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찾은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영산홍이 만개한 봄볕이 따스한 날, 대구에 살면서도 한번도 가 보지 못한 국채보상운동 기념관을 찾았다.
기념관은 대구의 중심인 중구 대구시립중앙도서관 옆, 국채보상로 670 (동인동2가 42번지)에 있다. 건물 규모는 지하1층, 지상2층의 아담한 건물이다. 전시실은 지하층과 1층이다. 건물 주위는 영산홍이 만개하고 실록이 짙은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이다.
이 공원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 김광제 흉상, 국채보상운동 여성기념비, 달구벌대종과 정원수가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대구시민이 많이 찾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국채보상운동은 1895년 '을사늑약'부터 일본의 '부추김과 꼬심'으로 누적된 국채(國債, 나라빚)가 1,300만환이었다. 이 나라빚을 갚고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 민족 자주성을 찾자는 취지로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1907년 2월 21일, 대구 광문사에서 시작한 자발적 시민모금운동을 말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구시에서는 2월 21일을 대구시민의 날로 지정했다. 곁들어 2.28민주운동까지 즉 매년 2월 21부터 2월 28일까지 8일간을 대구시민주간으로 지정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당시 1,300만 환은 대한제국의 1년 예산에 맞먹을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이 운동을 주도한 인물은 그 당시 대구에 있었던 출판사 '광문사' 사장인 보령 출신 김광제와 부사장인 대구 출신 서상돈이다. 이 운동의 요지는 '대한국민 2,000만명이 담배를 끊어 1개월간 담배값 20전씩을 3개월 저축하면 1,300환이 되므로 전국민이 3개월간 담배를 끊어 그 돈으로 이완용(李完用) 내각이 일본으로부터 차관한 1,300만환을 갚아서 경제적 예속으로부터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자발적 시민 모금운동은 전국적으로 들불 같이 번졌다. 참가자는 남녀노소, 신분의 귀천도 없이 나라를 구하겠다는 애국심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여기에는 대구 서문시장 상인들과 언론사가 적극적으로 활약하여 전국적으로 확산 시키는데 큰 역활을 했다.대구 시민으로서 자긍심이다.
모여진 성금은 총188,000환 정도였으며 일부는 민립대학 설립의 기금으로 사용되고 남은 약 15만 환 모두를 일본의 경무총감부에 귀속 시켜버렸다고 한다. 원통하고 슬픈 역사다.
국채보상운동은 전국민이 참여한 한국 최초의 시민운동, 최초의 여성운동, 최초의 언론 캠페인운동, 최초의 금연운동으로써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운동에 관련된 자료는 자랑스럽게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구에서 시작된 운동이기에 대구시민으로서 자긍심을 느낀다. 이 운동을 주도한 서상돈을 위시하여 이상화, 박태준, 이육사, 현제명 등 많은 사회운동가, 예술가가 활동한 대구는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활을 담당했던 자랑스런 고장이었다. 그때가 그립다.
참고:
유네스코 등재된 우리나라 기록유산
1.훈민정은 해례본
2.조선왕조실록
3.직지심체요절
4.승정원 일기
5.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6.조선왕조 의궤
7.동의보감
8.일성록
9.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
10.난중일기 이순신장군 진중일기
11.새마을운동 기록물
12.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13.한국의 유교책 경판
14.국채보상운동 기록물
15.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16.조선 통신사에 관한 기록.
16건의 우리나라 세계기록유산은 세계에서 4번째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자랑스럽다.
tip:
•입장료는 없으며 주차는 기념관 주위에 있는 유료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화폐박물관 공원 코너에 있다. 입장료는 없다.
•읍내밥집(053 422-4248) 고풍스런 실내가 인상적이다. 경북광유 건너편, 중구 공평동 81-7.
간고등어 정식 1인분 9천원이다.
•시간 여유가 되면, 서상돈 고택과 이상화 고택을 둘려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