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斷腸)이란 이럴 두고 한 말인가?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절구 공이처럼 가슴을 짓이긴다
그로부터 5개월 뒤 김천댁은 때 아닌 입덧을 시작으로 임신 사실을 알았다. 다 늙은 게 이 무슨 주책이냐며 남 보기 남세스럽게 망신살이 뻗쳤다는 말을 입에 달았지만 불러오는 배를 손으로 쓰다듬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입 꼬리가 귀에 걸렸다. 어제가 오늘일까? 오늘이 내일같이 산일까? 8개월을 하루같이 줄기차게 기다리던 끝에 김천양반은 대문을 가로질러 금줄을 친다. 열에 일여덟은 천시하고 괄시하는 딸이건만 김천양반은 기다리고 가다리던 여식이라 그런지 함지박만큼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질줄 모른다. 실성한 사람처럼 시도 때도 없이 ‘허허’거리는 김천양반은 이제야 우리 집에도 살림 밑천이 태어났다며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단다. 살림살이야 어찌 되었던 늦둥이를 안겨준 김천댁이 고맙고 예뻐 덜렁 엎고는 둥개둥개 동네를 두서너 바퀴 돌고 싶은 심정이란다.
“이보게 임자 고생했네! 고맙네!”하고 김천댁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김천양반은 날아갈 듯 들뜨는 기분을 어찌 혼자만 누릴까? 그동안 짠돌이로 동네에 자자했지만 이날을 계기로 거추장한 도포를 벗어던지듯 훌훌 벗는다.
“돈은 이럴 때 쓰리고 버는 거여!”하고는 밤손님의 손을 탈까? 무처럼 바람이라도 들까? 전전긍긍 허리춤에 꽁꽁 싸 묶었던 전대를 아낌없이 풀어 동동주에 파전을 사고는 앞 적삼이 흠뻑 젖도록 통쾌하게 취한다. 흥건하게 취기가 오를 즈음 갈지자로 휘청휘청 집으로 온 김천양반이 사랑방에 들어 지푸라기를 간추려 새끼를 꼰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인양 비비적거려 새끼를 꼰다. 그날로 외로 꼰 새끼줄에 청솔가지와 숯이 꽂혔다.
삼칠(21일)이 지나 이웃이 찾아들어 태몽을 묻자 그새 부기가 빠지고 살비듬 뽀얗게 살이 오른 김천댁은 희멀겋게 웃으며
“이게 다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점지해 준 정성이네요! 며느리가 외로울까봐 보네 준 선물 같아요! 어머님이 유언인양 내생에는 당신이 딸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더니 빼다 박은 것 같아요!”하고 침을 튀긴 뒤 비몽사몽, 새벽녘 꿈길에 어느 아름다운 화원에서 만난 시어머니가 고르고 골라 따주는 딸기 하나를 먹었다고 했다. 허벅지게 빨간 것이 설탕 같았다며 입맛을 다시더니, 꿈을 생각하자 단번에 고추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동네보기 창피해 아무도 모르게 간장병을 통째로 먹을까도 했지만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떠올라 그럴 수는 없었다고 했다. 헌데 저 양반이 저리 좋아할 줄 몰랐다면 묻힌 김에 하나 더 낳을까 싶다며 배시시 웃었다.
혼기를 한참이나 놓쳐버린 아들만의 일이라며 그나마 다행이다. 시집장가가 당사자들 어디 둘만의 일이던가? 혼사에는 으레 양가의 조건이 따른다. 할머니는 그 조건을 생각할 때 그저 한숨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 자신은 동네 사람들부터 철저히 따돌림을 당해 말 한마디 붙일 곳 없는 외톨이 신세다. 게다가 손아래 시누이는 언제 죽을지도 모를 만큼 골골거리는 중환자다. 돌아버린 여자나 골이 비지 않고는 시집을 올 여자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구절양장이 죄다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단장(斷腸)이란 이럴 두고 한 말이가? 옛날 어느 어미원숭이는 잡혀가는 새끼를 따라 백리 길을 달린 끝에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죽었다질 않는가? 그 미물과 인간이라 추켜세우는 내가 무엇이 다를까?
당장이라도 짝을 찾아 작수성례라도 올려주고 싶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처자가 있은들 무엇 하나! 돈이 있어 척척 매파를 놓을 수가 있나!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이렇게 절차가가 많고 까다로울까? 어떻게 보면 미물인 원숭이가 부러웠다. 마음에 드는 짝만 만다면 어제고 같이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원숭이였다면 벌써 짝을 찾았겠지 하는 할머니는 어쩌다 초례청에 마주서서 행복해하는 신랑신부의 모습을 보면 아닌 게 아니라 곁으로는 좋다고 박수쳐서 웃지만 속으로는 울었다. 왜? 내 아들만 저 자리에 사관대모를 눌려 쓰고 서질 못할까? 왜?
“며느리 자리가 허벅지게 웃는 모습이 영판 첫딸입니다”하는 우스갯소리를 왜 나만 못 들을까? 나도 장성한 아들을 둔 어민데! 나도 사지육신이 멀쩡한 아들이 있는데...!
