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내 흉이기도 하지만 또 네 흉이기도 하다
꿩을 구워 먹은 도둑놈처럼 입을 다물던 녀석 답지 않다
그때 시어머니는 “너~ 이놈!”하고 분명 ‘너~ 이놈’이라고 했건만 김천댁은 이미 시어머니의 눈길 한 번에 멘탈이 붕괴 된 상태다. 정신이 혼곤한 상태에서 김천댁은 ‘네~ 이년’으로 오해하여 듣고 있었다. 무섭고 두려운 가운데 환청으로 귀전에 쩌렁쩌렁한 그 일갈은 김천댁으로 하여금 오줌까지 지리게 했다. 다음에 올 말은 안 들어봐도 빤하다 여겼다.
“너는 밤마다 살을 섞고 사는 서방을 헌 짚신짝처럼 내팽기고, 배곯은 새끼에게서 조차 매몰차게 등을 돌리고, 시에미는 안중에도 없이 도둑고양이처럼 그 많은 괴기를 혼자 꾸역꾸역 쳐 먹으니까 맛있디! 배가 부르디!”하고 꾸짖는 듯 했다. 결국 그간의 모든 행동이 이때를 위한 연극이란 생각이 들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다. 눈앞이 노랗게 변하는 것이 서있기조차 버겁다. 도살장에 끌려온 소처럼 여기가 끝이다 싶었다. 김천댁은 죽음을 눈앞에 둔 소처럼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죽음을 앞둔 짐승들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는다고 한다. 자신의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어 찰나를 회피하고 싶은 것이다. 두 눈을 꼭 감은 김천댁은 가족들 앞에서 발가벗겨져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다 여겼다. 결국 트라우마로 인해 미쳐나든지, 죽어지든지 그도 아니면 사람들이 살지 않은 곳으로 가야만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여겼다. 두 주먹 불끈 쥐고 태어난 이승에서 명예도 권세도 비켜난 삶이지만 이렇게 무명초처럼 허무하게 스러진다 생각하니 너무 가련하다 생각되었다. 그 와중에 주책없이 속옷을 적신 오줌줄기가 허벅지를 지나 무릎을 탄다. 어찌할 바를 몰라 몸을 뒤트는데 시어머니의 다음 말이 이상하다. 살포시 뜬 실눈으로 방안 풍경을 살펴보자 등을 보인 시어머니는 당신의 손자를 무섭게 노려보며 꾸짖고 있는 중이다.
“이런 맹랑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을 보았나!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가며 먹을 것 안 먹고 금이야 옥이야 키운 정성을 몰라도 유분수지! 인간 같잖은 놈! 쥐방울만한 게 벌써부터 어디 지 어미 알기를 우습게 알아 허옇게 치켜뜬 눈깔을 부라리길 엇다 부라리노! 귀싸대기가 움푹 둘러빠지도록 오지게 한방 맞아야 정신 차릴래!”하며 쌍심지를 켠 눈을 치켜뜬다. 시어머니의 서슬에 뜨악해진 아들 녀석이 움찔 고개를 숙이는데 왠지 모르게 가슴이 짠하다. 방금 전까지 한 방 쥐어 받고 싶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이러는가 싶다. 이게 어머니의 진정한 본심인가 싶었다. 헌데 매일같이 귀하다고 줄줄 빨던 손자를 나무라다니!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던 말은 어디로 가고 꾸중이라니! 이는 전에 없던 일이기도 하다.
“우리 맏손자! 내 똥강아지 내~ 똥강아지”하며 치마폭에 감싸 돌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저녁상에 자리하기가 무섭게
“아가 너는 뻘쭘하게 게 서서는 뭘 하니 어~여! 앉아서 한술 뜨 잖코! 밥 배, 술 배는 는 따로 있다고 하잖아!”하며 앉기를 강권하더니 ‘자~자! 한술 뜨고 넝마쪼가리 같은 치말랑 벗어 불에 후지지고 이참에 치마나 하나 짓자!’하며 수저까지 챙긴다. 그때 김천댁이
“어머님 저는 아직...!”하며 에멜무지 말끝을 흐리는데 대뜸 시어머니가 말꼬리를 자르며
“됐다. 너는 괜찮을지 모르겠다만 서도 내가 안 괜찮아서 그런다. 내가...! 엄연히 이 시에미가 있는데 그게 뭔 꼬락서니고! 밥 빌어먹는 동네 꺼러지도 그리는 안 입겠다. 그게 내 흉이기도 하지만 또 네 흉이기도 하다. 내가 왜 이제 사 그걸 깨달았는지 모르겠다. 멍청이 같이 말이다. 네 흠이 결국 내 흠이라는 것을...! 이 시에미를 네가 몰라 그렇지 나도 한창 때는 바느질 솜씨하면 어딜 갔다 놓아도 안 빠졌느니라! 내 벌써 옷감도 넉넉하게 장만했다. 그러니까 너는 더 이상은 암말 말거라! 그러게 우리는 한 식구잖니!”하고 시어머니가 타이르듯 말하는데 남편은 눈에 익숙하지 않은 고부의 다정한 모습이 화를 불러 왔는지
