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중반전, 말씀과 함께하며 9편의 묵상집 펴내
그가 살아갈 인생 후반전 기대
박용복 작가(62)의 인생은 재미있다. 대학에서 공업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환경공학을 연구한 그는, 1984년 콘택트렌즈 개발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콘택트렌즈 연구와 새 제품 개발에 몰두하며, 그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콘택트렌즈에 관한 대학 교재도 펴내고, 여러 가지 특허도 받았다. 한 군데 몰입하면 자리를 뜨지 못하는 성향 탓에 실험에 빠져 쉼 없이 공부하고,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의 이런 특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아내는 묵묵히 조력자이자 동반자로, 그가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 두 분은 어떻게 만나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글’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대학 3학년인 1980년, 당시 유명한 ‘샘터’라는 잡지 특집호에 기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할미꽃’이라는 글인데요. 저를 ‘대통령’이라 부르던 할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단순하게 할머니에 얽힌 사랑과 추억을 표현했는데, 그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잔잔하게 쓴 글이 그토록 많은 인기를 얻으리라 상상도 못 했지요. 샘터에 글이 실린 뒤로, 편지를 4백 통이나 받았습니다. 전국에서 여학생들이 글을 보내왔습니다. 그때 아내도 편지를 보냈습니다. 정갈하게 쓴 편지에, 글도 저보다 훨씬 잘 썼습니다. 마음이 끌렸지요. 연락했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경상도 남자와 서울 여자. 마치 소설의 한 장면 같은 이야기지요.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만나다, 시간이 나지 않을 때는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만나기도 했습니다. 제 순수한 열정을 아낌없이 퍼부으며, 아내에게 매달렸습니다. 5년 열애 끝에 대학원을 졸업하던 해, 결혼했습니다. 아내는 변함없이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저를 지탱하게 해줍니다. 성경 묵상집을 내게 된 것도 아내의 영향입니다.
박용복 작가의 심연을 흔든 아내, 조현숙 권사
- 어떤 일이 있었나요?
▶ 아내가 성경 필사를 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경을 읽고 쓰는 모습을 보며 감동했습니다. 아내처럼 글씨도 예쁘지 않고, 또 글씨를 쓰는 걸 힘들어하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묵상이었습니다. 성경 묵상을 교회 밴드에 틈틈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이 읽고 댓글로 응원도 해 주셨습니다. 작가이면서 출판업을 하는 딸이 보고, 묵상집을 내보라고 권했습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습니다. 내가 쓴 글이 세상에 나온다는 일이 두려웠습니다. 책임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자식들의 권유로 용기를 냈습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은 하나님께 맡기자고 생각했습니다. 창세기에서 시편까지 전자책으로 나왔습니다. 매달 수입은 10만~15만 원 정도지만 나의 묵상을 통해 누군가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면,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행복입니다. 성경은 나를 도구로 쓰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경제 개념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값으로 매기지 못할 만큼, 이미 넘치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지금 계획은 요한계시록까지 전자책으로 발간하는 것입니다. 아마 내년 말쯤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미 초고는 완성했습니다. 얼마 전에 요한계시록의 초고를 다니는 교회에 담임목사님과 부목사님께 보여드리고 감수 요청을 했습니다. 저와 동갑인 담임목사님은 오히려 “대단합니다, 이 어려운 작업을 어떻게 해내셨어요?”라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여성인 부목사님은 특유의 꼼꼼함으로 글을 세심하게 교정해 주셨습니다. 사실 글쓰기는 아내가 좋아하고 재능도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맞춤법 교정은 아내의 몫입니다. 딸인 늘리혜 작가는 글을 다듬고 정리해 줍니다.
- ‘오늘도 말씀과 함께’를 아홉 번째 펴냈습니다.
▶ ‘묵상 나누기’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묵상하며, 내가 받은 느낌과 나의 솔직한 마음을 담아 간결하게 핵심적 내용만 전달하려 애씁니다. 전체를 알아야 부분을 살필 수 있기에, 늘 머리맡에 성경을 두고 내 삶을 가로지르는 말씀의 의미를 새기려 애씁니다. 새벽에 일어나 성경 묵상으로 하루를 열면서 글을 씁니다. 제 이름 박용복을 필명으로 ‘박축복’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시간이 제게 축복입니다.