이미 아버지도 뒤웅박 같은 처지를 알아 체념을 한 듯 일에만 미쳐 사는 것만 같다. 오로지 집과 논밭만 오가며 홀로 늙어간다. 할머니는 그런 아들을 볼 면목이 없다. 하지만 할머니도 나약한 인간이기에 속으로는 나름대로 욕심을 있어 남자나 여자나 얼굴이 반반하면 언제고 꼭 한번은 인물값 한다고 속 썩일 일을 만들 거야! 그렇지! 나는 얼굴이 반지르르한 며느리보다는 그저 수더분한 며느리가 좋아! 손자손주야 삼신할미가 점지해주면 고맙고 그마져도 늙은이의 욕심이라면...! 아니지 밟고 밟아도 되살아나는 우리네 같은 잡초들의 삶에는 원치 않은 애들조차 흔해서 앵앵거리는 게 줄줄이 사탕이지! 그렇지만 또 없으면 어때 우리끼리 그냥 저냥 살면 되지! 그렇더라도 딸처럼 여겨 오순도순 의지하며 살 거야! 둘만의 보금자리에 비단금침이 좋기는 하겠지만 깨만 쏟아진다면 무명이불도 상관없겠지! 그 다음은? 그렇지 남들은 하나같이 뼈대를 들먹거리지! 우리 집안이라고 그만한 뼈대 하나 쯤 없을까? 윗대 조상을 거슬러 정5품 벼슬을 지낸 어른이 있었다지만 지금의 처지에 그걸 따져서 무얼 할까? 할머니는 빌어먹는 처지에 뼈대를 들먹인 다는 것은 맑은 날 우장을 둘러치는 것 만치 어리석다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보면 남들이 일일이 따지는 뼈대란 것도 할머니에게 있어서는 그저 몸만 튼튼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 저 끝순이처럼 천형만 없으면...! 문둥병만 아니면...! 그것만 아니면 내사 마! 되는 기라! 사람만 튼실하고 진실하다면 아무래도 좋은 기라! 기왕에 없이 사는 살림살이에 밥상에 수저만 한 벌 더 얹고 말면 되는 기라! 땟거리가 떨어져 굶을 때면 같이 굶고, 나물죽을 먹을 때면 같이 나물죽을 먹고, 밥을 먹을 때면 같이 밥을 먹고, 콩 한 쪽도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며 그리 살면 되는 기라! 남들이 흔히 말하는 이목구비 멀쩡하고 치마만 두르면 되는 기라! 내 집에서 나와 더불어 그렇게 같이 살 두리뭉실한 처자가 왔으면 좋으련만!”하고 중얼거린 할머니는 그 소박한 꿈조차 분에 넘친다고 여겨 고개를 가로 젓는다. 모든 것이 부질없다 여긴 모양이었다. 단지 동네 사람들이 온통 모여서 난장이 서는 듯 왁자지껄 부쳐 먹던 배추 적이 생각나는지 빈 입을 다시며 옛 기억을 재차 더듬기 시작한다.
지난 기억은 늘 아름다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잊어버리자, 지우개로 지우듯 말끔히 지워보고자 머리를 흔들어도 갯바위에 집을 튼 따개비처럼 정이 들어간 수제비가, 바소쿠리 벌어지듯 함박웃음이 들어간 배추전이 눈앞으로 사진을 박는다. 손이란 손을 죄다 내밀어 넘겨다보며 못 생겼다고 흉을 보던 때가 흡사 어제일 같다.
여전히 바람결에 풀풀 날리는 빗방울은 그날처럼 청승맞게 추적거린다. 낡아빠진 흑백의 무성영화 필름처럼, 등사판을 어지럽게 지나간 철필자국처럼 화면가득 굵고 가는 줄로 제 멋에 겨워 허옇게 번쩍인다. 부질없이 마당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절구 공이처럼 가슴을 짓이긴다. 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양손으로 앙가슴을 쥐어뜯는다.
그러기를 한참이나, 초점을 잃은 할머니의 두 눈은 이웃집 굴뚝 위로 뭉글뭉글 머리를 푸는 연기를 날이 저문 줄도 모르고 바라보고 앉았다. 시나브로 구수하게 보리쌀 익어가는 냄새가 풍기자 반찬은 무얼까 하는 궁금증이 더해간다. 이런저런 말소리가 성근 바자를 넘어 두런두런 들려오자 머리를 비워 고갈시킨다. 어느 순간 ‘응애응애’하고 울어대는 애기 울음소리가 들리자 할머니는
“저게 영천댁 얼라 울음소리제! 영천댁을 무얼 한다고...! 얼라가 배가 고픈 모양인데...! 허옇게 불거진 젖통을 아꼈다 어디에다 쓸라꼬? 한통 두통 듬뿍 물리지 않고...! 듣기는 소문에 고추를 달았다 그랬지! 어~ 버~버! 아! 바~바 옹알옹알 아비어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는 방그레 웃을 땐 아닌 게 아니라 간장이 사르르 녹아지지! 지금이 한창 귀엽고 이쁠 땐데!”하고 중얼거리는 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고 싶은 마음이 하늘을 가득 메운 뭉게구름만 같다. 하지만 그건 그저 할머니의 마음뿐이었다. 구겨진 휴지조각처럼 내팽개쳐진 할머니가 딱히 할 일은 없었다. 애당초 먹을 것이 아니라며 고사떡 한쪽을 떼어 ‘고시레’하고 들판 한쪽 구석진 곳으로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떡 쪼가리만 같다. 그런 할머니 눈에 우직하면서 다정다감한 파파머리의 어느 늙은이가 생시처럼 떠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