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8)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8)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1.2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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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아예 팔짱을 껴서 잡아끈다
소박맞기 싫고 첩상이(‘첩’의 방언)를 들이지 않으려면 방정맞은 그놈의 주디(‘주둥이’의 방언)나 쳐 닫아라
산 그림자가 ‘뭐에 부끄러워!’커튼을 내리는 듯 스르르 드리운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그만치 할머니는 자신이 지닌 재주를 하찮게 보고 있었다. 이는 임상실험 같은 경험치가 없다 보니 오히려 당연했다. 그런 까닭에 한없이 작아만 지는 할머니다. 수박 겉핥기 같은 미미한 재주로 죽어가는 아이를 어떻게 살린단 말인가? 반문하는 할머니는 오진 등으로 자신이 감당해야할 손가락질 따위야 재주도 없이 나선 죄라 곱다시 감당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쭙잖은 인간의 만용으로 인해 졸지에 이승의 끈을 놓아버린 그 가련한 죽음은 어쩌란 말인가? 그 무엇으로도 보상이 불가능이라 할머니는 나설 수 없다 하여 엉덩이를 뒤로 빼는 것은 오히려 당연했다. 게다가 아기는 금방 죽어간다고 하질 않는가? 곧장 숨이 넘어가는 아기를 화타나 편작도 아닌 바에야 무슨 수로 살린단 말인가? 현실 도피를 꿈꾸는 할머니는 나중은 나중 일이고 도살장 입구서 앞발로 줄 창 뻗대는 소가 되고 싶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찾고 싶고, 숨을 곳만 있다면 머리카락을 꼭꼭 말아서 숨고 싶은 것이 할머니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런 할머니의 절박한 심정을 모르는 감골댁은 마냥 꾸물거리는 할머니를 보건데 까닭 없이 꾸물거린다 싶어 속에서 천불이 일고 안달이나 성화가 대단하다.

“하이고 성~님! 바쁘다 칸께 와 이 카십니까? 와~ 이 캐 꾸물딱 거리십니까? 선이고 후고, 약재고 뭐고 간에 그냥 몸띠만 갑시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 성~님! 몸 띠만 가시면 됩니다. 설령 치료가 잘못 되어 영천댁 얼라가 살을 맞은 듯 죽어 자빠진다 해도 성님을 탓할 사람은 이 동네엔 아무도 없어라! 방정맞은 여시모양 콩닥콩닥 입방아를 찧을 여편네는 더 이상 동네에 없어라! 한께 어~여 가기나 하소!”하며 답답하다는 듯 발을 굴리다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아예 팔짱을 껴서 잡아끈다.

“와~ 이카 노! 나보고 어쩌라꼬 이카 노! 참말로 별 일 일쎄!”하고 투덜거리는 할머니는 감골댁의 불같은 성화에 못이기는 척 오른팔을 내 맡겨 엉거주춤하게 삽짝을 나선다. 그리고는 곧장 엎어지면 코 닿을 듯 지척의 영천댁 앞마당으로 들어서서 주위를 살피는데 사지를 늘어뜨린 아이를 안은 영천댁은 혼이 빠져나간 듯 넋을 놓아 덕석에 앉아있다. 그때 아기는 영천댁의 팔목에 목을 걸쳐 머리를 뒤로 젖혀 늘어뜨리고 있다. 그 옆으로 앉은 시어머니는 그나마 제 정신이 붙어 있는 듯 삽짝을 들어서는 감골댁과 할머니를 향해 왜 이제야 오느냐고 원망이 가득 찬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또 그 옆으로 앉은 영천양반은 청천하늘에서 떨어지는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 허황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대로 금쪽같은 내 아기가 부질없이 죽어 나갈 수는 없다 여기고 있었다. 귀한 자식일수록 요절상이라더니 참말인가 싶어 앞이 캄캄한 것이다. 그러기에는 하늘이 너무 야속하다 여기는 중이었다.

하긴 어떻게 얻은 아들이었던가? 전 재산을 다 바쳐서라도 대는 이어야 한다는 시어머니 청솔댁의 시퍼런 성화에 부부는 끼니까지 굶어가며 부처님께 지극정성으로 공양을 드려서 얻은 아기가 아니던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손가락을 꼽아 며느리인 영천댁의 배란일을 계산한 시어머니의 성화에 남 보기 부끄럽고 차마 입에 담기에도 남세스럽게 해가 지기도 전에 잠자리에 든 적도 한 두 달이 아니었다.

