 그럴 것이다. 종교 가운데서는 개인의 깨달음을 중시하는 불교가 상대적으로 인간적인 편이다. 부처의 가르침대로 집착하는 게 없으면 괴로울 것도 없다. 속세에 사는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지만, 욕망을 내려놓을수록 삶이 편안해진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신을 받들고 신의 뜻에 따르며, 이웃을 사랑하도록 가르친다.
종교의 유무나 종류에 관계없이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시기에 절대자에게 의지하는 것은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또, 뭔가를 간절히 바랄 때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신의 은총이나 가호와는 별개로 기도하는 마음가짐 자체가 가치 있다.
널리 인용되는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의 '평온을 비는 기도'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한 마음,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간구한다. 믿음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어쩔 수없는 상황을 담담하게 발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노후 생활의 가장 큰 슬기로움일지 모른다.(272~274쪽)
7. 나도 몰랐던 존재의 이유
나눔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돈이나 능력을 어떻게 쓰면 삶이 더 충만할 것인가 하는 판단에 따른 선택이다. 누구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듣는 것에 연연해하지는 않으나 그 또한 기쁨을 더해주는 것이 사실이다. 나눔과 봉사같이 좋은 일을 하면 정신적 보상을 받는 것 외에 실제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몇 가지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선행의 직·간접 경험이 체내 면역력을 높이거나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의 분비를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돈보다 재능 나눔이 더 적절하다. 연륜과 숙련을 갖추고 시간이 넉넉한 이들에게 가장 부담이 적은 나눔 방식이다. 재능은 할 줄 아는 것이라는 뜻이지, 대단한 능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무리한 수준으로 하는 나눔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도 손쉽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선뜻 내킨다.
나눔 또한 버릇에 가까워, 하다 보면 생활화가 된다. 퇴직 뒤에는 왕성한 활동력을 갖고 있어도 돈벌이를 할 기회는 드물다. 자신이 잘하거나 하고 싶어 하는 일로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재산 대신 마음이 풍성해진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재능 품앗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상에서 늘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 그만큼 좋은 게 없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 자신이 도움이 되는 그 누군가 또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그것을 느끼기에 꼭 필요한 활동이 나눔이다. 나눔은 때때로 스스로 찾지 못하는 존재의 이유를 가르쳐준다.(276~2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