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빈터에 끌려 나온 자전거들 중 고가의 것은 별로 안 보인다. 그렇다고 못 탈 정도로 낡은 것도 없다. 그런데 한달여가 지나도록 찾아가지도 않는다. 중저가 물건은 한두 번 쓰고 팽개치는 풍조가 만연하다는 느낌은 나만의 것일까? 물자 풍요의 일단을 보여주는 씁쓸한 장면이다.

 

1. 아파트 빈 마당의 진풍경

산책하던 중 대곡동 주공 2단지 아파트 공터에 눈이 갔다. 각양각색의 중고 자전거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경비원에게 사유를 물었다. 계단과 통로, 옥외 자전거 보관소에 장기간 방치된 자전거를 일괄 처리하기로 동대표회의에서 의결했단다.

그래서 일단 공터에 모두 내다놓고 필요한 주민은 찾아가라고 안내문을 붙이고 방송도 했단다.

우리 아파트 계단 통로에도 층마다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고가의 자전거도 있지만 중저가도 많다. 어떤 것은 펑크가 난 걸 떼우지 않아서 바퀴가 찌부러져 있고 먼지도 잔뜩 쌓여 있다. 사실은 집 안에 두는 게 맞는데 탈 때의 편의를 생각해서인지 집 안에 두기가 복잡해서인지 계단에 나와 있다.

화재 발생이나 유사시 승강기 운행이 안 되면 주민들이 계단을 이용해서 대피해야 하는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버릴려니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 아깝고 사용하자니 마뜩찮을 테다. 계륵이라고나 할까?

 

2. 물질 풍요의 시대

예전 우리 어릴 때 같으면 녹이 슬고 고장이 나도 고쳐서 타고 다녔다. 그 때는 신기료 장수가 있어 찢어진 고무신과 운동화, 구두를 꿰매 주었다. 살이 부러진 우산을 고쳐준다고 외치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교과서와 참고서도 형이나 누나로부터 물려받았다. 옷은 말할 것도 없다. 떨어지면 기워 입기까지 했다.절약이 미덕이던 시기다.

 

산업 발달과 경제 발전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물자가 풍부해지고 가격도 떨어졌다. 부자만 살 수 있었던 자동차는 집집마다, 그것도 성인 식구 수대로 있다. 우리집은 아내와 내가 선호하는 프로그램이 확연히 달라 채널 선택권을 두고 다투다 아예 방마다 TV를 따로 설치했다.

어떤 의류나 가전제품은 재료비에나 미칠까 싶을 정도의 가격으로도 구입할 수 있다.

사람들은 부담없이 쉽게 구매하여 실증나면 미련없이 버린다. 아파트마다 헌옷 수거함이 있다. 그걸 보니 헌 외제 의류를 수입해다 팔던 구제 의류 판매점이 떠오른다. 동료가 라운딩때 입고나온 유명 외제 골프웨어가 멋있다고 했더니 구제품점에서 싸게 샀다고 해서 달려가 산 적이 있다. 지금은 우리나라 제품이 훨씬 디자인도 예쁘고 품질도 뛰어나다.

 

3. 슬기로운 소비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는 양복이 근무복이니 대체로 유명브랜드 제품, 그에 준하는 의류나 악세사리를 착용했다. 내딴에는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고 했지만 충동적으로 덜렁 샀다가 한두 번 입고는 마음에 들지 않아 쳐박아 두는 일도 없지 않았다.

퇴직하고 나니 소득도 줄어든 데다 정장을 하고 나갈 일도 많지 않다 보니 구매에도 더 신중하게 된다. 공식 행사용 외출을 위한 한두 벌의 의류 외에는 중저가 제품으로 실속있는 물건을 찾는다. 코로나로 인해 손님이 줄어든 백화점에서 철 지난 유명 브랜드 상품을 정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할인하여 득탬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충동 구매에 있다. 싼 가격에 혹해 덜컥 사게 된다. 1+1은 왜 그리 많은지. 하나만 있어도 되는데 끼워 준다. 서너번 사용하고 나면 후줄근해져서 때깔이 나지 않는다. 명품과 같이 있으면 비교가 된다. 점차 멀리하게 되고 급기야는 쳐박히게 된다.

 

우리는 급속한 경제발전의 덕으로 물질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시니어 세대는 어려운 시기를 거쳤다. 물건 귀한 걸 알고 아껴쓰려는 마음이나마 남아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 세대는 귀한 걸 모른다. 흥청망청이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린다. 타이르면 오히려 의아해 한다. 미래 세대가 살아갈 지구촌의 안녕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걸 필요한 만큼만 사고 쓸데 없는 낭비를 줄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 사려는 물건 그거 꼭 필요한 건가요? 적정한 가격인가요? 적정한 수량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