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35)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35)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10.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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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누마루 밑에 자리 잡은 커다란 가마솥이었다
애당초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으로 결과는 명징했다
그가 사기도박을 했다는 것이 참이자 진실이 되어버렸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그 사이 할머니는 감골댁의 앞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앞마당에는 지난 세월의 지친 때를 흠뻑 뒤집어 쓴 거무튀튀한 멍석이 깔려 있었다. 이집을 내가 어제 어느 때 왔던고? 거의 모든 사물이 기시감으로 눈에 가득했지만 그간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세월 때문일까? 사물 하나하나가 새롭게만 여겨진 할머니의 눈은 무얼 찾듯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할머니의 눈길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사랑방 쪽으로 향했다. 그 눈길 끝에는 늘 마음속에 간직하여 그려오던 아담한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 봐도 부럽고 정겨운 풍경의 누마루다. 눈높이만큼 올라앉은 누마루, 여름철이면 땀을 식히는 장소로 안성맞춤이고, 명절을 때면 동네 사람들마다 올라앉아 자라목처럼, 사슴목처럼 목을 길게 늘려 내려다보는 신작로엔 어느 집으로 누가 오는가? 하고 살펴보는 데는 이만한 장소도 드물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할머니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누마루 밑에 자리 잡은 커다란 가마솥이었다. 때마침 태양빛이 사그라지는 저녁시간대인지라 아궁이에는 작장불이 잦아들어 잉걸불로 화해 일렁거리는 중에 솥뚜껑을 헤집어 김이 새어난다. ‘뿌~우 뿌~우’하는 울음을 내지르며 솥뚜껑을 새어난 새하얀 김은 누마루 밑으로 머리를 풀어가며 옹골차게 오르고 있었다. 소죽이 농익어가는 모양으로 작두로 잘게 썬 소꼴이 익어가는 냄새가 코끝을 감돌아 구수하다.

농익은 풀냄새가 할머니의 코에 감돌자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불쑥 일어 가슴이 아려왔다. 어느 때 할머니도 집에서 소를 먹인 적이 있었다. 비록 송아지를 얻기 위한 배냇소일망정 내 집 소 인양 정성으로 키웠다. 살림 밑천을 장만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배냇소주인에게 감사한 탓에 진정으로 애면글면 키웠다. 하지만 성심으로 하는 일에도 마가 끼는 경우가 더러 있는 모양이다.

기대에 부흥하듯 임신한 배냇소의 배가 슬슬 불러오던 때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공히 불러오는 배냇소의 배만큼 살림밑천인 송아지가 생긴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희망에 부푼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운이 없으면 사람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경우가 그랬다. 산일을 얼마 앞둔 어느 날 밤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치더니 불문곡직 소를 끌어가 버린다. 뱃속에 든 송아지는 우리 것이라 몸을 풀고 난 후 끌고 가라고 울며불며 매달리고 애원해도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 아들이 노름방을 드나들었던 모양이었다. 골패를 했는지, ‘섯다’를 했는지 그도 아니면 몇 날 밤을 뜬눈으로 지새가며 ‘집구-땡’을 했는지 오통 빚더미에 올라앉은 격이었다. 본인의 말로는 노름을 일절, 그저 뒷전에서 잔돈푼이나 얻어 걸리는 꽁지(노름판에서 고리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사람)노릇만 하려 했다고 했다. 술값에 보태보고자 두어 푼 구전이나 먹으로 했다고 했다. 헌데 부모가 상당한 재산가란 사실이 사기도박꾼을 꼬이게 만들었다. 똥 무더기를 본 파리 떼처럼 꼬여든 것이다. 코 묻은 엽전일망정 슬슬 구전이나 얻어먹던 그가 꼬드김에 빠져 막상 실전에 들고 보니 신출내기와 다름없었다. 분수를 모르는 그의 판단이 일을 그르친 것이다. 도박이라면 어깨를 넘겨본 것이 전부인 그런 허접한 수준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런 조잡한 실력으로 어떻게 남의 호주머니 속을 넘볼 마음을 먹었을까? 애당초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으로 결과는 명징했다. 그의 무모함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재산을 일구기까지 수 십 년간의 부모의 피땀이 필요했다면 빈털터리로 거리로 쫓겨나는 데는 사나흘 낮밤이면 족했다.

