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과 애틋한 그 친구
진달래꽃과 애틋한 그 친구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4.21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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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지 못한 숙제 하나가 있었다.
언젠가는 꼭 물어 보리라 마음에 새겼다.
포복절도로 '낄낄'거린다.
경주 삼릉의 진달래꽃. 이원선 기자
경주 삼릉의 진달래꽃. 이원선 기자

진달래꽃은 일명 참꽃이라고도 불리며 한자어로는 두견화(杜鵑花)라 한다. 꽃이 아름다워서 관상가치가 있다. 삼월삼짇날에는 진달래꽃으로 만든 화전(花煎)을 먹으며 봄맞이를 하였고, 진달래꽃으로 빚은 진달래술은 봄철의 술로 사랑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시절 많이도 따 먹었던 꽃 또한 진달래꽃이다. 새봄을 오롯이 품은 꽃잎이 여린 듯 풋풋한 맛이 일품이었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은 꽃이다. 괜스레 꺾어서 또래의 여자 친구의 귀 뒷머리에 꽂아주고 싶은 꽃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속에 자리 잡은 여자 친구는 곁을 주지 않는다. 상사에 걸린 듯 가슴앓이로 4월이 훌쩍 지나간다. 그래서 4월은 잔인한 달인가보다. 그 잔인한 4월이면 진달래꽃으로 인한 풀지 못한 숙제 하나가 있었다.

그 친구는 진달래꽃이 산천을 물들이는 4월이면 어김없이 몰살을 앓았다. 평소 운동이라면 타인의 추종을 불허 하는 친구라 그의 몸살이 더더욱 숙제로 남는지도 모른다. 한해 정도라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겠지만 그 친구는 진달래 피는 4월이면 연년이 몸살을 핑계로 결석을 했다. 하루를 걸러 이틀 째로 접어들면 선생님의 걱정 또한 산비탈을 불게 물들이는 진달래만큼 벌겋게 속이 타들어가는 모양이다. 생각 끝에 이웃한 학생을 불러 “많이 아픈 모양이다 내일은 방과 후 같이 가보자”며 언질이다. 그리고 그런 다음 날이면 그 친구는 어김없이 출석을 했다.

헌데 출석한 그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입술은 새까맣게 죽어 보였다. 게다가 당나귀기침을 친구처럼 달아 콜록거렸고 손발은 이질에라도 걸릴 듯 부들부들 떤다. 가을 운동회날 1등을 도맡아 놓은 친구가 맞나 싶다. 간혹 ‘賞’라고 대문짝만하게 찍힌 대여섯 권의 공책 중 선심 쓰듯 한권을 “자~ 선물”하고 줄 때면 만년 꼴지가 3등으로 승격, 아버지께 쑥스러운 칭찬을 받는 어색한 풍경을 만들어 주는 친구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꼭 물어 보리라 마음에 새겼다.

비슬산 참꽃 군락지 일출. 이원선 기자
비슬산 참꽃 군락지 일출. 이원선 기자

마침내 40여년이 지난 동기회에서 그 친구를 운명처럼 만났다. 그때도 4월 초순, 기억을 상기하라는 건지 진달래꽃은 산천을 온통 뒤덮어 산불이라도 난 듯 흐드러지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싶어 “참꽃 피던 봄날 너 그때 정말 아팠어?”묻자 “아프기는 뭘 아파”하며 무슨 싱거운 소리냐는 듯 희멀겋게 웃는다. “그럼 까맣게 죽은 입술은 뭣꼬?”묻자 “다 진달래꽃 때문이지”하며 다 알면서 왜 그러냐며 오히려 반문이다. 그제야 속으로 집히는 것이 있어 ‘아~’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진달래는 많이 먹으면 혓바닥도 입술도 검붉게 변한다. 참꽃을 먹겠다고 이틀간이나 결석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럼 덜덜 떨던 몸은”하자 그건 연극이란다. 만약 ‘결석’이란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가히 주연배우감이다. “그럼 선생님이 바보네! 혓바닥만 검사했다면...!”둘이 마주보며 입이 찢어져라 웃는다. 그 모습이 싱겁다는 듯 진달래꽃 화전이 저만치서 분홍빛얼굴을 비스듬하게 접어 포복절도 '낄낄'거린다.

이제는 그 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다. 지치고 바쁜 삶이 기회를 주었던 모양이다. 몸속으로 암세포란 몹쓸 병균이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50대 중반으로 100세 시대라면 절반도 못 미친 나이다. 이런 걸 두고 인생무상이라 할까? 그날로부터 병원 출입이 잦아 점차 드나들더니 진달래꽃이 산비알(산비탈)에 벌겋게 흐드러지던 4월의 어느 봄날 하늘의 별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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