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들었던 다듬이 방망이 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정겹게 들렸다. 요즈음은 민속촌 체험 학습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토담 넘어 들리는 소리가 층간 소음으로 이웃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하루의 일상을 알려준다. 다듬이질에는 이해와 사랑이 묻어났다.
손빨래한 옷감을 방망이로 두들겨 주름을 펴고나면 부드러운 옛 아낙네의 맵시가 살아난다. 다듬이질한 옷감은 올 사이가 촘촘하고 고르게 펴지기 때문에 구김이 없어진다. 광택이 흐르고 틈이 메워져 따뜻한 느낌이 든다. 우리 선조들이 겨울에도 두꺼운 바지저고리를 입지 않고도 추위를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다듬이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풀을 먹인 옷감에 풀기가 골고루 번지도록 방망이로 두들기면, 옷감에 안정감이 들고 자연의 미(美)가 되살아난다. 우리 조상들은 면 빨래를 많이 입어서인지 피부병이 없었던 것 같다. 하얗게 핀 목화송이가 장관을 이루던 것이 아름다운 꽃잎뿐만 아니라, 옷감까지 선물을 해 주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명주, 무명, 광목, 삼베, 모시 등의 식물성 섬유에 풀을 먹여서 방망이질하면 효과가 탁월하다. 조상들이 다듬이질을 시작한 까닭은 나일론이나 합성섬유가 아닌 식물성 옷감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은 불편하고 과정이 번거로울지 모르지만 그만큼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었다.
올해 결혼 72주년을 맞이하는 김상분(91, 달서구 이곡동) 씨는 “엄동설한에 꽃가마를 타고 시집 올 때 가져온, 한산모시 바지저고리를 가보(家寶)로 생각하면서 가끔 다듬이질을 한다”고 말했다. “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너무 생각나서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다듬이질은 시작이요, 마무리를 준비하는 아름다운 인생의 열쇠”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다듬이질하는 것을 보면서 옛 향기가 세월 속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 같다. 음표 없는 장단이지만 어느 화음보다 조화로운 다듬이질의 우아한 소리는, 마음의 위안을 주니 자연의 소리는 역시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 같다. 옛 아낙네들이 봉창에 밀려오는 달빛을 벗 삼아 먼 길 떠난 남편을 기다리면서, 외로움을 달래며 두들기던 생각이 마음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