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속의 남자, 윤중리 ‘바람의 둥지’
바람 속의 남자, 윤중리 ‘바람의 둥지’
  • 노정희 기자
  • 승인 2022.01.10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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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바람의 둥지’ 제4회 ‘탄리문학상’ 본상 수상
한 줄기 바람은 사람의 일생, 이 세상은 바람이 잠시 머물고 가는 둥지
윤중리 소설가. 노정희 기자
윤중리 소설가. 노정희 기자

‘어느덧 종심의 세월을 살고 말았다. 과거는 길어졌고 미래는 짧게 남았다. 돌아보니 걸어온 길이 한 자락의 부끄러운 바람이었다. 웃음도 있었고 눈물도 있었다. 그래도 어려움을 이겨내며 나름대로 기도와 노력으로써 의미와 보람을 가꾸고 키워온 세월이었다. 초라하지만 소설을 쓰느라 애를 태웠던 것도 그러한 삶의 한 과정이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글 쓰는 일은 계속하고 싶다. 내 인생의 한 자락, 바람의 흔적….’

중방성당. 노정희 기자
중방성당. 노정희 기자

윤중리(경산 중방동) 소설가를 중방성당에서 만났다. 코로나19가 세상을 흔들기 그 이전에 뵈었던 선생은 상당히 젊은 모습이었다. 저음의 온화한 말씨에서 종교를 믿는 분이 아닐까 했는데, 또 의외로 교직에 몸담았다는 점에서 적잖이 놀랐다. 대개의 교사는 말이 빠르거나 목소리 톤이 높은 편이다.

윤 선생은 예전보다 많이 초췌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다 보니 집안에서 컴퓨터 자판만 두드리고 있었다고 한다. 작년에 ‘오렌지빛 가스등’, 올해에 ‘바람의 둥지’, 두 편의 소설집을 출판한 것이다. 소설의 소재는 친구의 죽음이었다. 전자는 구상해 두었던 것을 엮었고, 후자는 실제 코로나19로 죽음을 맞은 친구를 픽션(fiction)한 것이다.

선생은 눈이 피로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다시 자판을 두드렸다. 손가락 관절에 이상이 왔을 정도로 컴퓨터를 안고 지냈다. 젊은이도 2년 만에 책 두 권 출판하기란 쉽지 않은데 말이다.

선생의 소설 ‘바람의 둥지’가 지난해 11월, ‘탄리문학상’을 받았다.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바람을 보았다고 하는 사람은 실상 바람을 본 것이 아니고 나뭇가지의 흔들림, 출렁이는 물결, 퍼덕이는 깃발, 떠가는 구름을 보았을 뿐이다. 바람은 모양도 없고 빛깔도 없고 냄새도 없다. 그 바람을 보는 것이 혜안이고,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석학이다.’ 선생의 얼굴이 상한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자세는 꼿꼿하고 미소는 맑았다.

제4회 탄리문학상 본상 수상
제4회 탄리문학상 본상 수상

― 장편 소설 ‘바람의 둥지’로 제4회 ‘탄리문학상’ 본상 받으심을 축하드립니다. 탄리문학상에 대해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 한국문인협회 성남지부가 주최하고, 탄리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문학상입니다. 장르와 지역과 관계없이 그해에 발표된 작품 중에서 심사를 거쳐 본상과 우수상 두 부문으로 시상하는데, 지난해는 본상은 나의 장편 소설 ‘바람의 둥지’가, 우수상은 차순자 시인의 시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탄리는 성남시 신흥동의 옛 이름으로 여기에서 한국문협 성남지부와 한국작가협회가 창립되었으며, 문학지 ‘한국작가’가 창간되어서 명실공히 경기문학의 메카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기념하고 경기문학, 나아가서는 한국문학의 발전을 이어가고자 탄리문학상을 제정하고, 지난해 11월에 제4회 시상식을 가졌습니다.

축하꽃바구니
축하꽃바구니

― 독자 관점에서 ‘바람의 둥지’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이 허구라고는 하지만 원래 진실의 토대 위에 짓는 집이라고 보거든요. 김원일 선생의 소설 ‘마당 깊은 집’의 경우도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고 해서 더 정감이 갑니다. 윤 선생님께서는 ‘소설이 본래 작가 삶의 앙금일진대, 그 모든 것은 소설의 소재일 뿐이고, 이 한 권의 이야기는 그냥 소설일 뿐이다’라고 에둘러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딱히 비밀스러운 연애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독자에게 쉽게 풀어서 말씀해 줄 수는 없으신지요?

▶ 소설은 사실을 그대로 쓴 것(non-fiction), 완전히 허구적인 것(fiction), 그 두 가지가 섞인 것(faction)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라도 결국은 작가의 사상과 정서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작가의 삶의 앙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소설 ‘바람의 둥지’는 꼭히 이야기를 하자면 faction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나 자신 삶의 과정에서 겪은 일과 상상을 통한 가상적 이야기가 반반 정도 섞여 있습니다. 이 소설을 ‘자전적’이라는 관형어를 붙여서 부르는 사람은 허구적인 것도 사실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독자의 잘못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한 착시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오히려 충실한 독자로 봐야 할 것입니다.