연가시의 홀림에 물을 찾는 범아제비(사마귀)처럼 도박에 정신을 지배당한 그는 밑천이 빈약함을 한으로 여긴 나머지 한탕이라는 기분에 젖어 사랑방을 뒤지는 무모함을 보였다. 돈이 돈을 번다는 꼬임에 빠져들어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서서히 상대방이 쳐 놓은 올가미에 목을 집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제 죽을 자리를 스스로 파는 형국이었다. 이제 상대방은 적절한 시기에 올가미를 조이는 줄을 잡아당기면 되는 것이었다.

한 이틀 간은 간을 보듯 밀고 당겨가며 잃고 따기를 거듭했지만 마지막 날, 그 마지막 날 새벽을 기점으로, 수탉이 홰를 치며 울 때의 딱 한판에 모든 것이 절단 났다. 물이 쓸어 간 듯 깨끗하게 끝났던 것이었다.

평소 부모의 재산을 믿고 눈꼴사납게 거들먹거린 것이 그의 또 다른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주위로부터 신망을 잃은 그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전문도박꾼들은 주변의 친구나 지인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한 통속을 묶었다. 당초 도박꾼들은 어려울 거라 여겼지만 막상 추진을 해보니 생각보다 그 일은 훨씬 쉬웠다. 이는 그가 평소 어떻게 친구나 지인들을 상대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이르러 마지막 판에 그는 풍(장)피 두 장을 잡았다. 그가 꿈에도 그리던 장땡 인 것이다.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최고의 패 장땡, 패를 확인한 그는 이 한판에 모든 것 쏟아 붙기로 마음먹었다. 우려되는 바는 상대방이 중도에 포기해 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의 소원대로 슬슬 판을 키우고 있었다. 드디어 미끼를 물었구나! 얼씨구나! 하는 그는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상대방이 귀엽고 고마워 죽을 지경이었다. 마침내 상대방으로부터 부모님 물래 훔쳐 나온 집문서랑 같이 땅문서가 판에 깔렸다. 눈이 뒤집어 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판이 막바지에 이르러 상대방이 올인 했을 때 그는 모자라는 부분만큼 손목까지 걸었다. 손목, 상대방이 설마 손목까지 잘라버리겠는가? 그것은 일종의 보험이었다. 전 재산이 날아간 뒤 그의 무모한 몸부림을 잠재울 보험의 일종으로 입막음의 한 방편이기도 했다.

계산이 끝나고 상대방도 그도 일시에 패를 깠다. 헌데 둘 다 같은 장땡이다. 패를 보고 흥분하기는 그도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쌍방이 공이 눈이 뒤집어 졌다. 결국 진위 여부가리기로 하고 그 진위에 관심이 집중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뻔했다. 이미 사전에 예행연습까지 마친 사기도박꾼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돈 몇 푼에 매수를 당한 친구와 지인들까지 상대편을 거들어 바람잡이로 나서는 데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어디 한 군데 하소연 할 곳도 없는 그의 행동은 이성을 잃고 있었다. 불 맞은 멧돼지 모양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를 내지르며 길길이 날뛸 뿐이다. 그 상태로는 또렷한 의사표현도 뚜렷한 해답도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다보니 결론이 뻔해서 선을 잡은 그가 사기도박을 했다는 것이 참이자 진실이 되어버렸다.

도박의 초짜가 무슨 사기도박을 알겠는가? 속임수를 알겠는가? 그들의 쳐 놓은 그물망에 완벽하게 걸려든 셈이었다. 게다가 그가 믿었던 친구들과 지인까지 그물을 옥죄어 오는 데는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애당초 화투 패를 잡을 것이 그의 잘못이었다면 철저한 잘못이었다. 손목은 이미 자르기로 한 것으로 당연지사, 이미 사기도박으로 판명이 난 마당에 그 걸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는 것이 사기도박꾼의 주장이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어느 쪽 다리든지 한쪽을 본인이 선택하여 다리 한쪽까지 잘라한다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사기도박꾼들은 이만하면 최대한 아량을 베푸는 것이라며 결정을 재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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