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2011년, 열림원)
촌철살인이다. 처음부터 외로우니까 사람이고 사람이니까 그 외로움을 견디고 이겨 내야 한다고 갈파한다. 그런 냉정함 속에 뜨거운 애정을 느끼게 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우리는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면서 얼마나 많은 초조와 갈등 속에 헤매 이었던가. 그저 순리대로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고 조근 조근 일러준다.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넌지시 위로하는 따뜻함도 내포하고 있다. 갈대숲에서 도요새가 지켜보듯 누군가 나를 지켜 봐 주고,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라고 말해 주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부모님 일수도 있고 형제자매나 친구일수도 있다.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미처 모르고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러기에 나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도 해주고 좋은 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근원적인 외로움이 있다. 그것은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천형인지도 모른다. 사람뿐 아니라 새들도 외로워서 나뭇가지에 앉아 있고 산 그림자도 해질 무렵이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마을로 내려온다고 한다. 종소리마저 외로워서 자기의 존재감을 나타내려는 듯 울려 퍼진다고 한다. 하물며 절대자인 하느님도 외로워서 가끔 눈물을 흘리신다니 이 얼마나 절묘한 표현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외로운 존재이기에 서로 위로하고 기대며 살아야 한다는 조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제목이 ‘수선화에게’ 라고 했을 때 처음에는 조금 생뚱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수선화의 꽃말이 자기애란 걸 알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무엇보다 자기를 사랑하라고 일러주는 것 같다. 누가 뭐래도 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외로움을 견디기가 한결 나아지리라. 그러면서 타인에게 위로가 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아직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면 세상에 무엇이 두려우랴. 사람으로부터 위로 받기도하고 때로는 자연으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종교인 이라면 무엇보다 절대적인 신의 위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위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