벽에 걸린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이자,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저는 ‘축복’도 좋지만, ‘고통’ ‘심판’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저를 겸손하게 합니다.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합니다. 매일 새벽 묵상 글을 쓰고 다듬으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합니다. 저를 깨어있게 하는 힘은 ‘말씀’입니다.
종손으로 할머니의 극진한 사랑 속에 성장
- 어린 시절에도 글쓰기를 좋아하셨나요?
▶ 저는 성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농사일하는 소박한 분 이였습니다. 집안의 종손이라 기대도 크고 혼도 많이 났지만, 어린 시절 저는 천방지축 장난기 많은 개구쟁이였습니다. 친구와 어울려 수박 서리, 참외 서리에만 정신이 팔렸었지요. 서리에도 나름의 불문율이 있어, 남의 집 서리를 할 때는 꼭 그 집 자식이 함께했습니다. 특히 여자애들이 있을 때는 괜히 으스대고 싶은 마음에 만용을 부리기도 했지요. 지금도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캄캄한 밤에 수박 서리를 하러 갔습니다. 셔츠를 걷어 올려 수박을 넣고 나오려는 찰나, 동네 할아버지의 고함이 들렸습니다. 다들 줄행랑을 치는데, 저만 도랑에 빠져 걸리고 말았지요. 밤새 할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며 매를 맞던 기억이 납니다. 여름에는 과일 서리 겨울에는 김장 서리로, 간간이 닭서리도 하고. 어린 시절은 그 기억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장인어른은 황해도 이북 출신입니다. 장모님은 서울 사람이고요. 선비 집안인 탓에 결혼 전에 장인이 ‘옥불탁불성기(玉不琢不成器)’의 여섯 글자를 붓글씨로 써 선물했습니다. ‘제아무리 옥이라 해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다.’ 그 정신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갑니다. 노력해야 결실을 거둘 수 있음을.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다 해도, 갈고닦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음을 기억합니다.
기쁨이자 자랑인 아들· 딸
- 자녀를 키우면서 특별하게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는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처럼 학원에 보낸 적도 없습니다. 머리보다 먼저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꿈을 응원하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아들은 휴대폰 사업을 합니다. 전라도 여행을 가서, 조선대에 유학 와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지금의 며느리를 만났습니다. 유학생 신분이라 일하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도움을 청할 데가 없어 힘들어하는 걸 보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신뢰가 사랑으로, 인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며느리는 베트남인입니다. 아주 똑똑하고 멋지고 생활력도 강합니다. 맛있는 게 있으면 꼭 집으로 들고 와서, 아무도 없으면 냉장고에 넣어놓고 갑니다. ‘맛집’을 찾으면 같이 가자고 연락이 옵니다. 그렇게 정도 많고, 우리 내외에게 살갑게 굽니다. 베트남에 있는 사돈 댁에서도 오징어며 과일을 보내줍니다. 참 감사하지요.
딸인 늘리혜는 어릴 때 피아노를 가르쳤어요. 은근히 음악을 하기를 바랐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에, 글을 쓰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전국 백일장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길을 찾아갔습니다. 경북대학교 총장상도 받고, 대학은 서울에 있는 ‘문예창작과’로 진학해서 철학을 복수 전공했습니다. 대학 입학 후, 고시원비와 겨우 생활할 수 있는 비용만 보냈습니다. 용돈을 준 적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딸이 아르바이트하고 용돈을 벌면, 부모님 쓰시라고 돈을 보내곤 했습니다. 지금도 융자를 보태 집을 장만하고, 열심히 글도 쓰고 일도 하며 살아갑니다. 대견하지요. 제 전자책도 출판해 주고 있는데, 딸인 늘리혜 대표가 갑이지요. 요구 사항을 얘기하면, 저는 다소곳이 따라야 합니다. 학원도 보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잘 자라 가정을 꾸리는 아들· 딸을 보며, 모든 부모가 그렇듯 큰 기쁨을 느낍니다. 저희에게는 기쁨이자 자랑이지요.
모든 것, 그분께
박용복 작가에게 묵상집을 완간하고 난 뒤에 계획을 물었다. 큰 웃음 뒤에 그가 말했다. 부족한 사람을 이렇게 써 주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지 않겠느냐고. 이만큼 온 것만 해도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다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맡기고 따르는 그의 삶은 그 누구보다 풍족하다. 넉넉하고 환한 그의 웃음에서 영혼이 부유한 사람의 모습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