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⑨ 겨울의 낭만, 가마니 짜기와 새끼 꼬기
[꽃 피어날 추억] ⑨ 겨울의 낭만, 가마니 짜기와 새끼 꼬기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1.05.18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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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집집마다 볏짚으로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짰다. 이 일은 겨울에 농촌에서 돈을 만질 수 있는 유일한 부업이었다. 굵은 새끼를 꼬는 새끼틀을 구입하여 굵은 새끼를 꼬아서 팔기도 했다.
가마니를 짜는 가마니틀. 유병길 기자
 가마니틀에서 바디로 가마니를 짰다.  유병길 기자

 

1950년~6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사람들은 벼 탈곡 작업이 끝나면 긴 겨울 동안 볏짚과 더불어 긴 사랑 나누기를 시작한다.

벼 속의 알은 쌀이 되어 굶주린 배를 불려주었고, 벼의 겉껍질인 왕겨는 땔감과 퇴비로, 쌀의 겉껍질인 미강(당가루)은 사료와 식용유 제조 원료로 사용하였다. 볏짚은 지붕을 이고 땔감 사료 퇴비의 원료가 되었으며, 가마니 멍석 짚신 봉태기 등 볏짚 가공제품의 재료가 되었다. 벼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우리 민족과 생사를 같이한 아주 유익한 작물이다.

가마니는 1900년대 일본에서 들어왔다. 가마니가 들어오기 전에는 발을 엮듯 짚으로 섬을 엮어 끝을 안으로 들어가게 꿰매어 곡물 사료 등을 담아 보관하였다.

가을 일이 끝나고 이엉을 엮어 초가지붕을 새로 이고 나면 본격적으로 가마니 짜기는 시작되었다. 볏짚 가리에서 볏짚단을 풀어서 끝부분을 왼손으로 한주먹 잡고 오른손으로 밑 부분의 북데기를 추려내고 모아서 새로 단을 묶어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짤 볏짚을 미리 손질을 했었다.

가마니를 짤 때 가마니틀에 사용하였던 가는 새끼. 유병길 기자
가마니를 짤 때 가마니틀에 사용하였던 가는 새끼. 유병길 기자

 

새로 손질한 볏단에 물을 뿌려 두었다가, 떡메로 볏단을 돌려가면서 밑 부분과 줄기를 쳐서 부드럽게하여 헌 멍석으로 덮어 두었다. 한 단씩 가져다가 손으로 비벼 가마니를 짤 수 있는 가는 새끼를 꼬아서 가마니틀에 날줄을 매었다. 가마니틀 양쪽에 바디 쇠봉을 거는 고리를 올리고 바디는 위에, 긴 쇠봉은 밑에 걸었다. 새끼를 가마니틀에 한 바퀴 돌려 바디 구멍에 끼어 쇠봉에 묶었다. 바디 구멍(보통 42개)에 새끼줄을 다 걸면 양쪽의 고리를 벗겨 밑으로 내렸다. 바디로 쇠봉을 가마니틀 밑으로 내리고, 가마니틀 뒤쪽에서 가마니틀과 새끼줄 사이에 둥글고 긴 나무 빗장을 끼어 두 발로 밑으로 내리면 날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가마니를 짜는데, 한 사람은 가마니틀 정면에 앉아서 바디를 위로 들어서 앞으로 당겨 날줄이 벌어지면 가마니틀 옆에 앉은 사람은 얇은 대나무 바늘 끝에 볏짚 밑 부분을 약간 접어서 바디 밑으로 밀어 넣고 대나무 바늘을 빼면 바디를 밑으로 내려치고, 다시 바디를 들어 뒤로 밀면 대나무 바늘만 넣고, 바디를 잡은 사람이 왼손으로 고리에 걸어주는 볏짚을 당겨서 빼면, 바디를 내리치면서 가마니를 짰다.