서산을 넘겨다보는 태양은 아직도 한발이나 남은 시간, 지심 잡이로 매조질 밭이랑의 끝은 조만치로 코앞이다. 길어보았자 이, 삼각 남짓이면 충분히 끝날 만도 하다. 조금만 더 허리를 굽혀 호미로 토닥토닥, 꼼지락거리면 쉽게 끝날 일임에도 밭고랑을 휘적휘적 들어선 청솔댁은 한심하다는 듯

“오늘이 어떤 날인데! 여적까지 너그 둘은 여태 이카고 있노!”하고 내외를 닦달하는 시어머니다. 그런 시어머니의 불같은 역정에 새끼 꾸러미에 꿰인 생선처럼 끌려오질 않았던가? 포승줄에 묶여가는 죄수처럼 질질 끌려서 잡혀왔다. 뒤를 보고 휴지가 없어 닦지 못한 듯 찝찝한 기분으로 잡혀왔다. 그렇게 목덜미를 잡혀 집으로 끌려와 방문을 열어보면 신방을 차린 듯 푹신한 담요 위로 가지런하게 비단금침인양 이불이 깔려 있다. 또 윗목으로는 호족의 소반 위로 술상이 차려져 있다. 찌그러진 주전자 절반을 화주(花酒:꽃으로 담은 술)로 채우고 안주로는 토종 닭백숙이 실타래 같은 뽀얀 김을 말아 올리고 있다. 일명 신혼 방이란다. 참다못한 영천양반이 어머니인 청솔댁을 향해

“엄마는 우리가 뭐 개, 돼지가? 이런다고 안 생기는 아가 꽃자리마다 대추 열매 달리듯 주렁주렁 생기게!”하고 불만을 터트리면

“그래 이놈아 이렇게 손자 한번 못 안아보고 살 바엔 차라리 개, 돼지가 낫겠다. 내가 아들이 없나 며느리가 없나 그런데 왜 나는 손자 한 번 못 안아 본단 말이고? 개, 돼지! 그것들은 제 알아서 새끼만 줄줄이 잘 놓더라! 그런데 너~거 둘은 이 뭣~꼬!, 그리 빌고 소원했건만 함흥차사도 아니고 감감무소식으로 여태 소식이 없잖아! 함흥차사도 그만한 정성이면 진즉에 돌아왔겠다. 내가 오죽하면 이러겠나! 오죽하면~ 다 늦게 구닥다리 며느리 신방이나 차리고 앉았고! 에고 내 팔자도, 조상님들 뵙기가 민망스러운께 이러지! 소박맞기 싫고 첩상이(‘첩’의 방언)를 들이지 않으려면 방정맞은 그놈의 주디(‘주둥이’의 방언)나 쳐 닫고, 그저 시키는 데로나 해라!”하는 데는 곱다시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둘이서 방에 들어앉았는데 무안스럽기도 하고 여럽기(‘열없다’의 방언)도 하여 천장만 방바닥만 따로따로 쳐다볼 뿐이다. 뒤란으로 낸 봉창으로는 아직도 해가 완전히 기울기 전이라 햇살이 해살푸게 서려 벌겋다. 어쩔 수 없이 내외는 피식거려 웃어가며 백숙을 뜯고 화합주를 잔에 따라 임자 한 잔 여보 한 잔 기울이는데

“애~ 아가야~ 오늘은 유시와 해시가 따로따로 다 좋단다”하는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집안 터앝으로부터 들린다. 결국 유시를 지나 술시에 이르려 한 숨자고 일어나 해시에 쯤에 이르러 한 번 더, 하룻밤에 두 번씩이나 합궁을 하란 요구다. 시어머니의 엉뚱한 요구에

“어머니는 참~”하는데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른다. 하던 푸닥거리도 멍석을 깔면 쑥스럽다고 숙였던 얼굴을 들어 마주 보며

“우리 내외가 진짜 개, 돼지 같네!”하며 입 언저리로 기름기가 번질 한 입을 무안을 감추려는 듯 손으로 가려 ‘쿡쿡’웃는다. 그렇게 우습고 부끄러운 밤이 지나면 시어머니와 영천댁, 고부간은 다음 날로 밤을 빌어 나란히 산에 오른다. 가물거리는 등불과 별빛을 길잡이 삼아 야트막한 산을 오르는데 시어머니가 뒤 따르는 영천댁을 돌아보며

“엇 저녁에는 이 시어미가 시키는 대로 했제?”하고 물었을 적에 영천댁은

“네~”하고 대답했고

“시에미가 일러준 대로 시간도 잘 지킸지러!”하고 물었을 때도

“예~”하고 대답했다. 속으로는 쑥스럽고 열없었지만 원망 같은 마음은 없었다. 극성스럽다 여기지도 않았다. 단지 송구스럽고 죄송스러울 따름이었다.

해도 지기 전에 잠자리에 들려니까 아무리 부부지간이라지만 괜한 열기가 얼굴위로 불쑥불쑥 치솟아 마주하기가 쑥스러웠다. 처음에는 술기운 양 여겼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술기운만으로 그럴까? 서로가 내외하여 뻘쭘하게 앉았는데 봉창으로 산 그림자가 ‘뭐에 부끄러워!’커튼을 내리는 듯 스르르 드리운다. 누가 먼저 랄 것 없이 이불 속으로 몸을 뉘는데 뜨끈한 손길이 뱀이 감아오는 듯 허리를 감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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