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는 양심 있는 지도자의 양보와 소통으로 이루어지는 것
대구 서구 중리동에 상리공원이라고 제법 큰 공원이 있다.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등산을 할 수 있는 작은 산도 있어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 공원의 관리자는 대구시 서구청인데 이용자는 대부분 달서구민이라는 것이다. 약 22만㎡의 넓은 면적에 다양한 편의시설을 관리하기 위해 서구청에서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가뜩이나 구세가 약하여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서구청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유는 상리공원 앞 도로를 경계로 서구와 달서구의 경계가 그어졌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는 서대구공단과 함께 서구에 소속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공원 앞 달서구 용산지구서 아파트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반면에 공원 뒤편의 서대구공단에는 거주하는 주민이 없어 지리적으로 서구 주민이 공원을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죽 쒀서 개 준다’는 말도 있지만 민선 자치시대에 대구 서구청 입장에서는 달서구민을 위하여 서구의 예산을 퍼붓는 일이 매우 불편할 것이다. 어쩌면 애물단지가 될 수 있는 데도 관리는 잘 되고 있다. 새로운 콘텐츠도 계속 도입하고 낡은 시설물 보수도 신속히 이루어지며 청소도 깔끔하게 잘 되고 있다.
‘죽 쒀서 개준다’는 속담을 무색하게 만드는 상리공원의 비결은 무엇인가? 바로 ‘협치’이다. 서구청에서는 구세가 약하다는 핑계로 제 할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자기네 구민이 이용하지 않는다고 달서구민을 구박하지도 않는다. 재정 여건이 어렵지만 꼭 써야 할 돈은 쓴다. 덩치로 봐서 형님 격인 달서구청에 쓴 소리도 하지 않는다.
달서구 역시 협치를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법규로 인해 남의 행정구역에 예산을 쓰지는 못하지만 공원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협치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배드민턴 동호회는 배드민턴장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다. 테니스, 족구, 애견 동호인들도 마찬가지다. 서구청의 관리 인력을 따로 투입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관리를 해오고 있다.
용산동에서 20년째 거주하며 매일 상리공원을 이용하고 있는 이O욱 씨(63세, 공인중개사)는 “주민들도 서구청의 노력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관리인이라는 생각으로 공원을 이용하는 것이 시민 된 도리가 아니겠는가”라며 서구와 달서구의 협치를 높게 평가했다.
이 씨는 달서구 용산동에서 새마을 지도자, 통장 등으로 봉사해오면서 지자체 간의 협치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달서구민이 공원을 엉망으로 사용하면 서구청에서 공원을 관리할 의욕이 나겠나?”면서 “용산동의 각급 봉사단체들이 주기적으로 순찰, 청소, 캠페인을 하면서 공원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았다”며 달서구민의 높은 시민의식을 자랑했다.
협치는 높은 시민의식과 지도자의 양심이 합쳐져서 빛을 발한다. 서구청과 달서구청은 상리공원을 통해서 협치의 묘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나라에서 하지 못하는 일을 작고 가난한 지자체에서 생색내지 않고 조용히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요새 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입만 뻥긋하면 협치를 부르짖는다. 대통령이 협치를 강조하면 다른 지도자들은 조용히 협치를 실천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협치에 무슨 암호를 걸었는지 모두들 협치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검찰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정작 개혁의 주체요 당사자인 검찰과는 전혀 협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허구한 날 쌈박질만 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국민이 무엇을 보고 협치를 배우겠는가? 국민통합은 하지 못하면서 북한과의 협치에는 온갖 공을 다 들이고 있다. 일방적인 애정공세로 남북 간의 협치가 이루어지겠는가?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묻는다. 그대들은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을 아는가. 알고도 모른 체 하는 건가. 야당이 법사위원장 자리 하나 양보해달라고 징징대면 귀 기울여 듣고 젖을 물려 달래야 할 것 아닌가. ‘검수완박’이라고 항의하고 떼를 쓰면 입에 사탕이라도 하나 물리고 얘기를 들어봐야 다음 일이 진행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힘없고 무식한 놈들이라고 무시하고 윽박지르며 일방통행만 할 것인가.
야당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대구 서구 상리공원을 아는가. 잘 모른다면 한번 와서 견학해 보길 권한다. 인구 적고 예산 적은 대구 서구청장이 남의 동네 주민들이 이용하는 공원에 묵묵히 투자하는 이유를 배워가기 바란다. 징징대지 않아도 성실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면 남의 동네 사람들이 미안해서라도 빗자루를 들고 나서게 되어 있다. 언제까지 힘없음만 한탄하고 남의 탓만 할 것인가.
협치는 거창한 계획이나 구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입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 협치는 소통과 양보, 양심 있는 지도자가 자기역할을 제대로 할 때 가능한 일다.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묻는다. “니들이 협치를 알아?” 20년 전, 탤런트 신구가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멘트로 인기를 끈 광고가 생각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