두 뼘 정도 짜면 바디를 위로 올려 엇비슷하게 놓고 양쪽 줄 밖으로 나온 볏짚을 조금씩 새끼줄 2개에 돌려 2줄 사이에 끼워 마무리하면서 짰다.

한 면을 다 짜면 뒤에 빗장을 빼고 짠 앞면을 밑으로 밀어 뒤로 보내고 다시 빗장을 박고, 앞면을 다 짜면 다시 빗장을 풀어 뒤로 밀고 빗장을 박아 짰다. 가마니를 다 짜면 빗장을 빼고 고리를 가마니틀 위로 올려 바디 양쪽을 고리에 걸었다. 날줄을 칼로 자르고 끝을 엮어 마무리하면 가마니 짜기는 끝이 났다.

두 사람은 계속 앉아서 가마니를 짜고, 한 사람은 새끼를 계속 꼬면서 볏짚 준비도 하였다. 기다란 방석같이 짠 것을 절반 접어서 가마니바늘에 새끼를 끼워 양쪽 부분을 꿰어 매고 잘 드는 낫으로 양쪽 옆을 마무리하고 남아있는 볏짚을 깨끗하게 자르면 가마니가 완성되었다. 가마니 짜는 것도 가족이 많고, 젊고 손발이 맞아야 많이 짤 수 있었다.

지게위의 가마니 입니다. 유병길 기자
지게 위의 가마니가 가지련히 얹혀있다. 유병길 기자

 

보통 가정에서는 밤잠을 안 자고 많이 짜야 하루에 열 장을 짜는데, ‘말바탱이’ 어떤 농가는 젊은 가족이 많고 가마니 짜는데 목숨을 걸어 하루에 스무 장씩 짰고, 가마니 판 돈으로 논을 샀다는 소문도 있었다.

어린이들도 새끼도 꼬고 볏짚 준비를 도와드려도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세 분이 짜는 친구 집은 많이 짜야 하루에 다섯 장을 겨우 짰다. 겨울에 만져볼 수 있는 돈이라고는 가마니 짜는 것뿐이어서, 많은 먼지를 마시면서도 밤잠을 자지 않고 짰으며 어린아이들도 겨울 방학 때는 가늘게 가마니 새끼를 꼬아서 어른들을 도와드렸다.

1960년대 초반에는 새끼를 꼬는 기계를 사서 굵은 새끼를 꼬는 농가가 많았다. 양쪽 둥근 구멍에 짚을 넣으면서 발로 밟으면 굵은 새끼가 꼬여 새끼를 감는 원통에 둥글게 감기는데 손으로 짚을 넣으며 발로 계속 밟으려면 무척 바빴다. 다 감기면 새끼 타래를 빼고 다시 새끼를 꼬았다.

굵은 새끼를 꼬는 기계. 유병길 기자
굵은 새끼를 꼬는 기계가 우람하다. 유병길 기자

 

‘가는 다리’ 장날 가마니, 새끼 공판이 있는 날에는 어른들이 집에 오실 때 동태나 물오징어를 사 오셔서 얼큰하게 국을 끓여 온 가족들이 맛있게 먹었다.

이때까지 곡물과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용기는 가마니밖에 없었다. 쌀도 가마니에 담아 운반 보관도 하고, 추곡 수매할 때도 가마니에 50Kg 담아 새끼줄로 가로 세 번 세로 한 번을 묶어 수매하였다. 1970년대 말 마대, PP 포대가 나오면서 정부에서 가마니를 사지 않아 가마니를 짜는 농가도 사라졌다. 그때 쉴 사이 없이 바빴던 가마니틀은 농경 유물관에서 편히 쉬고 있다.

가마니를 못 짜는 노인들은 짚신, 봉태기, 산태미 만들고, 여름에는 큰 멍석을 만들어 집에서 사용도 하고 팔기도 하였다. 그 당시에는 일상 용품 중 볏짚 가공제품이 제일 많았는데, 플라스틱 제품이 나오면서 자리를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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