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보다는 두꺼비를 닮은 듯도 보인다.
밀짚모자만 머리에 썼더라면 여름이라고 해도 깜박 속을 판이다.
구미 천생산을 가는 고속도로 위로 연두색 봄빛이 축복처럼 쏟아진다. 봄 산행이라 그런지 겨우내 잠들었던 세포가 어서 빨리 가자며 닦달이 대단타. 파릇파릇 생기가 돌아서 좋은 시기라 그렇단다. 에메랄드빛 하늘아래라 마음이 더욱 설렌단다. 황사가 물러간 뒤 산하를 아련하게 감싸고도는 송홧가루의 노릇노릇한 무희가 아름답단다. 길 가장자리로 한 움큼씩 돋아나는 쑥 무리가 반기는 자락길이라 더없이 좋단다.
천생산은 경북 구미시 신동·황상동·금전동·장천면에 걸쳐 있는 해발 407m의 나지막한 산이다.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행에서 서울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흡사 방티(함지박)를 엎어 놓은 듯 펑퍼짐하게 보여 ‘방티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산 이름을 가지고 있다. 동쪽에서 보면 하는 천(天)자로 보이고 정상이 일자봉으로 생김새가 특이하여 하늘이 내놓은 산이라 해서 천생산으로, 병풍을 둘러친 것 같다고 해서 병풍바위라고 부른다. 또 정상의 천생산성 유래비에는
“하늘이 낳았다는 천생산, 그 허리를 두른 성벽은, 오랜 세월 외침을 막아낸, 역사의 흔적, 일찍이 헉거세가 축성하고, 홍의 장군이 수축하였다고, 전하는 천생산성, 면면히 이어온, 역사의 시간을 기리며, 이 비를 세우다”라고 그 유래를 적고 있다. 따라서 헉거세가 처음 쌓았다는 전설 때문에 ‘헉거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외에도 정상이 일자로 보인다고 해서 ‘일자봉’으로도 부른다.
산행의 들머리는 검성지를 택했다. 그다지 어려운 산은 아니다. 봄볕치고는 때 이른 더위를 품고 있어 그늘을 찾고 싶은 산행길이다. 그저 숨을 고르고, 참고, 발품만 부지런히 팔면 무난히 오를 수 있는 산이다. 한때 천미터 급의 산이 아니라면 산이라 부르지도 말라던 친구가 이것도 나이라면 또랑조(산 밑에서 놀자 판)를 자청하는 터라 살살 꼬득(구슬리다)여 가며 오르는 길이라 더 무난하다.
대피소부근에서 간식으로 오이 등으로 간단하게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오르는 길에서 거북바위를 만났다. 거북 바위는 거북이가 엎드린 돌 형상이다. 특이하게도 눈까지 또렷하게 달아놓아서 더욱 실감이 난다. 돌아서 정면에서 보자 거북이보다는 두꺼비를 닮은 듯도 보인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깔딱 고개를 연상할 만큼 경사도가 있다. 가끔 바위를 타고 넘는 너덜구간도 심심찮게 있다. 아주 가파른 지역은 나무계단으로 이루어 져 있다. 그렇다고 아주 못 오를 정도는 아니다. 700~900m남짓한 길이라 쉬엄쉬엄 오른다 해도 30여분 정도면 충분하다.
산정에 오르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미덕암’이다. 미덕암은 산 아래에서 잘 보이는 바위에서 말 등을 흰 쌀을 부어 말을 목욕시킨 데서 유래된 바위 명칭이다. 천생산 남서쪽에 돌출된 커더란 자연석 바위로 이곳에 서면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공기가 탁한 도심에서 찌들대로 찌들은 눈이 모처럼 만에 푸른색을 만나 시원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구미4공단 등을 눈 아래로 굽어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이 바위에서 흰쌀로써 말을 목욕시킨 데는 임진왜란을 맞아 산성으로 피신한 홍의장군과 관련이 있다.
왜군이 산성을 에워싸 산성에서 물이 떨어지면 항복해 올 것이라 여기며 무모한 공격보다는 수비를 위주로 진을 치고 있었다. 이에 홍의 장군은 흰 쌀로써 말을 목욕, 산정에 물이 많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위를 한 것이다. 이에 흰 쌀을 물로 착각한 왜병들이 산성에 물이 떨어지려면 멀었다고 판단, 곧장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는 것이다. 진퇴양난의 어려움 속에서 홍의장군의 임기응변 지혜가 급박한 위기를 모면케 한 역사의 현장이다.
천생산성은 정상 주위 8~9부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있다. 금오산성, 가산산성과 더불어 적의 칩임에 대비하여 매우 중요하게 여긴 산성이다. 서쪽은 자연절벽을 이용하였고 북, 동, 남쪽은 정산 주위를 따라 테뫼식산성(마치 띠를 두르듯 산 정상부를 빙 둘러 가며 쌓아 올린 산성)으로 축조하였다.
산정은 평지와 다름없었다. 모처럼 봄 산행을 만끽하고자 자리를 깔고 앉았다. 그런데 의외로 바람이 사납다. “쏴아~쏴아 윙윙”하는 소리를 내며 치고 올라오는 골바람이 졸참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을 뿌리 채 뽑을 듯 세차게 흔든다. 하지만 이 정도 쯤에는 굴복할 수 없다는 듯 나무들은 하얗게 잎을 뒤집어 저항이다.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봄 날씨가 산정을 어지간히도 데웠나보다. 앉아 있으면 괜찮은데 일어서면 머리칼이 마구잡이로 흩으려져 흩날리고 모자가 벗겨질듯 거세다.
간단하게 요기를 마치고 곧바로 하산이다. 다시 검성지로 향하는 길은 북문지를 돌아서 가는 길을 택했다. 하산 길은 등산길보다 더 무난했다. 발걸음도 가볍게 산을 내려오는 중에 앞서가는 팀이 길을 멈추고는 모여서 웅성거린다. 뒤늦게 도착 하고 보니 으아리꽃 한 송이가 길섶에 생뚱맞게 흐드러져 있다. 음지에서 흰색으로 피다보니 뭇사람들의 눈에 유난히 빛난다. 누구나 쉽게 감탄할 만한 꽃이다.
“산속에서 갑자기 만나 그 크기와 아름다움에 놀라 ‘으아’하고, 감탄을 해서 으아리, 보기에 연약해 보여 줄기를 잡아채다 줄기가 끊어지기는커녕 손을 파고들어 ‘으아’하는 비명이 절로 나온다고 해서 으아리”란 말이 딱 맞다. 출처 ‘시니어매일’
검성지에 도착하고 보니 모두가 나무그늘 밑에 앉았다. 벌써 계절이 이렇게 흘렀나 싶다. 홍매 청매가 눈 속에서 설중매로 거듭나 난분분 흐드러졌다고 호들갑을 떨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늘이 좋다고 찾아드니 말이다. 게다가 참외를 파는 장사꾼이 차량 위에서 봉지, 봉지 담아 판을 펼쳐 사라고 부추긴다. 설탕같이 달다고, 맛있다고 부추긴다.
하지만 아직은 계절상으로 봄이다. 생명이 준동하여 생기가 사방으로 충만한 계절이다. 집으로 향하는 길 위로 참빗으로 빗은 듯 고운 봄볕이 아지랑이를 피어 자글자글하다. 어깨 너머론 연녹색 갑옷을 산뜻하게 차려 입은 천생산이 “또 오세요”손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