“도대체 당신은 뭣 하는 사람이야! 집구석에 들어앉아 탱자~ 탱자! 놀고 자빠졌으면서 밖에서 쌔가 빠지게 일하는 사람 끼니 하나 제때에 딱딱 못 챙기고! 그리고 엄마는 이 사람한테 무슨 말 못할 책이라도 단단히 잡혔소! 당체 뭘 잘못 했기에 손수 저녁밥 짓는 것도 모자라 수저까지 챙겨 받치고 그래 쌌습니까? 그리고 며느리 치마는 또 뭔 말입니까? 며느리가 시어미 옷을 지어 받친다는 소리는 들어도 시어머니가 며느리 옷을 지어 받친다는 소리는 대갈빡에 털 나고 듣는 게 첨이네요! 당체 이런 경우 없는 법은 어느 나라 법입니까? 가만히 보자 하니까 도대체 위아래가 없어...! 집이 흥하려면 여자가 잘 들어야 하는데 집구석 돌아가는 꼬락서니 하고는”하더니 숟가락을 들어 상위에다가 ‘땅땅’내려친다. 졸지에 공매를 맞은 개다리둘레상이 억울하다는 듯 떨그럭거린다. 수류탄을 품어 터진 방공호의 지붕처럼 들썩거린다. 그때 아들이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던 시어머니가 붉으락푸르락 얼굴 가득 노기를 품더니
“그래 야~ 이놈아! 멀쩡한 개다리상이 너 보고 뭐라 카드나! 왜 가만있는 밥상은 왜 두드려 패고 지랄이고! 아직 그 못난 손버릇은 여전하냐! 제발 좀 그 손찌검하는 버릇 좀 고쳐라! 이 에미 죽기 전에 소원으로 부탁하마! 그리고 살림살이가 니 댁만 한 여자가 또 어디 있는 줄 아니! 저 바뿌제만 해도 그렇다. 이 집 저 집 다니며 얻은 헝겊쪼가리를 덧대 만든 것만 보아도 얼마나 야무지게 살림을 꾸리 노! 내사 마! 자~ 살림살이보고 인자 눈을 감아도 안심이다. 그래 내 하도 이뼈, 딸처럼 여겨 치마하나 지어주고 싶어 그런다. 별걸 다 꼬투리를 잡고는 난리고, 누가 네놈보고 바느질 하라 까더냐! 그리고 못난 사네자슥이 밖에서는 입도 뻥긋 못하는 것이 집구석에만 들면 지 댁만 이 잡듯 한다더라! 내 배속으로 내지르고 미역국을 먹었다 만은 정말 못났다. 질레 그래 싸면 나중에 크게 후회한다. 땅을 치고 후회할 기라! 그리고 이눔아! 내 며느리 내가 좀 아끼고 감싸고돌았다. 그~기 뭐가 그렇게 잘못 됐나! 새아가는 네 놈의 마누라이자 내 며느리기도 하다. 나아가 우리 집을 든든하게 떠받히는 대들보란 말이다. 네 깐 놈이 언제 어미라고 그렇게 알뜰살뜰 생각했다고! 복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줄도 모르면서! 그리고 때가 좀 늦으면 또 뭐가 어때서 그러냐! 너만 늦은 저녁이가! 명색이 집안 어른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는데 지 혼자 늦은 양 앙앙불락 지랄이 지랄이고! 배가 불러 터졌으며 숟가락 놓고 냉큼 나가라!”하며 울대에 시퍼렇게 핏줄을 세운다. 그래도 분이 덜 풀리는지
“야 이늠의 자슥아 네 댁을 네가 금 쪽같이 여겨야 남들도 금 쪽으로 여기지! 네가 네 댁을 걸레쪼가리로 취급하니까 동네 삼척동자도 걸레쪼가리로 여겨 함부로 막 대하질 않느냐! 니는 니 댁이 밖에서 그런 취급을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나! 나는 분해 죽겠다. 이기다 못난 이 어미의 업보이기도 하다만서도...! 이 날수록 내가 왜 그렇게 청맹과니처럼, 바보빙신처럼 살았는가 모르겠다. 내 그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다. 생각할수록 후회막급이다. 그리고 네 마누라가 집에서 놀기는 뭘 탱자~ 탱자 논다고 그러나!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틈틈이 논과 밭으로, 시어미 비위 맞추랴 몸이 둘이라도 모자랑 지경이다. 뭘 제대로 알기나 알고 쳐 죽기는 게냐! 그러니까 너도 이제부터는 네 댁 보기를 꽃을 본 듯 아끼고 보듬고 살아라! 팔불출 소리를 좀 들으면 어떠냐! 니 댁만큼 음전한 여자가 어디 있다고...!”하며 상 밑으로 손을 뻗어서 손등을 쓰다듬는다.
두서 있는 말이든 두서없는 말인가는 중요치 않았다. 김천댁이 생각할 때 시어머니의 일장연설은 몇날 며칠을 두고 고민에 고민을 하고 다듬은 흔적이 다분해 보였다. 그간의 모든 정황을 마음에 새겨 바짝 독이 오른 독사처럼 노려보다가 오늘 저녁을 D-day로 잡은 모양이다. 시어머니의 그 한방에 집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평소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속을 뒤집어 놓던 남편도 수저를 놀리는 모습이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또 한편으로는 그간의 주사와 손찌검을 생각할 때 깨소금 맛이다 싶었고 이쯤에서 그친 것이 아쉽기만 했다. 더 혼이 났으면 싶었다. 덩달아 아들조차 밥이고 반찬이고 줄줄 흘리던 전날과는 딴판으로 흘린 밥을 손으로 주워 입안에 구겨넣는다. 전연 뜻밖의 행동이다. 흘리지 마라 주워 먹으라고 해도 꿩을 구워 먹은 도둑놈처럼 입을 다물던 녀석 답지 않다. 할머니 꾸중 한 번에 옴팍 철이 들었는가 싶었다. 대견한 중에 아직은 응석받이로 어미 품에서 어리광을 부릴 나인데 벌써 애늙은이가 된 듯싶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