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특수한 분야로서 법의학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 의학은 치료의학이다. 진료와 치료 행위를 한다. 법의학은 법률상 문제되는 의학적·과학적 사항을 연구한다. 원인 불명의 살인사건이 발생한 경우 사인(死因), 범인 색출, 사인과의 인과관계 등을 규명한다. 치료의학은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고 건강을 증진시킨다. 생명존중의 의학이다. 법의학은 사람의 권리가 억울하게 침해받는 일이 없도록 그 권리를 옹호한다. 권리존중의 의학이다.
법의학에서는 죽음의 원인을 질병과 같은 내인과 손상과 같은 외인으로 구분한다. 인체에 내인이나 외인이 가해지면 인체 내에서는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생체반응이 일어난다. 내인 또는 외인이 생명을 유지하기에 부적합한 정도로 심하면 평형은 파탄된다. 그리고 생명활동이 정지된다. 이어 생명활동은 영구히 정지하여 소멸된다. 이를 죽음으로 본다.
법의학에서는 사망을 내인사, 외인사, 불명(不明)으로 구분한다. 사인이 어떻게 또는 누구에 의하여 초래되었는지에 따른 것이다.
내인사는 내적 원인에 의한 죽음이다. 대부분 질병이므로 병사라고도 한다. 전신의 모든 장기가 노쇠하여 사망에 이르는 자연사도 이 범주에 속한다. 자연사라도 해부해 보면 거의 대부분 질병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외인사는 외적 원인에 의한 죽음이다. 외인 단독에 의한 경우가 보통이다. 기존 질병이 있는 상태에서 외인이 가하여져 죽음이 앞당겨진 것도 외인사이다.
외인사는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자 및 그 의사에 따라 자살, 타살, 사고사, 불상(不詳) 등 네 가지로 구분한다. 불상은 외인에 의하여 사망하였으나 외인이 누구에 의하여 어떻게 작용하였는지 알 수 없는 경우이다.
2005년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진 B씨가 1년 뒤 사망하였다. 처음 S대 병원 사망진단서에는 병사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전공의가 수정 권고를 받아들여 다시 외인사로 수정하였다. 외인사가 되어야 유족들이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할 수 있다. 해당 경찰관의 처벌도 가능하다.
불명은 사인은 물론 내인사인지 외인사인지 구별할 수 없는 경우이다. 불상은 외인사인 것은 확실하나 누구인지를 모르는 경우이다. 그러나 불명은 내인사인지 외인사인지 조차 모르는 경우이다.
내인사(內因死) |
병사(病死) |
질병으로 인한 죽음 |
자연사(自然死) |
노쇠로 인한 죽음 ※ 병사에 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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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사(外因死) ※ 변사(變死) |
자살(自殺) |
스스로 죽음 |
타살(他殺) |
타인에 의한 죽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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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사(事故死) |
사로로 인한 죽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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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不詳) |
외인사는 맞으나 누구에 의한 것인지 모르는 죽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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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不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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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사인지 외인사인지 모르는 경우 |
예컨대 물에 빠져 죽은 경우 사망원인은 익사이다. 외인사에 해당한다. 만약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물에 뛰어들었으면 자살이다. 남이 빠뜨려 죽였으면 타살이다. 술 마시고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 죽었으면 사고사이다. 익사인지는 알겠으나 어떻게 물에 빠졌는지 알 수 없으면 불상이다. 익사인지 또는 병이나 노환으로 쓰러져 죽은 사람이 물에 떠내려 간 것인지 모르면 불명이다.
이밖에 변사(變死)가 있다. 병사 및 자연사 이외의 외인사를 통틀어 일컫는 법률용어이다. 변사는 국민의 건강·안전·범죄와 관련된다. 따라서 사망 원인을 밝히고, 국가가 책임지고 처리해야 한다. 당연히 검안비용은 국가의 몫이다. 「형사소송법」은 “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가 있는 때에는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검사가 검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료법」에서도 “의사·치과의사·한의사 및 조산사는 사체를 검안해 변사한 것으로 의심되는 때에는 사체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경찰서장에게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변사자의 경우 유족 등 시신 발견자는 함부로 시신을 옮기거나 훼손하지 말고 현장을 보존한 뒤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장례도 치를 수 없다.