― 소설에는 코로나19와 정치, 교육, 그리고 종교와 경산 주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주었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주인공 지석의 캐릭터입니다. 저는 주인공이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답답했습니다. 활달한 이시백을 응원했습니다. 소설이 종반부를 달려갈 때에야 지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 속에서 가족을 건사하며 사는 일, 제자의 고충을 들어주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자신을 다스리는 힘은 아마도 종교에서 우러나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종교의 힘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 어쩌면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본질적으로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일지 모릅니다. 교육이란 것 자체가 깊은 바다 같아서 표면만 보일 뿐 깊은 곳의 모습을 알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다른 영역도 비슷할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갈등은 언제나 존재하죠. 그런 갈등을 통해서 교육은 변증법적으로 발전해 갈 것입니다. 어느 평론가가 나의 문학을 ‘교육과 종교(신앙)라는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은 상당이 정확한 시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신앙)의 근본적인 모습이 무엇입니까? 미물인 인간이 어떻게 하면 옳고 바르고 가치 있게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자의 뜻에 귀 기울여야 하고, 종교(신앙)에 침잠하는 교사의 모습은 바로 그런 삶에의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자세히 보면 보이기도 하는) 무한한 힘으로 우리를 이끄는 존재. 거기에 대한 믿음은 항시 나를 궤도이탈이 없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 선생님은 흥사단 대구·경북지부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책 내용에서도 도산 선생과 흥사단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흥사단에 대한 소개와 흥사단에서 어떤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 흥사단(興士團)은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1913년에 미국 LA에서 만든 단체입니다. 일제 강점기였으므로 ‘독립할 만한 힘을 길러’ 조국의 독립을 이루고, ‘민족 전도 대업의 기초’를 수립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광복 후에 본부를 국내로 옮겨왔고, 서울에 본부가 있고, 전국 곳곳에 지부를 두고 있죠. 무실, 역행, 충의, 용감의 4대 정신을 바탕으로 나라 발전을 위해 일하는 일꾼들을 양성해 내고, 그런 활동에 참여하자는 시민운동이죠. 하는 일을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지금 주력하고 있는 운동은 ‘민족 통일 운동’, ‘교육 운동’, ‘청렴 사회 운동’ 등입니다. 대구·경북지부는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있고, 뜻 있는 분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동참할 수 있습니다.(전화 053-754-3415)

― ‘바람의 둥지’, 선생님이 생각하는 ‘바람’과 ‘그 둥지’는 어떻게 이해하면 될는지요?

▶ 흔히 하는 얘기대로 이 세상은 ‘바람이 잠시 머물다 가는 둥지’라고 본 것이지요. 차이가 있다면 바람을 ‘허무’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이 세상 창조주 하느님의 뜻이 담겨있다고 본 것이지요. 티끌 같은 인간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이 창조하신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의미와 역할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갖고 노력하며 살아야 사람 사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지요.

― 선생님은 지금 퍼펙트 시니어 십니다.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그동안 많은 저서를 발표하셨는데,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다루실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불린 지가 벌써 반세기입니다. 문학 분야에서 여러 가지 활동도 했고, 글도 내 나름대로 열심히 썼습니다. 단편 소설집 5권, 장편 소설 한 권, 산문집이 세 권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내게 시간이 더 주어지고 건강이 허락된다면 글쓰기는 계속해야 하겠지요. 앞에서 얘기했듯이,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이 인간을 하느님은 왜 이 세상에다 보내셨을까? 보내신 뜻이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옳고 바르게, 보람 있고, 가치 있고, 아름답게 사는 것일까? 그런 문제가 되지 싶네요.

2년 사이에 낸 두 권의 소설.
2년 사이에 낸 두 권의 소설.

 

윤중리 선생은 대구소설가협회 회장, 대구문인협회 소설분과위원장, 흥사단 대구·경북지부장을 역임했고, 대구문학상, 대구예술상, 탄리문학상, 녹조 근정훈장을 받았다. 현재 담수회(淡水會)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소설집 ‘페스탈로찌 선생’, ‘유폐와 보석’, ‘내일은 너’, ‘칼과 장미’, ‘오렌지빛 가스등’, ‘바람의 둥지’가 있으며, 산문집 ‘선생님의 편지’. ‘살며, 천천히’, ‘조금 더 높은 곳에서’를 펴냈다.

윤 선생은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했다. 흥사단 소속으로 밤새워가며 주요한, 안병욱 선생의 가르침을 듣고 아침에 바로 학교로 등교했던 시절을 즐거이 말씀하셨다. 어느 시인이 자신을 키워준 것은 팔 할의 바람이라고 했듯이, 선생을 키워준 팔 할은 흥사단이었다.

사람살이는 사건의 연속이다. 그것을 모아놓은 것이 소설이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소설 한 권은 거뜬하게 쓸 수 있다고 하지만,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

선생의 언어는 바람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그의 종교와 교육, 살아온 시간이 바람이었다. ‘사람의 일생도 한 줄기 바람이고, 이 세상은 바람이 잠시 머물고 가는 둥지이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요한 3.8)

작가는 바람 속으로 걸어갔다. 노정희 기자
작가는 바람 속으로 걸어갔다. 노정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