검시(檢屍)는 시체에 대한 조사행위를 총괄하는 말이다. 범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 검안(檢案)과 부검(剖檢)으로 구분한다. 검안은 시체를 손상시키지 않고 사람의 사망을 확인하기 위하여 시행되는 검사이다. 검안만으로 사인을 추정하거나 사망의 종류를 구별하기가 어려운 경우 부검을 실시한다. 부검은 시신을 해부해서 사망 이유와 사인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고의든 실수든 담당 의사가 외인사를 병사로 처리해버리면 사건은 종결된다. 이른바 완전범죄가 되는 케이스다. 완전범죄는 해당 범죄사실이 수사기관에 발각되지 않으면 된다. 수사기관에 발각되어도 증거가 없거나 증거가 있어도 불충분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완전범죄가 되면 공소시효가 지날 때까지 검거 및 기소를 못하고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
법의학에서는 죽음을 심폐사, 뇌사, 장기사, 세포사 등 네 가지로 구분한다. 이 중 심폐사를 죽음의 시점으로 본다. 인체의 많은 장기 중 죽음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장기는 뇌, 심장, 폐 등 세 가지이다. 이를 3대 생명유지 장기라고 한다. 이들은 서로 독립하여 생명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세 장기의 기능이 모두 영구히 정지한 시점을 심폐사로 본다.
장기사는 세 장기 중 어느 한 장기가 사멸하는 것이다. 세포사는 생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세포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몸이 완전히 썩은 후에나 가능하므로 현실적으로 적용하기가 곤란하다. 사인의 중류에 따라 손해배상 등의 법적 효과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보험금은 사인에 따라 상해사망보험금과 일반 사망보험금으로 나누어진다. 통상 외인사로 인한 상해사망보험금이 내인사로 인한 일반 사망보험금보다 금액이 높다. 그리고 산재 사망의 경우 외인사는 바로 산재 적용이 가능하나 내인사는 인과관계의 요건이 성립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인의 입증과 규명이 중요하다.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로서 미제사건이라는 것이 있다. 넓은 의미에서는 수사 개시 이후 법적 처분이 내려지기 전까지의 모든 사건을 가리킨다. 그러나 보통은 장기 미제 사건 영구 미제 사건만을 가리킨다. 장기 미제 사건은 수사 개시 이후 오랜 기간 법적 처분이 이뤄지지 못한 사건이다. 영구 미제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영원히 범인에 대한 법적 처분을 기대할 수 없는 사건이다. 즉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되는 사건이다.
우리나라 3대 연구 미제 사건으로 다음을 예로 든다. 첫째, 1991년 이형호 군(당시 9세)이 30대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유괴되어 살해당한 사건이다. 둘째,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시에서 여성 10명이 살해당한 사건이다. 셋째, 1991년 대구에서 초등학생 5명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갔다가 살해당한 일명 개구리소년사건이다. 이들 가족들의 슬픔과 회한이 큰 것은 물론이고 인간 양심의 상실과 위선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역사에서 사인이 규명되지 않은 채 억울한 죽임을 당한 경우도 많다. 조선 16대 왕 인조의 맏아들인 소현세자가 있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고 볼모로 청나라로 끌려갔다. 9년간 억류 생활 끝에 귀국한지 두 달 만에 사망하였다. 병사라는 설과 함께 인조에 의한 타살이라는 설이 있었다.
그러나 인조는 세자빈 강씨가 독살한 것으로 처리하였다. 강씨는 폐빈을 당하고 사약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왕세손의 자리를 빼앗긴 것은 물론 제주도 유배 중 어린 나이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녀의 친정어머니와 동생과 노비 등도 장살(杖殺 : 매로 쳐서 죽임)로 사망했으니 그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부끄럽고 슬픈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